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루벤스 그림: 그는 한국(조선)사람이 아니었다
04/19/20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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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 : 게티 미술관

로마에 살고 있을 "안토니오"(Antonio)?? : Francesco Carletti

"조선 남자"(Joseon Man)?? : Cornelis van Neyenrode

"한복(조선복)과 비슷한 겉옷을 입고 머리장식도 한

정체불명의 아시아人" : 요세미티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한국의상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 1617)의 특별전시회의

계획에서 부터 전시된 여러가지의 전시품들을 세계 각국으로 부터 대여해 오고

게티 미술관에 전시하는 과정까지를 맡았던 Dr. Stephanie Schrader(Associate Curator)는

그녀가 쓴 엣쎄이 Implicit Understanding: Rubens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Jesuit Missions in Asia(이미 소개한 책의 두번째 엣쎄이)에서

아래의 5점 그림과 함께 2점 루벤스가 그린 "聖프란씨스 하비에르의 기적"

(The Miracles of St. Francis Xavier, 1617-1618)이란 그림과의 연관관계를

역사적인 기록과 여러 가지의 문헌들을 통하여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한 Dr. Stephanie Schrader
그녀는 1995년 게티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이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Who was he, really?"

 

 

당시(16세기 말, 17세기)의 미술과 미술사의 전문가들은

아래의 그림 5점이 거의 같은 시기에 앤트워프(Antwerp)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고있다.

1935년에 처음으로 이렇게 주장을 한 사람은 영국의 미술사학자 Clare Stuart Wortley였다.

 

1617년 루벤스는 앤트워프의 예수회(Jesuits)교단으로 부터 성당 제단 윗쪽을 장식할

초대형 그림(3.95 x 5.35 m)을 의뢰받았다. 그림의 내용은 인도지역으로 선교사역을 나갔던

聖프란씨스 하비에르(1506?1552)의 선교기적을 기리는 그림이어야 하였다.

이때는 마침 예수회의 전도수사 니콜라스 트리걸트(Nicolas Trigault, 1577-1628)가

중국에서 일시 귀국하여 자신이 중국에서 행한 전도사역을 소개하며 예수회교단의

선교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전도수사를 모집하기 위하여 앤트워프를 방문중에 있었다.

 

 

 

(좌) Portrait of Nicolas Trigault in Chinese Costume, 1617, Peter Paul Ruben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urchase, Carl Selden Trust, several members of

The Chairman's Council, Gail and Parker Gilbert, and Lila Acheson Wallace Gif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mage Source: Art Resource, NY

(중) Man in Korean Costume, about 1617, Peter Paul Rubens, The J. Paul Getty Museum



(우) Nicolas Trigault, 1616, Workshop of Peter Paul Rubens,

Oil on canvas. Douai, France, Musee de la Chartreuse

 

 

(좌) Portrait of Nicolas Trigault in Chinese Costume, 1617. Rubens or Anthony van Dyck(1599-1641)

Black chalk, Stockholm, Nationalmuseum

(우) Jesuit Missionary in Chinese Robes, 1617. Rubens or Anthony van Dyck(1599-1641)

Black chalk. Morgan Library, New York

 

 

하비에르선교사는 인도(당시에는 고아,Goa,로 불렸다)는 물론이고

인도양에 있는 세일론(Ceylon), 말라까(Malacca, 현재 말레이지아의 일부분),

몰루깐 제도(Moluccan Islands, 현재 인도네사아의 일부분이다)를 거쳐

일본(약 2년 동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중국 대륙을 목표로 갔으나

중국 남방의 한 작은 섬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1619년 10월 25일에

교황 폴 5세(Pope Paul V)에 의해 성자로 추대되었다.

그는 10년간의 선교여행에서 약 4만여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전도여행을 지도로 보면 이와같다. (지도: 위키피디아에서)

1541년 4월 7일 뽀르뚜갈의 리스본을 떠나

1552년 9월 중국 남방의 상추안島(현재 홍콩에서 200킬로미터 서쪽)에서 세상을 떠났다.

