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의 죽음
05/18/20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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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의 베로나(Verona)를 방문한 13세때의 모짜르트(1770년 1월)

생전에 그려진 5점의 초상화 가운데 1점이다.

이 초상화는 작년 빠리의 "크리스티스"경매에서 4백만 유로(정확히는 €4,031,500)에 팔렸다.

 베로나 출신의 화가 쟘베띠노 치냐놀리(Giambettino Cignaroli)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36세에서 약 2개월을 못 채우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 27일 - 1791년 12월 5일)

이런 연유로 그의 죽음은 엉뚱하게 동시대의 훌륭한 음악가였고 요제프 2세(Josef II)의 궁정음악장이었던

안또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가 독살을 시켰다는 소문으로 비화를 하여

살리에리는 생애의 후반 30여년을 이에 시달려야 했고 그의 음악은 잊혀져 갔다.


얼마 전 블방의 자카란다님께서 최근 1984년의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를 

재감상하시고 글을 올리셨다. 

영화의 내용은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나머지...

그리고 모짜르트가 관도 없이 여러명이 함께 묻히는 공동묘지에 던져지는 영화장면을...

또 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비엔나의 중앙공동묘지에 기념비만 있다는 아쉬운 말씀을.


Once and for all, 살리에리의 오명을 벗기기로 한다.

오늘은 이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를 그동안 찾아보고 읽어본 것들을 중심으로 결말을(?) 내어보자.









1. 비엔나의 시체검시관(coroner)기록에 의하면 사인(死因)은 "급성 군대 열병"

(hitziges Frieselfieber = heated miliary fever)이었는데 모짜르트의 병력으로 미루어 보아

"급성 류마티스 열병"(Acute Rheumatic Fever)이었을 것이다. 그는 1762년에 이미 성홍열(scarlet fever)을,

1763년, 1766년, 1784년에는 "급성 류마티스 열병"으로 약 2주씩 앓았던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설(說)들이 있다.

2009년 네더랜드의 의료진은 "급성 인후염증"(Strep Throat)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며 

조사에 의하면 모짜르트가 사망했을 당시 비엔나에 군부대에서 시작된 이 병으로

비엔나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을 했다고 발표를 하기도 했다.

(https://www.reuters.com/article/us-mozart/strep-throat-may-have-killed-mozart-idUSTRE57H0BB20090818)


2. 왜 이와같은 추측만 만발을 하는가? DNA를 추출하여 현대의학으로.....

문제는 그의 무덤이 없고 시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1791년 비엔나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의 비엔나는 신성 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요제프 2세(Josef II)의 시절이었다.


우선 간단히 얘기하면 모짜르트의 시신은 당시 평민의 장례절차에 따라 관에 넣어

비엔나의 聖마르크스 묘지에 1791년 12월 7일에 묻혔는데(3급 장례로)

그 후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도 분실이 되었고 정확한 위치도 파악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매장을 담당했던 묘지의 직원들이 이미 모두 사망한 관계로.

일설에는 세상을 떠났을때 모짜르트가 너무 찢어지게 가난하여서

영화에서와 같이 여러 명을 한 곳에 매장하는 장례를 치뤘다고 하는데 사실과는 틀린다.

당시 비엔나에서 평민에 대한 장례법이 그런 적이 잠시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장면

사실이 아닌 상상의 날개를 편 것이었다.



당시 재사용 가능한 관은 앞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고 바닥이 열리는 것이었다.


"매장법"은 석회석을 뿌리고 흙으로 덮게했다.





유럽의 계몽군주 가운데 하나였던 요제프 2세는 1784년 8월 23일에 

각 도시나 마을의 식수원을 보호하고 위생/방역을 위하여

7조항으로 된 새로운 "매장법"(Begrabnisverordnung, Burial Regulation)을 발표했는데

묘지는 각 도시나 마을의 경계의 바깥으로 옮기되 식수원에서 멀리 떨어지고, 

시체가 빨리 부패할 수 있는 지질지역으로 옮기고, 묘지에는 약 6피트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린넨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안치된 시신을 재사용 할 수 있는 관으로 운반하여 구덩이에 묻고

즉시 석회와 흙으로 덮어야 한다. 구덩이는 최소한 4피트를 흙으로 덮어야 한다.

유가족은 추모비나 비석을 묘에 세울 수 없고 원하면 묘지의 바깥 울타리에 세울 수 있다 등이었다.



재사용 할 수 있는 관, 바닥이 열리게 되어있다.

(비엔나 장의박물관 http://www.bestattungsmuseum.at/eportal2/)



법령의 5조와 6조.

