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MoMA)에 걸린 그림얘기-1
12/27/201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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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블로그 뉴스에

뉴욕에서 열리는 뭉크(현대 미술관)/삐까소(구겐하임 미술관)/마티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특별전시회를 소개하면서

은근히 뉴욕주변에 계신 중앙블로거들 가운데 어느 분이던

참관 후기를 올리시겠지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오늘 버지니아에 사시는 서정님께서

뉴욕의 MoMA를 방문하시고 훌륭한 참관 후기를

기가 막힌 사진들과 함께 올려주셨다.

http://blog.koreadaily.com/nounkwak/633903

(스크랩 북 폴더에 옮겨다 놓았음)

 

 

오늘은 올려주신 그림들 가운데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라는 미국의 현대화가가 그린

"크리스티나의 세상"(Christina's World, 1948)을 살펴본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20세기 중반에 가장 유명했던

미국의 현대 화가중 하나이었고

화풍은 향토색이 짙은 사실주의였다. 

그는 약 1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화가는 수를 누리고 91세의 일기로 200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향토색이 짙은 고향과 하계 별장지를 배경으로 한

드로잉과 수채화, 그리고 템페라화(tempera畵)를 남겼다. 

 



우선 그림의 주인공을 보자.

얼핏 보면 한 여인이 그냥 언덕위에 있는

집(하얀?)을 올려다 보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확대한 그림에서

여인의 오른 팔과 왼쪽 발을 보면 상당히 가냘픈 것을 볼 수 있다.

 

 

 

 

 

화가는 여인의 팔과 소매사이의 검은 여백과

오른 팔과 왼 발의 나약한 근육으로 이 사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Christina Olson(1893-1968)은 3세때 부터 걷지를 못한

소아마비(또는 이와 비슷한 퇴행성 근육마비) 환자로

그림이 그려진 1948년(당시 55세)에는 화폭에 담긴 지역을

그림에서 보듯이 두 손으로 몸을 끌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휠췌어 사용하기를 거부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그림이 그려진 후에도 20년을 더 살았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2개월을 제외하고는 바로 이 화폭속에서만 살다가 갔다.

그러니 "크리스티나의 세상"이 얼마나 처절한 제목인가!

 

 

화가 와이어스는 고향인 Chadds Ford, Pennsylvania州와

하계 별장지 Cushing, Maine州를 오가며 거의 전생애를 보냈다.

크리스티나는 Cushing의 이웃이었고 미래에 와이어스의 부인이 될

Betsy James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릴때 뒷모습은 자기 부인인 Betsy를 모델로 하고

팔과 다리는 크리스티나의 것으로 했다.

당시 Betsy는 20대 중반이었고 크리스티나는 이미 50대 중반이었다.

 그는 여인의 바람에 날리는 머릿카락, 카락을,

풀포기들 하나하나를 극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림의 집만 확대한 것.



와이어스는  언덕 위의 이 3층 집과 그 주변을

약 300점의 연필화, 수채화, 템페라畵로 남겼고 

와이어스의 그림이 유명해짐에 따라서

와이어스의 그림과 관련이 있는 집이라고 하여

2011년 6월 미국의

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크리스티나가 세상을 떠난후 여러 손을 거친 후

애플 컴퓨터 CEO이던 John Sculley(기억하시나요? 애플에서

Steve Jobs를 내쫒았던 인물인데)가 구입을 한 후 1991년

현재의 운영자인 Farnsworth Art Museum에 기부를 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부자들이여, 자식들에게 우찌하몬 재산 더 남가줄꼬 하고

짱구굴리지 말고 이런것 쫌 배워라!)

 


와이어스는 이 집 3층에도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스튜디오 창문에서 처음으로 크리스티나가 그림에서 보듯

기듯이 풀밭을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와이어스부부는 크리스티나와 그의 오빠 알바로(Alvaro)의

몇 되지않는 왕래가 있는 절친한 이웃이었다.

 

(사진: 뉴욕타임즈紙에서, Matt McInnis for The New York Times)

 

 

내가 와이어스를 알게 된것은 1986년 그의 그림얘기와 함께

그가 Time紙의 표지에 나왔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매우 흥미있게 읽었었는데 내용은

화가 와이어스가  Helga Testorf라는 여인의 그림을 약 14년(1971-85) 동안

247점이나 그렸는데(대부분이 습작 스켓치이고 누드화도 있고 약 40점은 템페라畵)

자기의 부인인 Betsy나 그녀의 남편인 John Testorf도 몰랐었다는 것이다.

일명 "헬가 그림" 또는 "헬가 씨리즈"로 불린다.

그는 이 그림들의 존재를 1986년 8월에 발표하여 Time紙의 표지에 올랐다.

헬가는 Cushing의 Karl Kuerner家를 돌보는 간병인/가정부였었는데

1971년 Kuerner의 농장에서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와이어스는 Karl과 그의 부인 Anna를 모델로 1948년 부터 여러점의

그림을 그렸었고 그의 농장을 배경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The Kuerners, 1971, drybrush, 67x102cm.

 

와이어스와 헬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으니 묻지 마시라.

두 집안은 와이어스가 세상을 떠날때 까지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한다.

 

 

 

Time紙표지의 그림에서는 짤렸지만 실제의 그림은 젖꼭지와 유방전체가 보인다.
"Letting Her Hair Down", 1972.

 

 

연필로 대충 스켓치를 한 후 그의 수채화 기법은 드라이 브러쉬
(Water color, drybrush)라고 하여 브러쉬의 물감을 짜낸 후
칠하느 방법을 선호했다.

 




 

 

 



이 그림의 대부분은 텍사스 출신의 Leonard Andrews라는 친구가

약 6백만 달러정도를 지불하고 한몫에 샀고 그 이후로는 여기 저기 낱개로

팔았다는 소문만 있다.

내가 익히 보았던 그림은 아래의 "땋은 머리"(the Braids, 1979)이다.

헬가의 초상화로 템페라畵이다. 그림이 아니고 거의 사진 수준이다.


 

 

템페라畵는 안료를 달걀의 노른자와 섞어서 그린 그림으로 일반적으로

달걀의 노른자가 빨리 마르는것을 완화하기 위하여 1:1의 비율로 노른자와

식초를 섞기도 하고 1:2의 비율로 노른자와 화이트 와인을 섞어서 쓰기도

한다고 한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오래된 聖畵(Icon)들이 모두

목재페널에 템페라화로 그린 대표적인 것들이다.

 

 

 

 
앤드루 와이어스,크리스티나 올슨,헬가 테스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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