 

 

 

루벤스는 그가 행하였다는 기적을 그려넣었는데
인도(고아)에서 힌두교의 우상과 신전을 천사가 내려와 파괴하는것,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리고, 그리고
맹인이 눈을 뜨고 걷게하는 것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이적을 보고있는 무리들이
앞으로 계속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아시아지역의 '우상숭배자'(idolaters)들로
그려져 있다. '방건' 비슷한 것을 쓴 동양인, '터반'을 두른 흑인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 비슷한 것을 쓴 백인등이 보인다.
 
 
 
 

 

(좌) Miracles of Saint Francis Xavier,1617-1618, Peter Paul Rubens. Kunsthistorisches Museum,

Gemaldegalerie, Vienna  3.95 x 5.35 m

(우) Modello for Miracles of Saint Francis Xavier, about 1617, Peter Paul Rubens. Kunsthistorisches Museum,

Gemaldegalerie, Vienna  0.73 x 1.05 m

 

좌편의 그림이 성당 제단의 윗쪽에 봉헌이 되었던 완성된 그림이고

우편의 그림은 좌편의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린 일종의 연습화(준비화)인데

비엔나에 소재한 역사박물관에 모두 소장이 되어 있지만

이번 전시회에는 우측의 그림만 대여를 해 주었는지 좌편의 그림은 전시되지 않았다.

 

 

 

 

 

좌측과 중앙의 그림이 합하여져 우측의 그림이 되지 않았는지?

 

 

좌측의 삼층으로 올린 머리는 분명히 상투도 아니고

상투에 상투관을 씌운것도 아니고 탕건을 쓴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측의 방건과 비슷한 것은 방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높고 끝부분이 둥글다.

 

 

적당히 왼쪽 다리만 그리다 만것을
옷 모양새도 바꾸고 발도 그려 넣었다.
이렇게 보면 답호도 철릭도 아닌것 같다.
 
 
 
 
제일 위의 초상화 3점에 나타나 있는 예수회교단의 니콜라스 트리걸트(Nicolas Trigault, 1577-1628)
수사는 더치人으로 17세에 예수회(Jesuit) 교단에 입교하였고 1611년 중국의 난징(南京)에서 부터
선교를 시작하였고 1628년 중국의 항조우(杭州)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1614년 10월 부터 1618년 4월 까지 유럽에서 지내며 로마에서 교황에게 중국에서의
선교에 대해 보고를 하였고, 중국 선교구를 일본 선교구에서 분리토록 허락을 받았고,
예수교 수사들이 중국의 유생들이 입는 복장(모자 포함)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나
미사를 중국어로 드리는 것은 허락받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캐톨릭 국가들을 돌며 선교보고를 하고 예수회교단의 선교비를
조달하기에 힘썼는데 그가 1616/1617년 앤트워프에서 루벤스를 만났고 그때
루벤스가 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트리걸트 수사(修士)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조선의 방건이나 의복(철릭 and/or 답호)을 이 시기에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트리걸트 수사는 1618년 4월 새로이 모집된 20명의 수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조선의 실학의 선구자인 이수광(李?光, 1563∼1628)이
이미 1611년에 베이징(北京)에서 예수회 소속의 전도수사들과 교류하였고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 리치가 쓴 천주교 교리서)등 6권의 서적을 받아 귀국했었다.
이수광은 조선의 사신으로 1590년, 1597년 그리고 1611년 세차례 명을 방문했었다.  
 
 
전시회에 출품된
신한평이 그린 "이광사의 초상", 1774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품, 보물 1486 
상투를 틀고 상투관을 씌운 후 방건을 썼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머리치장을
그림을 통하여 본다. 
아래의 그림과 사진자료(5장)는
문화재청 헤리테지채널 웹싸이트에서 가져왔슴.
VIEW_CNT&htmlIdx=3866)
 
 
상투-> 탕건-> 방건
 
 
 
상투-> 상투관-> 와룡관
 
 
 
상투-> 상투관-> 복건
 
 
 
 
 
머리에 상투를 튼 다음 위와 같은
상투관을 상투의 끝에 씌운 후
아래와 같은 탕건, 방건 또는 정자관, 와룡관 같은것을 썼다고 한다. 
 
