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76년전의 D-데이 날
06/06/20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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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은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약 16만명의 연합군 군인들이 약 5000척의 함정을 이용하여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건너 프랑스의 노르망디(Normandy)해안으로 상륙작전을 시작한 날이다. 

작전명은 넵튠作戰(Operation Neptune)이었는데 자정을 조금 지나 약 24000명의 연합군 낙하산부대가

투하되면서 시작되었고 해안상륙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였다고 한다.


(아래 3장의 도면은 https://www.bbc.com/news/world-48513108에서)

낸시님의 시아버님은 노르망디의 상륙예정지에서 제일 서쪽 목표지였던

상메레기스(St.-Mere-Eglise)지역으로 새벽 1:45에 낙하하셨을지 모른다.







로벗 캐파(Robert Capa, 1913-1954)는 헝가리 출생의 유명한 미국인 사진저널리스트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취재하기 위하여 제2진으로 상륙했었다.


그의 오리지널 사진.




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이 없었었다면 헐리웃 영화산업이 상당히 심심했을것 같을 정도로

우리는 2차 세계대전에 얽힌 수많은 영화를 보며 자랐고 여전히 보며 지낸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렸던 "가장 길었던 날"(The Longest Day, 1962)을 필두로 

스필버그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

탐 행크스의 "전우들의 이야기"(Band of Brothers, 2001),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덩커크"(Dunkirk, 2017)등의 영화가 얼핏 떠오른다.


그럼 D-데이의 "디"는 무엇인가? 사실은 별것이 아니다. nothing special!

"날자"를 말하는 day의 첫 글자 "D"에서 왔는데 군대에서 작전을 개시하는 날을 "데이"(Day)라고 한다.

말하자면 "작전개시일"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D-1이면 작전개시일 하루 전, D+3이면 작전개시일 삼일 후가 된다.


어제 날자에 꼭 맞춰서 블방의 낸시님께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낙하산병으로 참전하셨다가

발에 부상을 입으셨던 시아버님의 이야기를 하시며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미국의 군장성들에 관한 얘기를 쓰셨는데

특히 대한민국의 한국전에 미국 8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였던 워커장군(Generals Walton Walker)과

밴 플리트장군(General James van Fleet)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에 관해 잠시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조금 보태려고 한다.

(이 포스트를 올린 후 낸시님의 방에서 답글을 읽어보니 시아버님께서는 2차대전이 끝난 후

다시 한국전에도 참전을 하셨다고 한다. Thank him for his service & sacrifice)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 연합국의 총사령관(Supreme Commander)은 미국의 34대 대통령을 지낸

드와이트 디 아이젠하우어장군(Gen. Dwight D. Eisenhower, 1890-1969)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후광을 가지고 1952년 11월 선거에서

공화당후보로 출마하여 3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아이젠하워장군의 아들 쟌 아이젠하우어(John Eisenhower)도 미육군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을때의 이야기이다.


상륙작전일 하루 전인 6월 5일 미육군 101공수사단(101st Airborne Div)대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아이젠하우어장군

 


대통령당선자 아이크(Ike)와 그의 아들 쟌 소령.



1952년 12월 당시 대통령당선자였던 아이젠하우어장군이 전쟁이 한창인 한국전의 상황을 살피러

방한하여 8군 사령부를 방문하고 전황을 당시 사령관이던 제임스 밴 플리트장군에게 보고를 받은 후

그에게 질문을 했다. “장군, 내 아들 쟌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브리핑에 참석을 했던 미군, 한국군의 고위장교들은 물론 취재진들도 이같은 대통령당선자의

매우 사적인 질문에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전방의 미 제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는 짤막한 답변을 들은

대통령당선자는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배치시켜 주십시오."하며 사적인 부탁을

여러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하여 모든 사람이 매우 놀라고 있을때 말을 이었다.

“내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프지만 나는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쟌 아이젠하워 소령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령관이 즉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때서야 놀라고 의아해하던 분위기가 바뀌었고 밴 플리트장군은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각하!”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미 2사단 72탱크 대대의 대대장 피렌바흐(T.R Fehrenbach, 1925-2013)중령이
전역 후에 저술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 1963)이라는 책에 있는 얘기이다.
후에 쟌 아이젠하우어는 준장으로 예편을 했고 벨지엄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다.





위에서 언급한 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장군(General James van Fleet, 1892-1992).

대통령당선자 아이젠하우어의 아들을 전방에서 후방으로 전출시킨 8군 사령관인데

공군폭격기(B-26)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그의 아들 밴 플리트 쥬니어( James van Fleet, Jr) 중위가

1952년 4월 2일 압록강 남쪽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이되었으나

2일간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 그는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도록 명령을 하였다.

"짐 밴프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위험하다.”

당시에 인접 한국군 부대장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던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 명신 장군의 증언이다.


약 8개월 전 자기 아들의 수색작전을 중단시킨 밴 플리트장군에게 상기한 바와 같이 

대통령당선자 아이젠하우어가 자기의 아들을 후방으로 전출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했을때 

처음에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을 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된다.



제임스 밴 플리트장군







월튼 워커 대장



초대 주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대장(General Walton Walker, 1889-1950).

워커대장은 한국전에 참전중인 아들인 샘 워커 대위가 소속된 미육군 24사단을 독려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작전을 하던 도중에 올린 훌륭한 전과에 대한 부대 표창과  

샘 워커 대위에게 미국정부가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을 직접 달아주기 위하여 가다가 

그가 탄 짚(Jeep)과 한국군의 트럭과 충돌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인 1951년 12월 23일이었었다. 

