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 영화 "던커크"(2017)
08/26/20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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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0일 ~ 5월 20일



1940년 5월 10일 히틀러의 나치군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이 아닌 벨지움(Belgium)과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지도상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 벨지움의 아르덴, Ardennes) 

서북부 프랑스로 침공하여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하던 마지노 요새선(Maginot Lines)은

제 구실도 못한채 프랑스는 개전 6주만에 항복을 하고 빠리(Paris, France)를 독일에게 내어주었다. 

지도의 노란선 안에 주둔하고있던 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들은 1940년 5월 20일부터

 독일 기갑부대(Panzer Div)에게 포위된 급박한 상황에서 

던커크(Dunkirk/Dunherque) 항구를 이용하여

영국의 도버(Dover/Douvres)로 철수/후퇴한 과정을 그린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  "던커크"(2017)에 관한 얘기라기 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던커크 철수작전"(Evacuation/Deliverance of  Dunkirk)에 관한 얘기가 맞겠다.

어떻게 하여 약 400,000명의 군인(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3면으로 포위가 되어

바다를 통하여 영국으로 도망칠 수 밖에(고상하게 얘기해서 철수) 없었는가?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본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에서 간단한 배경이야기가 이렇게 뜬다.

"나치 독일이 1940년 5월 파죽지세로 (네덜랜드와 벨지움을 점령한 후)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수십만의 연합군 병사들이 해변도시 던커크(Dunkirk, 프랑스 지명으로는 

덩케르크 Dunkerque) 주변지역에 고립되게 되었고 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영국으로 철수하기 위한 선편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랜드의 그단스크(Gdansk, Poland)에 함포사격을 개시로

폴랜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2일 후 프랑스와 영국은 폴랜드와의 방위협약에 따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적극적으로 독일과의 전쟁에 임하지 않았고 (지리적인 위치상 불가능했다)

그 후 약 8개월간 실제로 독일군과의 전투는 별로 없이 전쟁을 대비하여 전쟁준비만 하고 있었다. 

이 기간을 전쟁사가들은 "가짜 전쟁시기"(Phoeny War)라고 부른다.

그동안 독일은 물론 폴랜드를 점령했다.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예상을 뒤엎고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쪽이 아닌

서북부의 벨지움과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프랑스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이 울창한 삼림과 산세가 험악하여 독일의 탱크를 앞세운 기갑군(Panzer Division)이

침공루트로 이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벨지움의 아르덴(Ardennes)을 통하여.







그 결과 이미 5월 21일에는 프랑스의 북서부와 벨지움에 주둔하고 있던 약 40만의 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은 

독일군의 강공세로 영국해협을 등지고 고립상태가 된다. 

이리하여 취임한지 16일 밖에 안되었던 영국의 윈스턴 쳐칠(Winston Churchill)수상은

5월 26일 저녁 7시에 철수작전(암호명: 다이나모 작전, Operation Dynamo)을 공식적으로 하달하였고

첫날 7,669명이 던커크로부터 도버에 도착하였다.

철수작전을 계획할 당시에는 40,000~45,000명 정도를 예상했었으나 6월 4일까지 약 338,000명의 

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 병사가 안전하게 도버(Dover, England)철수되어 

"던커크의 기적"(Miracle of Dunkirk)이라고 불린다.


(위키피디아에서)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9일간 영국 해군의 순양함(1), 구축함(39)을 포함한 각종의 함선과

개인 소유의 각종의 선박(어선, 템즈강의 유람선등을 포함)이 철수작전에 동원되었다.



(위키피디아에서)



기록에 의하면 338,226명이 철수하였는데 그 가운데 224,320명이 영국군이었고 

10만이 넘는 프랑스군과 벨지움군이었다고 한다.

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은 공식적으로는 영국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s, BEF)이라고 불렸는데

그들은 모든 군장비와 전쟁물자를 포기하고 철수를 하여 재무장을 하는데 많은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었다.

그 가운데는 445대의 탱크, 2,472문의 야포, 약65,000대의 각종 차량, 약 68,000톤의 탄약이 포함된다.















나치 독일군은 프랑스 국경을 넘은지 6주일 만인 6월 14일 프랑스의 수도인 빠리(Paris)를 점령하게 된다.

철옹성과같은 마지노 요새선(Maginot Lines)을 뚫고 프랑스로 넘어오지 못 할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프랑스는 이렇게 어이없이 넘어갔고 비씨정부(Vichy regime)라는 괴뢰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40년 6월 14일



1940년 6월 23일



1940년 5월 21일 부터 약 40만의 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을 포위하고 있었던

나치 독일군은 어찌하여 공격을 멈추고 그들에게 철수할 시간을 주었을까?

많은 역사가(전쟁역사)들에  의해 많은 썰(設)이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5월 24일 11:42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그들의 자랑인 기갑부대(Panzer Div.)의 

진군을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같은 결정은

이 지역의 공격을 담당했던 육군 A그룹의 사령관이었던 게르트 폰 룬스테트(Gerd von Rundstedt,

1875-1953)장군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고 히틀러가 룬스테트장군의 요청에 타당성을 인정하여

"진군정지 명령"(Halt Oder)을 내린 것이었다.

룬스테트장군은 

'40만의 영국+프랑스+벨지움 연합군은 이미 독 안에 든 쥐이고'

'육군 A그룹(B와 C그룹도 마찬가지였지만)은 2주일 동안 쉬지않고 진격(전투)을 해서 전력이 모두

매우 피곤한 상태이고 보급품도 부족하며' 

'일부 탱크부대는 많은 손실을 입었고(up to 50%)'

'던커크 주변이 수로가 많은 뻘흙지대로 탱크부대가 진입하기가 부적당하며'

'놀랍게도 너무 빨리 진격을 하여 보병부대가 미처 따라오지를 못하며 따라서 보급로도 확실하게

구축이 안된 상태이니'  

"진군정지 명령"이 최소한 48시간 필요하다고 역설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  히틀러(나치 독일군)의 "진군정지 명령"(Halt Oder)이 

2차 세계대전의 역사 아니 유럽대륙의 역사 더 나아가서 인류의 현대역사를 바뀌게 한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진군정지 명령"(Halt Oder)이 없었다면

철수에 성공하여 돌아온 약 25만명의 병사들이 모두 던커크에서 전사를 했거나

전사 또는 전쟁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영국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가 없었을 것이 명백하다.

그렇게 되었다면 물론 쳐칠도 수상직을 물러났을 것이고 ....



게르트 폰 룬스테트(Gerd von Rundstedt,1875-1953)



나치 독일 육군 A그룹의 탱크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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