 
 
 
 
 

당시 조선 남자들의 얼굴과는 차이가 많다.
그리고 머리치장도 authentic Joseon Man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과연 로마에서 만난 조선청년을 그린걸까?
아니면 앤트워프의 화실에서 그린 상상화 였을까?
루벤스 홀로 알 일이로다.
Only he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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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한국에서는 "한복을 입은 남자"는
루벤스가 조선의 남자가 조선옷(철릭과 답호)과 조선 머리장식(방건)을
하고 있는것을 그린것이고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說이
거의 사실로 알려져 있는듯 하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때 그것은 사실이 아닌듯 하다.
 
이렇게 한국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것 같다.
대부분 블로그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아래와 같이 적고있다.
 
1.  이딸리아의 무역상인(노예무역 포함)인 프란체스꼬 까를레띠(Francesco Carletti,
1573-1636)가 아버지 안토니오 까를레띠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며 있었던 일을 기록한
My Voyage around the World(Random House, New York, 1964. 번역본)라는 견문록에서
1598년 3월경 일본의 나가사끼항(港)에서 조선인 노예를 5명 굉장히 헐값에 샀고
그 가운데 4명을 인도(고아)에서 놓아주었고 나머지 1명에게는 세례를 받게한 후
계속 자기가 데리고 여행을 하여 마지막으로 1606년 7월 12일 이딸리아의 피렌체에 도착하였고
까를레띠는 그를 '안또니오 꼬레아'라고 불렀고 책을 쓸 당시 그는 로마에 살고있다고
책에 기록하였다.
(까를레띠의 견문록은 그가 죽은 후 1701년 피렌체에서 출간되었다)


(이하의 빨간(파란)의 글들은 상기한 까를레띠의 견문록을 구입하여 읽고
또 기타 인터넷 상에 올라있는 글들을 읽으며
확인한 후에 필자가 12월에 수정/첨부한 내용이다. )

불행하게도 이렇게 쓰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 본 일이 없는 분들이다.
실제로 1964년 미국에서 출판된 번역본에 의하면 까를레띠는 5명을 12 스쿠도에 사서
나가사끼에서 세례를 받게 하였고 인디아의 고아에 데리고 간 후 네명은 그곳에서 놓아주고
한명만 플로렌스까지 데리고 왔는데
"내 생각에 그는 요즘 로마에 있을것이고 안토니오(Antonio)라고 알려져 있다"라고만 적고 있다.
"안토니오 코레아"가 아니다. 까를레띠는 그를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이름지어준 적이 없다!
"....I bought five of them for little more than twelve scudos. Having had them
baptized, I took them with me to Goa in India, and there set them free.
I brought one of them with me to Florence, and I think that today he is to be found
in Rome, where he is known as Antonio....115쪽 하단에서)




115쪽 하단에 노란 펜으로 하일라이트를 한 부분이다.




까를레티의 여행경로를 보여주는 지도.


 
 
(좌) 번역본, My Voyage around the World, 1964
(우) 원본, Ragionamenti di Francesco Carletti Fiorentino sopra le cose da lui vedute ne’ suoi viaggi si dell’ Indie Occidentali, e Orientali Come d’altri Paesi. 1701
 
 
2.  1979년 10월 한국일보의 프랑스 특파원이었던 金聖佑씨가
남부 이태리의「알비」라는 마을에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코레아(Corea)라는 성씨(姓氏)를
가진 이들이 안토니오·코레아의 이태리人 후손들이라고 보도를 하며
알비 마을에 거주하는 약 1백90명의 코레아氏 들과 인근의
'타베르나' '카탄자로' '체르바' '세르잘레' '마기자노' '코젠차' '로마' 등지에 흗어져 살고 있는
코레아 氏들이 모두 한국을 뿌리로 하는 이태리인들 이라고 보도를 하였다고 한다.


