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서 고흐를 만나다.
09/01/20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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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1888, Arles)

쌍 레미 드 프로방스의 정신병원의 입원실 창으로 보이는 것을 그렸다.

의사 펠릭스 레이(Dr. Felix Rey)가 근무하던 병원이다.



쌍 레미 드 프로방스(St. Remy de Provence)를 인구 6천명의

작은 도시로 소개하는 당시의 사진 엽서. 

고흐 그림에서 보이는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미니 제이엠티(John Muir Trail)를 가기 얼마 전 우연히 엘레이 마당 몰(Madang Mall)에 있는

알라딘 서점에서 중고책을 한 권 샀다. 번역본으로 제목은 "고흐, 37년의 고독"(2004)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지 "바램"은 아니었는데 중고서적이 있는 서가를 지나다가

"고흐"가 얼핏 눈에 들어와 뽑아 들고 읽다가 사버렸다.


이 책은 일본인 노무라 아쓰시(野村 篤)란 분이 37년간의 고흐의 발자취를 화가인 형과 같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고 느낀것들을 "고흐 기행, 별을 향한 궤적"(1998)이란 제목으로 발간한 책을

번역한 책이었다.  (ゴッホ紀行―星への軌跡, 野村篤, 1998)

전기, 화집, 서간집을 포함하여 갖고있는 9번째의 고흐에 관한 책이다.


산에서 긴 저녁시간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이 팟(i Pod)에 녹음해 간 음악들과 함께.

산에서의 저녁시간은 굉장히 길다. 보통 오후 5시 이전에 그날의 캠프장에 도착을 하니까.





일본어 원본










저자 노무라 아쓰시는 일본 상사(商社)의 브러셀(Brussel, Belgium) 지사에서 근무하며

약 1년 6개월 동안 고흐의 출생지인 네덜랜드의 준더트(Zundert, Netherlands)에서 부터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와즈(Auvers-sur-Oise)까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고흐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고흐가 남긴 652통의 편지의 내용을 자세히 인용해가며

기행문 겸 고흐의 생애를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8월 25일) 런던의 가디언紙(The Guardian) 인터넷版에서 

또 흥미로운 고흐의 생에 관한 새로운 책자가 발간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기자이자 저자인 마틴 베일리(Martin Bailey)라는 영국분이 쓴 "별이 빛나는 밤 : 정신병원 시절의 고흐"

(Starry Night, Van Gogh at the Asylum, 2018)라는 책이다. 그는 특히 고흐의 생애(生涯)에 대한

전문가로서 이미 2권의 저서가 있다.


책의 표지



저자 마틴 베일리



오늘 뉴스에는 현재 베니스(Venice, Italy)에서 열리고 있는 75회 베니스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에서 

9월 3일 고흐의 말년을 그린 영화 "영원으로 가는 문 앞에서"(At Eternity's Gate)가 상연된다고 하는데

쥴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이 감독하고 윌렘 드포우(Willem Dafoe)가 고흐 役을 맡았다고 한다. 

9월 28일 부터 시작되는 뉴욕 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에서도 상연될 예정이다. can't wait !!!







위의 영화장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치군에 의해 행방불명이 된

고흐의 작품 "작업을 하러 나가는 화가"(Painter on His Way to Work, July 1888, Arles)를

모방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관심사항인 "귀 절단"에피소드와 그의 마지막 "권총 자살"에 관하여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해서

그 부분을 먼저 살폈다. (고흐를 좀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인들 그렇지 않을까!)

노무라 아쓰시는 책 234~237쪽에 "귀 절단"에피소드에 관하여 적고 있는데,

'사람들은 "살점 하나 안 남기고 절묘하게 귀만 도려내다니 대단한 솜씨야."라고 떠들어 댔다.'라고 쓰고

따옴표를 했으나 그 말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서 저자의 상상인지 당시 현지 주민의 증언인지

누군가가 책/신문에 쓴 것을 인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상기했듯 이 책은 1998년에 출판되었다.


"귀 절단"에피소드가 있은 1888년 12월 23일 밤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흐가 고갱(Paul Gaugin)과 심하게 다툰 후 면도칼로 자기의 귓불을 조금 자른 후

신문지에 싸서 동네의 사창가에 있는 라셀(Rachel)이란 창녀에게 "이것을 잘 간직하세요"하며

건네 주었다는 얘기를 철썩같이 신봉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2016년 7월 버나뎃 머피(Bernadette Murphy)라는 지난 30여년을  

프랑스의 아를르(Arles)지역에서 살았고 약 10년간 현지인들을 상대로 "귀 절단"에피소드를 조사해 온

비전문 미술사가(美術史家)가 책 "밴 고흐의 귀: 진실된 이야기"(Van Gogh's Ear: The True Story, 2016)를 발간하며

"귀 절단"에피소드가 있은 바로 다음 날(1888년 12월 24일) 제일 먼저 고흐의 귀를 치료해 준

의사 펠릭스 레이(Dr. Felix Rey, 1867~1932)가 그의 처방전에 그려 준 도면을 인용하여

고흐는 "귓불"이 아니고 "왼쪽 귀"의 거의 전부를 잘랐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것 보다도 더 중요한 증빙자료가 있을 수 있을까?

