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요? 고전음악듣기를
05/07/20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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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과 같이 방콕/집콕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때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1833년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독일에서,

1840년에 챠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 1840-1893)가 러시아에서 태어난 날이다.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작곡가들이다.

우선 Happy Birthdays to you, Maestros!!! Thank you for leaving us beautiful music.


그리고 인간이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서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제9번 "합창 교향곡"(Symphony No. 9 in D minot, op. 125)의 첫번째 공연이 

1824년 비엔나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브람스에 관해서는 몇 년전 그의 생일에 맞춰 "브람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것이 있어서 오늘은 챠이콥스키의 얘기를.




니꼴라이 쿠츠네쵸브(Nikolay Kuznetsov, 1893)가 그린 말년의 초상화이다.


챠이콥스키를 얘기하자면 그의 피아노/바이얼린 협주곡이나 제6번 교향곡 "비창"등을 뺄 수 없고

주옥같이 많은 발레음악곡들이 있지만 

다 폰 멕(Nadezhda von Meck, 1831-1894)이란 그의 소리없는 후원자였던 여인의 얘기이다.

얼마전 블방의 낸시님이 시인들의 얘기를 쓰시며 동성애자들을 소개했는데

챠이콥스키도 "벽장에서 나오지를 못한" 동성애자였다. 제정러시아 시절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부유한 철도회사의 미망인이었던 폰 멕여사와 챠이콥스키는 1877년부터 1890년까지

약 1200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나 만나지는 않았다. ( 빈쎈트가 테오와 약 700통을 남긴것은 약소하다)

폰 멕여사가 1877년 먼저 서신으로 1년에 6000루블을 지원하기로 약속을 하면서 내어놓은 

단 한가지 조건이 두사람이 서로 만나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치무?(почему, why)


챠이콥스키는 제4번 교향곡(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을 폰 멕여사에게 바쳤다.

원래 악보에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에게 바친다"("Dedicated to My Best Friend")라고 썼는데

후에 그가 폰 멕여사에게 보낸 편지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지금 작곡을 하고 있는 제4번 교향곡을 당신에게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엔지니어로 공무원이던 그녀의 남편이 증기기관차가 러시아에 소개가 되자 대륙횡단 철로건설에 뛰어들어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1873년 갑자기 미망인이 되었다. 

16세에 결혼을 하여 모두 18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11명이 장성을 했다는데 끌로드 드뷧시(Claude Debussy)가

한때 아이들의 음악선생님을 했었다고 한다.

암튼 1890년 갑자기 경제상의 이유를 들어  폰 멕여사가 후원을 더 이상 할 수가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챠이콥스키의 전기를 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추측을 하나 사실에 근거한 확실한 이유는 모른다.



동성애자였다는 챠이콥스키는 1877년 자신의 제자였던 안또니나 밀리유코바(Antonina Miliukova, 1849-1917)와

결혼을 했으나 약 6주 후부터 빗나갔고 이혼도 하지 않은채 완전 별거생활을 했다고 한다.  와 했노? 치무?


1877년 안또니나와 신혼여행때의 사진



그러나 챠이콥스키는 이미 1868년 벨지움 출진의 소프래노 가수 데지레 아톳(Desiree Artot, 1835-1907)을 만나

결혼까지 고려를 했으나 도중하차를 했다. 이것도 이유에 대해서는 썰(說)이 분분하다. 그녀가 오페라 가수를

그만두고 모스크바로 이주하기를 거절했다던가 그녀가 챠이콥스키의 동성애 편향을 알게 되었다던가...





그의 전기작가들에 의하면 몇명의 남자연인들의 이름들이 나오는데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하나 있어 심심풀이 땅콩으로 올린다. 

그의 이름은 이요시프 까첵(Iosif Kotek, 1855-1885)으로 바어얼린 연주자였는데

챠이콥스키가 그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작곡을 할때 연주기교에 관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러시아정부는 오래 전부터 챠이콥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입장이었고

그런 정황이 보이는 편지나 기타의 자료들은 검열을 통하여 발표를 억제해왔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가 동성애자로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왼편이 이요시프 까첵이다. (1877)



이렇게 챠이콥스키의 얘기에는 아리송한게 많은데 

마지막으로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정설이 없다.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지.

공식적으로는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 콜레라로 사망하였다이고

일설에는 자살이라고도 한다.   

그는 1893년 10월 16~28일 기간에 쌍트 뻬쩨르부르크(St. Petersburg, Russia)에서

자신의 지휘로 그의 마지막 교향곡 제6번 "비창"(Symphony No. 6, Pathetique)을 초연하고

9일 후에 세상을 떠났고 쌍트 뻬쩨르부르크에 있는

알렉산더 네브스키 수도원(Alexander Nevsky Monastery)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

그곳에는 많은 러시아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묻혀있다. 그곳을 가시는 분들께는 강강추추!

공교롭게도 그의 숨은 후원자였던 폰 멕여사도 약 3개월 후 결핵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혹시 챠이콥스키를 또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셔서 더 연구를 하실 분에게 웹싸이트를 하나 소개한다.

웹싸이트의 이름은 Tchaikovsky Research이다.

그가 주고받은  5,383통의 서간문이 년대별로 수집되어있고 그에 관한 기사, 논문, 책등이

8,939건 수집되어있다. 물론 작품목록도 있다.

http://en.tchaikovsky-research.net/pages/Main_Page



역사에서도 정사보다는 야사가 흥미롭듯이 그의 유명한 작품의 얘기보다는

이런 뒷얘기가 시간보내기로 읽기에는 괜챦지 않을지.

Stay healthy & be safe :-)


제가 가끔 소개를 드리는 엘레이에 있는 24시간 광고선전없이 클래시컬 뮤직만 들려주는 방송국 KUSC

(https://www.kusc.org/)  그들의 웹싸이트를 가서 컴퓨터에 연결하면 24시간 즐길 수가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 1번(Piano Concerto No 1)을 마사 알거리치(Martha Argerich)의 연주로.

무려 45년 전 연주로 이 할머니 정말 젊었을때 이고 스위스 로망드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샤를르 드트와(Charles Dutoit)와도 쌩쌩할때의 모습이다.


Martha Argerich, piano - Charles Dutoit, conductor 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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