(「 이탈리아 코레아 氏들의 마을: 뿌리는 한국인이었다」『한국일보』1979년10월 7일,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인용하고 있으나  기사의 웹주소나 실제의 기사를
인용한 사람이 없고 실제의 기사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3.  게티미술관이 1983년 11월 29일 런던 크리스티스의 경매에서 루벤스가 그린
"한국의복을 입은 남자"라는 그림을 30만 파운드(낙찰가격)에
구매하였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루벤스의 그림에 대한 애국적(?)인 마음을 가지신 많은 분들이
이딸리아의 남부지방에 있는 알비(Albi)라는 산골마을에 "코레아"라는 성씨를 가진 집성촌이 있는데
그들이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들이라고 주장을 했고
급기야는 그 마을의 시장과 몇몇 사람들이 1992년 대한민국의 문화부 초청으로
한국도 방문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그들을 상대로 DNA테스트를 해 본 결과
몽고인의 유전자(gene)가 전혀 없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몽고인의 유전자"(gene)내용도 다른 인터넷 쏘스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고
이같은 내용은 이곳에만 있다. http://www.andongnews.net/coding/news.aspx/1/1/6133 참조)


 
 
알비(Albi)의 Corea성씨는 원래 Curia성씨 였었는데 알비의 마을 역사책(村史)에 의하면
최소한 1774년까지는 Curia성씨가 있었고 그 이후에 Corea성씨로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Curia성씨는 알비에 1400년대 부터 있었다고 한다)
알비의 Corea성씨를 가진 분들이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래 Curia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1774년 까지는 Curia성씨였으니까
1606년 7월에 피렌체(플로렌스)에 도착한 조선소년 "안토니오"가
알비(Albi)의 꼬레아(Corea) 성씨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은 성립될 수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 가톨릭신문사는 이미 1982년 4월 18일 부터 7월 4일 까지 7회에 걸쳐
특집으로 "이태리 "알비"마을 코레아 씨들 과연 한국인 후손인가?"를
연재하며 명백하게 밝혔었다.
 
필자가 간과한 사실은 7회에 걸친 이 특집기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발간되던
"구주신문
(歐洲新聞)에 특별기획으로 올려졌던 기사를 가톨릭신문이
양해를 얻고 전재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신문은 1990년대에 경영난으로 폐간했다고 한다.


1993년에 출간되었던 "베니스의 개성상인".

"한복을 입은 남자"라는 루벤스의 그림이 이 소설의 영감을 주었다고

저자 오세영은 작가의 말에 썼다.

17세기 안토니오 코레아의 얘기와  

20세기의 종합상사 상사원 유명훈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섞여 돌아간다.

물론 알비촌의 얘기도 나오고 1628년 스웨덴의 군함

바사號의 침몰사건도 나온다.

작가는 경희대 사학과 출신으로 17세기 유럽사를 열심히 공부한듯 하다.



(2003년 엔가 개정 증보판이 발간되었고
그 책에서는 안토니오 꼬레아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부산대학교 사학과 곽차섭 교수가 쓴 책으로

"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푸른역사, 2004)

다른 분들에 비하여 좀 더 사실(史實)에 입각하여 썼다고 하는데

읽어보지는 못했다.

인터넷에서 서평을 읽어보면 곽교수는

그림의 주인공이 입은 옷이 "철릭"이고 쓴 것이 "방건"이라는 것과

"안토니오가 카를레티와 함께 1606년 7월 피렌체로 간 얼마 후부터 로마에서 살았으며,

루벤스가 1605년 11월∼1608년 10월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 등을 근거로

그가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추정했다.



(상기한 근거는 매우 빈약한 것으로 그림의 주인공 이름이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 내지는 추정을 하였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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