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를 찾아 3만리-3
10/30/2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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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쎈트 판 호흐 이곳에 누워있다. 1853-1890"

(ICI REPOSE VINCENT VAN GOGH.  1853-1890)

의역을 하자면 "쎈트 판 호흐 이곳에 잠들다"가 되겠다.


형이 세상을 떠난지 약 6개월 후 형을 따라 간 동생 테오(Theo)와 나란히 누워있다. 

2만 2천리를 돌아서 그가 누워있는 곳을 찾아왔다.

비도 오락가락하고 우중충한 구름이 낀 날씨가 

먼 길을 찾아온 발길을 더욱 무겁게 했다. 




방 고그(그곳 프랑스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i'm not kidding)가 처음부터 여기에 묻힌것은 아니다.

1890년 7월 30일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묘지입구 가까이에 묻혔었는데 

현재의 장소로는 15년이 지나야 이장이 가능한 법에 따라

1905년에 뽈 게셰(Dr. Paul Gachet)와 그의 아들 뽈(Paul Gachet)이 방 고그가 즐겨 그렸던 

밀밭이 보이는 북쪽 담장 옆으로 옮겨왔다. 

동생 테오는 1891년 1월 25일 네덜랜드의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33세(형보다도 어린 나이에)에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 묻혔는데 그의 부인인 요하나 판 호흐-봉어(Johanna van Gogh-Bonger)가

사랑했던 남편이 그토록 사랑하고 위했던 형의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1914년에 이장을 해온 것이다.

요하나에 대해서는 포스트가 별도로 필요할 정도이다. 

오늘의 방 고그가 있기까지는 그녀의 공로가 매우 크기때문이다.


오베르쉬르와즈(Auvers-sur-Oise)공동묘지에 있는 다른 묘지들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고 

어떻게 보면 초라하게까지 보인다.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쓰여진 자그마한 묘석 앞으로 

아무 장식도 없이 판 호흐가 좋아했다는 아이비(ivy)밭만 있다.

이장했을때 요하나가 닥터 게셰의 정원에서 옮겨다 심었다고 하니 105년이 된 것이다.

처음 찾아갔던 날에는 해바라기가 그 위에 놓여있었는데 돌아오기 전 날 들렸을때는 장미꽃 다발이 놓여있었다.





1889년 7월 쌍-레미 정신요양원에서 그린 "아이비 덤불"(Undergrowth)



나치 독일의 제2인자이던 허만 괴링(Hermann Go"ring)이 이 그림을 검사하고 있다. 

가지고있는 고그의 책에서 최근 발견했다.











테오와 뱅쌍의 묘지로 가는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







묘지입구의 안내판










한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다르게 부르고 다니려면 정말 삭갈린다.

핀쎈트 판 호흐(네덜랜드), 빈쓴트 밴 고흐(미국), 뱅쌍 방 고그(프랑스), 빈센트 반 고흐(한국). 

우리가 묶었던 에어비앤비의 주인 제라(Gerard)는 얘기중에 우리가 말하는 "빈쓴트 밴 고흐"를

못 알아 듣더니 "라부 여인숙"얘기를 들은 후에야 "  고"라고 고쳐주었다.


어느 자리에 앉아서 방 고그가 식사를 했을까를 생각하며 점심식사를 마친 후 

라부 여인숙(Auberge Ravoux)/방 고그 연구소(Institut Van Gogh)를 돌아보고

별도로 6유로의 입장권을 구입하여 방 고그가 이틀 밤낮을 신음하다가

동생 테오의 팔에 안겨 세상을 떠난 방에도 올라가 보았다. 정말 작은 방이다.  

7평방 미터라니 약 75평방 피트이다. 창문도 없고 작은 지붕창이 전부인 3층 다락방이다.



"화가 방 고그가 이 집에서 살았고 1890년 7월 29일 여기서 죽었다"



우측 구석이 고그의 방이었다. 우리에게는 3층이지만 그들에게는 2층이다.




계단을 올라 들어가면 서점/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안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된다. 









2번이 고그의 방이고 3번이 네덜랜드에서 고그보다 약 1달 후에 온

안똔 히르시흐(Anton Hirschig)의 방이었다.



방 안에서는 사진찍기가 금지되어 있다.



작은 다락방에 의자 하나만 덩그라니 앉아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저 의자가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얀센스氏가 원하는

충분한 효과를 내고있었다. "각자가 느끼는 무엇"이 있을것이라고 했다.




유리전시장은 얀센스氏가 루브(The Louvre)미술관의 "모나리자"를 전시하는

특수보호 유리전시장을 제작한 회사에 의뢰하여 만들어 놓았다.

언젠가는 방 고그의 오리지널 그림을 저 안에 전시할 꿈을 가지고.

(from https://www.parisdigest.com/paris-news/van-gogh-auvers-sur-oise.htm)



방 고그는 라부 여인숙에 1890년 5월 20일에 도착을 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상-레미(Saint-Remy)정신요양원에 있을때 이미 동생 테오가 화가 피사로(Camille Pissarro)

상의를 하여 오베르쉬르와즈에 있는 의사 뽈 게셰(Dr. Paul Gachet)에게 형을 돌보아주기를 부탁하기로

의논을 했었기 때문이다. 

동종요법(同種療法, homoeopathy)이라는 의료술로 환자를 보던 뽈 게셰는 취미로 그림과 동판화를 그리며

미술애호/수집가로 이미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피사로를 진료하기도 했었다.



방 고그의 유일한 동판화, 파이프를 문 의사 게셰(5월, 1890년)

그는 게셰에게서 동판화 제작방법을 배웠다.

 



나는 이런 그의 붓텃치가 좋다.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를 떠나서.


빠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번에 본 그림을 약간 확대한 것이다.






****************************************************



그런데....

그렇다면....

권총과 책이야기의 속편은???


지난 약 두달 동안 권총과 책의 일본인 저자 노무라 아쓰시(野村 篤)의 연락처를 찾기 위하여 

머리에 쥐가 나도록 웹서핑을 했는데 구글 선생도 모르고 야후 일본에서도 안 나온다.

또 책이나 저자, 그 내용을 인용한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1998년 발간인데. 이상하고 이상하다. pourquoi?

할 수 없이 며칠 전 출판사 구룡당(求龍堂)에 멜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저자와 연락을 하고프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아직 소식은 없다.


오베르쉬르와즈(Auvers-sur-Oise)市의 관광 홍보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에게도

노무라 아쓰시(野村 篤)의 책 이야기를 하며

"혹시 방 고그가 퐁투아즈의 총기상에서 권총을 구입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냐고 문의했을때

그녀는 "방 고그가 권총을 구매한 것이 아니고 아튜르 라부(Arthur Gustave Ravoux)가

권총을 구매한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 아하 그래요"  ???




밴 고흐, 오베르 쉬르와즈, 오베르제 라부, 라부 여관,아를르, 밴 고흐 미술관, 도미니크 얀센, 핀쎈트 판 호흐(네덜랜드), 빈쓴트 밴 고흐(미국), 뱅쌍 방 고그(프랑스), 빈센트 반 고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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