고흐는 "귓불"만 조금 자른것이 아니고 자신의 왼쪽 귀 거의 전부를 잘랐던 것이다!


나는 버나뎃 머피의 책과 아래의 도면을 출간 당시에(2016) 알았기 때문에

상기한 대목 "살점 하나 안 남기고 절묘하게 귀만 도려내다니 대단한 솜씨야."의 출처가 어디인가

또는 왜 따옴표를 부쳤으며 출처를 밝히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노무라 아쓰시는  책에서 고흐의 "권총 자살"에 관해서는 아주 놀라운 주장을 했는데

(내가 여직 읽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였다)

"귀 절단"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얘기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서 신빙성은 별로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포스트가 필요하다.




아래의 문건은 작성일이 1930년 4월 18일로 되어있다.

약 42년 전의 기억이지만 이 당시 펠릭스 의사는 63세 였다.

왼쪽 귀가 점선 방향으로 절단되었고 아래쪽 그림같이 귓불만 조금 남았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귀자른 사건 직후 고흐를 치료한 의사 펠릭스 레이(Dr. Felix Rey, 1867-1932)가

사건이 있은 42년 후에 미국의 소설가 어빙 스톤(Irving Stone, (1903-89)이

고흐의 자서전적 소설(Lust for Life, 1934)을 쓰기위하여 그에게 문의 했을때

자신의 처방전에 그림으로 설명을 하며 보내준 것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에

위치한 밴크로프 도서관(Bancroft Library)에 보관된 어빙 스톤의 서류함에서

2010년 버나뎃 머피(Bernadette Murphy)의 요청으로 자료를 조사하다가 발견된 것인다.




고흐가 치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려준 Dr. Rey의 초상화(1889)

모스크바의 뿌쉬킨 미술관의 소장품이다.

뿌쉬킨 미술관에서 본 기억이 새로운데 그는 당시 22세의 신출내기 의사였다.





한편 아를르 지역에서 30여년을 살며 현지의 주민들을 상대로 연구조사한 결과로

저자 버나뎃 머피는 고흐의 잘린 귀를 그날 밤 받은 여인이 누구였는지도 밝혀내었는데

가족들과의 약속으로 성씨는 밝히지 않고 이름은 개브리엘(Gabrielle)이고

알려진 것과 같이 창녀가 아니고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원이었다고 밝혔다.

라셀(Rachel)이란 이름의 "창녀"가 아니었다고 한다.



저자 버나뎃 머피




책의 표지



고흐는 귀에 붕대를 하고있는 자화상을 2점 남겼는데

자세히 보면 귀에 상당히 크고 두터운 붕대를 댄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생각하듯 귓불만 조금 잘랐다면 저렇게 큰 붕대를 대고 목과 머리로 감았을까?

좌측의 그림은 예전에(80년대 이니까) 런던에서 구경한 일이 있는데

위작(僞作, forgery)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흐는 위의 붕대감은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귀 절단"에피소드가 있은 후에 그의 왼쪽 귀가 보이는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

아래의 목탄화는 고흐가 임종한 후 의사 가세(Dr. Paul Gachet, 1828~1909)가 그린 것으로

그의 얼굴 왼쪽이 보이는 유일한 그림이다.

이 그림으로 보아 왼쪽 귀가 제대로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자신이 애머추어 화가이기도 했던  의사 가세가 과연 멀쩡히 있는 귀를 저렇게 그렸을까?


27.3 x 22.8cm. July 29, 1890
암스텔담 고흐 미술관 소장.
장례가 끝난후 Dr. Gachet가 우측 하단에
"A mon ami, Theo van Gogh 29 juillet  P Gachet"라고 써서 테오에게 준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테오에게"







필름 캐머러로 찍던 시절에 가서 본 프랑스의 남부로

10일쯤 후에 집사람이 대학친구들과 약 2주 여행을 떠난다.

사진 욜씨미 찍으라고 최신형(?) 셀피 스틱도 사 주고 

일정에 들어있는 동네에 가서 꼭 들려서 볼 곳의 자료를 잔뜩 준비해 주었는데

제대로 보고 찍어올 것인지 that's the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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