dosanla
홍익인간(dosanla)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0.16.2014

전체     38131
오늘방문     6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9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1. 주도적이신 하나님(God of Initiation /Authentic God)(a) 2014.02.10 12:21
04/22/2019 17:26
조회  158   |  추천   0   |  스크랩   0
IP 76.xx.xx.144

1. 주도적이신 하나님(God of Initiation /Authentic God)(a)


 성경은 관계의 책이고,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God of Relationship)이시다. 그 분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그 관계는 조물주와 피조물과 관계이며 영원하다. 그 분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이 피조물로서 조물주 하나님을 알고, 조물주 하나님과 순종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다. 그것이 피조물로써 조물주 하나님과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행복한 관계를 맺고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기보다 이 땅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피조물인 뱀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쌓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는 죄이다. 이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Separation)을 가져왔다. 하나님이 아담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을 단절했다.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는 하나님을 뵐 면목을 상실했다. 아담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아담이 가진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____에서 온다. 올바른 관계가 형성이 될 때 아담의 인생은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그리고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단절된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아담과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갔다. 그리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Where are you?)” 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아담이 찾아와서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담에게는 그가 살아갈 삶의 방향 감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나님에 대한 부끄러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아담을 찾아가서 관계를 맺고,  자신의 현재 위치(position)를 깨닫게 주고, 존재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 주셨다. 하나님은 조금도 그를 찾아 갈 아쉬움이 없으신 분이시다, 아쉬움을 가질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담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관계 맺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된다. 관계 맺지 않고 내버려 두면 결국 아담의 인생은 파멸이요, 죽음이다. 지옥으로 간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를 내버려 두면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 돕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코치가 피코치를 향한 관계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코칭 신학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은 _____으로 피코치자를 찾아 가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을 찾아 갔다.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갈 아무런 책임이 없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도 배반했던 제자 베드로를 찾아 갔다. 물고기 잡으려 갈릴리 바다로 가버린 그를 찾아 간 이유가 무엇인가? 그와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고, 그를 돕기 위함이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찾아 간 것이 아니다. 코칭은 피코치가 코치와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 올때 까지 기다는 것이 아니다. 코칭은 코치가 피코치와 관계를 맺기 위해 주도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앤디 스탠리(Andy Stanley)는 그의 저서 ‘넥스트(The next generation leader)“에서 코치는 주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치는 선수들이 부탁 할 때 까지 기다리는 자가 되어서는 않된다. 피코치의 발전을 위해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코칭은 피코치와 관계를 맺고, 피코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고, 발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제자들이 찾아와서 관계를 맺을 때 까지 기다리지 않고, 찾아 가서 관계를 맺은 것이다. 아쉬운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베드로였지만, 아쉬움을 가진 베드로는 예수님을 찾아 올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인의식이고, 하나님의 주도권이다. 하나님은 먼저 주도적으로 죄를 지은 아담을 찾아 가서 관계를 맺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찾아와서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지 아니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1. 주도적이신 하나님(God of Initiation /Authentic God)(a) 2014.02.10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