이틀 후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맥카서 장군(Douglas MacArthur, 1880-1964)이 

샘 워커 대위를 토쿄의 사령부로 호출을 한 후 그가 직접 아버지 워커 대장의 시신을

알링턴 국립묘지까지 운구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불독’(Bulldog)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워커대장은 맥카서 장군휘하에서

일본에 주둔한 미 8군의 사령관으로 근무중 한국전의 발발과 함께 참전하게 된

주한 미 8군 초대 사령관이었고 전쟁 초반에 북한군에게 밀려 낙동강 지역까지 내려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Stand or Die)는 명령을 내렸던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

이 명령은 당시 자신의 참모진이나 부하들에게 매우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실제로는 토쿄의 맥카서 장군이 그에게 내린 "더 이상 한 치도 후퇴를 말라"

(not to retreat an inch)는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는데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에 대해

그가 구축한 낙동강을 둘러싼 최후의 방어선을 "워커 라인"(Walker Line)이라고 불렀고

이것은  포항(동)-영천-대구(북)-창녕-마산-통영(남)을 연결한 것이었다.

그가 지휘한 미국군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없을지도 모른다




워커 대장(좌)과 딘 소장(William F. Dean, Sr., 1899-1981)

대전 비행장 부근에서, July 7, 1950

딘 소장은 소수병력으로 대전지역을 사수하다가 포로가 되어 3년간 전쟁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위에 언급한 워커대장(당시에는 중장이었다)의 아들 샘 워커대위(Captain Sam Walker)는

당시 보병 24사단의 중대장이었는데 후에 최연소자로 대장까지 승진을 하여 미군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대장이 되는 명예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카터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군시키려는 안을 반대하였다가 그와의 불화로 결국 예편을 하게된다.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던 쟌 싱글러브 소장(John K. Singlaub, 1921~) 역시 

카터대통령의 철군안에 반대를 했다가 예편을 한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샘 워커 대장


샘 워커 대장이 한국의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맥카서 장군과의 만남을 소개한다.

(TBC-TV 6.25 30주년 다큐멘터리)

"이틀 뒤 나는 도쿄의 UN군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불려갔습니다.
사령관이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워커 대위! 아버님의 전사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월튼 워커 대장은 정말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 미군은 물론 미국의 커다란 손실이다.
귀관에게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저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
각하, 그것은 안 됩니다. 저는 일선의 보병 중대장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부대는 후퇴중입니다. 후퇴작전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각하는 잘 아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부하들은 목숨을 건 위험에 노출되어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대장이 바뀌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중대에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는 의전 부대에 맡기십시오.
각하의 휘하에는 반드시 의전 부대가 있습니다. 저는 전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 이미 문을 향해 걸어 나가던 맥아더 사령관이 뒤돌아서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 이것은 명령이야’
그리고는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 있었던 워커 힐(Walker Hill)이 

턴 워커장군의 이름에서 온것을 아는 분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쉐라톤호텔이 있었다가 지금은 비스타 워커힐이라고 개명을 했다고 한다.



월튼 워커 대장의 기념비

2009년 12월에 교통사고가 났던 곳으로 알려진 곳에 세워졌다.

현재 도봉동 지하철 역 부근이라고 한다.

(실제 사고지역은 약 200미터 떨어진 곳인데 식당의 주차장이고 사유지라고 한다.

앞줄 가운데 분이 김리진씨인데 한국전 참전용사이고 100% 자비로

1980년부터  워커장군 추모기념사업회를 홀로 운영하시는 분이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nNewsNumb=20140214045&nidx=14046



워커장군이 탔던 짚과 정면충돌을 한 한국군 6사단 3/4톤 트럭과 사고현장.

상기한 김리진씨가 미국방성에서 제공받아 사고지점을 찾는데 사용되었다.

그는 미 8군 보병 2사단 공병대의 지형 분석팀의 도움을 받았으며 

사고당시에 14세로 사고현장을 목격했다는 도봉구 주민의 도움으로 3년 4개월만에

사고지점이 현재 서울의  도봉 1동 596-5번지로 확인을 했다고 한다.



 도봉 1동 596-5번지의 식당 주차장의 전주에 붙어있는 표지판.

"워커대장 전사지"란 표지판에 김리진이란 성명이 밑에 보인다.

(낸시님 포스트에서 가져옴. http://blog.koreadaily.com/nancymoore/1150333)




한국전쟁동안에 미군장성의 아들이 142명이 참전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35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전사를 했다고 한다. 이것은 북한군으로 참전을 하였다가

전쟁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전쟁 후 석방되어 남한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온

T. I. Han이란 분이 쓴 책 "외로운 영웅: 한국전 전쟁포로의 회고록"(Lonesome Hero: Memoir of

Korean War POW)의 257쪽에 실려있다. 다른 곳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숫자이다.




한국에서 가끔 올라오는 병역비리 사건들, 특히 고위층, 부유층 자재들의 불법적인

병역면제/병역기피의 소식이 들릴때 생각나는 이야기 들이다.

하기야 이제는 한국군에서 주적(主敵, enemy force)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하니 할 말이 없지만.

참고로 대한민국의 "국방백서" :

`2016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의 상시적인 군사적 위협과 도발은 우리가 직면한 일차적인 안보 위협이며 특히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은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현되었으나

'2018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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