두번째 줄의 6과 4 슈(Schuh)가 보인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1슈는 현재 12.6인치에 해당한다고 한다.




당연히/특히 비엔나 시민들이 아우성을 쳐서 약 5개월 후인 1785년 1월 20일

요제프 2세는 시신을 개인의 관을 사용하여 묘지에 묻을 수 있도록 6조는 삭제하였으나

다른 조항들은 그대로 실시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1791년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난 모짜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처럼 

여러 시신이 있는 구덩이에 함께 묻힌 것이 아니고 관에 안치되어  

비엔나의 聖마르크스 묘지의 어딘가에 묻혔다. 여전히 표식이 될만한 비석은 없이.


3. 이런 이상한 연유로 현재 비엔나의 중앙 공동묘지에는

무덤이 아닌 모짜르트의 기념비만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지사이에 서 있다.

(모짜르트를 찾아서-1은 여기에,    모짜르트를 찾아서-2는 여기에)



베토벤(좌) 모짜르트(중)  그리고 슈베르트(우)





모짜르트의 데스 매스크(Death mask)

1791년 12월 5일 자정이 좀 지난 0시 55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부인 콘스탄제(Constanze),

그녀의 막내동생 조피(Sophie Weber) 그리고

모짜르트 가족의인 클로셋(Dr. Thomas Closset)이었다.

 

이 데스 매스크는 데임 백작(Count Deym von Stritez)이

12월 5일 석고로 만든것으로 다시 제작한 청동제품이고

오리지널 석고 데스 매스크는 분실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진품(眞品)인가? 에는 아직도 이견이 많다.



비엔나에 있는 "모짜르트의 집"(Mozarthaus)에 전시되어 있다.

모짜르트가 살았던 아파트먼트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곳을 모짜르트 박물관으로 꾸몄다.

주소: Domgasse 5, 1010 Wien

개장시간: 매일 10AM - 7PM

(박물관 웹주소: http://www.mozarthausvienna.at/)



살리에리의 누명이 벗겨지고 

모짜르트의 죽음과 관과 묘지에 관한 의문도 풀렸기를 소망하며.




불운의 안또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

그는 이딸리아의 음악가이면서도 합스부르크(Habsburg)왕가의 궁정악장으로 36년간을 지냈다.(1788-1824)

그는 훌륭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요, 음악 선생님이었었고

그의 제자에는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독살설의 진원지는???


모짜르트의 전기를 일찌기 집필한 

3명의 저자(Niemetschek 1798, Nissen 1828 & Novello 1829)들을 종합하면

모짜르트가 부인인 콘스탄제와 1791년 10월 아주 청명한 날

비엔나의 야외공원인 프라터(Prater)에 나갔을때

자기의 병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누군가가 나에게 독을 먹이는것 같아"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모짜르트의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10월 20~24일경으로 본다. (비엔나 1791년 10월의 기상기록에 따라)

그리고 모짜르트는 11월 20일쯤 부터 병상에 들었다가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모짜르트 자신에게서 시작된 독살설은 부인의 입을 거쳐 비엔나에서 소문으로 돌다가...


러시아의 국민작가 뿌쉬낀(Alexander Sergeyevich Pushkin, 1799-1837)은 

1832년에 "짧은 비극"(Little Tragedies)이라는 책을 내면서 1막 2장의

희곡 "모짜르트와 살리에리"(Мо?царт и Салье?ри, Mozart and Salieri)를 실었는데  

2장에서 살리에리가 모짜르트를 술 잔에 독을 타서 독살시킨다.

왜 그렇게 했을까는 anybody's guess이다.






뿌쉬낀의 작품을 토대로 림스끼-꼴사꼬브(Rimsky-Korsakov는 1897년 오페라 

"모짜르트와 살리에리"(Моцарт и Сальери, Mozart and Salieri)를 작곡하여 1898년 초연을 가졌다.

오페라의 노래가사는 뿌쉬낀의 대사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또 뿌쉬낀의 작품은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Levin Shaffer, 1926-2016)의 작품 "아마데우스"를

태어나게 하였고 이는 1984년 영화감독 밀로스 포만(Milos Forman)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하였었다.



모짜르트役(테너)의 바실리 쉬카피아(Vasiliy Shkafer)와 

살리에리役(베이스-바리톤)의 표도르 샬리아핀(Fyodor Shalyapin)

(1898년 초연때의 사진)


살리에리의 작품으로 "바이얼린, 오보와 첼로를 위한 협주곡 D 메이져"를 들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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