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예해방 기념일
06/19/202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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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19일 미국의 상,하원이 함께 "미국 영토내에서 노예제도(slavery)나 

비자발적인 노역(involuntary servitude)불법"이라는 내용의 법령을 제정한 날이고

("Be it enacted by the Senate and House of Representativ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Congress assembled, That from and after the passage of this act there shall be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in any of the Territories of the United States now existing, or which may at any time hereafter be formed or acquired by the United States, otherwise than in punishment of crimes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이를 근거로 링컨대통령이 같은 해 9월 22일 대통령의 선언과 행정명령으로 노예의 해방을 선언

(Emancipation Proclamation)하고 1863년 1월 1일 부터 실행한다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쥰틴스(Juneteenth)로 특히 흑인사회가 기념을 하는 오늘은 

미국 의회가 1862년 6월 19일에 법령을 제정하였고 링컨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였지만

연합국의 제일 변방인 서남쪽에 있으며 남부연합의 구성원으로 있던 텍사스주에서는 실효가 없었다.

그러나 1865년 6월 19일 그레인져장군(Gen. Gordon Granger)이 이끄는 연방군(Union Army)이 

갤베스톤(Galveston, TX)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노예 해방령을 선포함으로써 마지막까지 버티던 

텍사스주에서도 노예가 해방되었기 때문에 해방일(Liberation Day) 또는 

자유일(Freedom Day)이라고도 부르며 오늘을 기념하게 되었다.


최근에 미니애폴리스나 어틀랜타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건들로 인하여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회사의 공휴일로 정하고 오늘은 휴무라고 한다. 


미국에 언제 처음으로 흑인노예가 들어왔을까?


1619년 8월 20일 20명의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들이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Jamestown, VA)에서

거래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버지니아는 영국령 식민지였다.

그들을 싣고 온 배는 영국인 해적선 "흰 사자"號(The White Lion)였는데 

이들은 신(新) 에스빠냐(Nueva Espan~a,현재의 멕시코)의 베라끄루스(Veracruz, Mexico)로 

흑인노예를 수송하던 뽀르뚜갈의 노예선 "상 후안 바우띠스따"號(Sao Juan Bautista)를 습격하여 

흑인들을 탈취한 것이었다. "사람 화물"(human cargo)이라고 했다.


흑인노예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배계급에 있던 흑인들이 같은 부족의 일원들을 

뽀르뚜갈 노예상인에게 넘기거나 적대관계에 있던 부족의 일원들을 넘겨준 경우도 있고

뽀르뚜갈 노예상인(군인)에게 사냥을 당하여 잡혀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현재 골라(Angola)가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당시 뽀르뚜갈의 식민지였다.


불행하고 뼈아픈 미대륙의 흑인노예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이들의 아픈 역사를 알고 있는가?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국 노예선의 도면.


이런 상태로 1~2개월씩 걸리는 항해를 했다고 한다.

상상을 해 보시라.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싣고 미국땅에 들어온 것은 언제고 누구일까?


1860년 7월 앨러바마州의 모빌(Mobile, AL) 근처에 불법으로 110명의 흑인노예를

아프리카의 베닌(Benin, 당시에는 다호메이왕국, Kingdom of Dahomey )에서 100달러/1인에 구매하여 온 

미국인 선장 윌리엄 포스터(William Foster)였고 싣고 온 배는 클로틸다號(Clotilda)였다.

이 선박의 주인은 조선소와 목화농장(cotton plantation)을 운영하던 티모시 메이허(Timothy Meaher)였고

110명의 흑인노예들 가운데 60명은 메이허와 포스터의 가족들이  소유하고 나머지는 팔려갔다.


포스터선장은 불법으로 흑인노예를 수입해 온 범행을 숨기기 위하여 밤을 이용하여

모빌江(Mobile River) 상류 12마일지점으로 클로틸다號를 옮긴 후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미국의회는 1807년에 흑인노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1808년 1월 1일 부터 시행키로 했다.

클로틸다號에 실려서 온 흑인노예들 가운데 제일 오래 산 쿠죠 루이스(Cudjo Lewis, 1841-1935)를 

중심으로 애프리카타운(Africatown, Al)을 형성하여 그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있다. 


쿠죠 루이스, 1914년

사진: Emma Langdon Roche, Historic Sketches of the South (New York: Knickerbocker Press, 1914)



이들을을 싣고 온 클로틸다號(Clotilda)의 선체가 모빌江 진흙속에서  2019년 5월 발견이 되었다.

당시의 해상보험 증서에 의하면 배의 크기가 길이 86피트, 폭 23피트, 하갑판의 높이 6 11/12피트인데

발견된 선체의 크기가 일치하고 불에 탄 흔적이 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紙에서도 보도한 적이 있다.


클로틸다號와 애프리카타운(Africatown, Al)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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