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를 찾아 3만리-4
11/03/20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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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호흐(밴 고흐)를 해바라기와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자살/타살이나 귀절단도 함께 들어가지만.


보통 빠리(Paris)에 있던 시절에 그린 4점과

아를르(Arles) 시절에 그린 7점을 포함하여 모두 11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고들 하지만

판 호흐는 그 이전부터 해바라기를 무척 좋아했었는지 여러 점을 그렸다.


11점의 해바라기 그림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그 이외에 그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을 몇 점 소개해 본다.


이번 오베르쉬르와즈에 갔을때는 해바라기 철이 조금 지났는데

묘지에 놓인 것과 성당이 뒤로 보이는 집마당에 아직도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만났고

우리가 며칠 묶었던 집의 이름이 "해바라기 집"(Gites les Tournesols)이었다.

what a coincidence!!!  








오베르쉬르와즈 기차역의 지하도에 그려진 해바라기.







묶었던 집이 X표를 한 집인데

(아래의 사진 3장은 방송프로그램의 화면캡쳐)





  "호흐의 일대기"(Van Gogh: The Life, 2011)의 저자 네이프(Steven Naifeh, 좌)가

CBS방송국의 "60분"(60 Minutes)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호흐는 고의나 사고에 의하여

살해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프로그램의 호스트 몰리 쉐이퍼(Morley Safer, 우))에게

오베르쉬르와즈의 주민 가운데서 사건당일 (구전으로 내려온 얘기지만)

 부쉐가의 한 농원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었고 

부쉐가의 길에서 호흐를 본 사람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기한 11점의 해바라기를 그리기 이전에 그린 

해바라기 그림 5점을 소개하는데 이외에도 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장미와 해바라기"(유화, 1886년, F250)





"해바라기가 서있는 창고"(연필, 펜, 수채화, 1887년, F1411)





"몽마트르의 창고"(유화, 1887, )





"해바라기가 있는 경작지"(유화, 1887년, F388v)





"드브레이의 정원에 핀 해바라기"(유화, 1887년, F810)




물론 이것도 우연이었겠지만

엘레이를 떠나 빠리로 가던 에어 프랑스에서 준비한 영화 가운데

배우 윌렘 드포우(Willem Dafoe)가 호흐로 열연을 한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간에서"

(At Eternity's Gate)를 감상하며 갈 수가 있었다. what a coincidence indeed!





윌렘 드포우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후보로 올랐었다.





앗! 왜 두 사람이 다른 쪽에 붕대를 감고있을까?



윌렘 드포우는 왼쪽 귀에 붕대를 감았지만 우리가 영화의 장면을 보는 것이므로

우리의 오른쪽으로 보이고

호흐 자화상에서는 호흐가 자신이 거울에 비치는대로 그렸기 때문에

우리의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다.

호흐는 그의 왼쪽 귀를 귓불만 조금 남기고 절단했다. 귓불만 조금 자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귀자른 사건 직후 호흐를 치료한 의사 펠릭스 레이(Dr. Felix Rey, 1867-1932)가

사건이 있은 42년 후에 미국의 소설가 어빙 스톤(Irving Stone, (1903-89)이

고흐의 자서전적 소설(Lust for Life, 1934, 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을 쓰기위하여 

그에게 문의 했을때 자신의 처방전에 그림과 설명을 한 것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에

위치한 밴크로프 도서관(Bancroft Library)에 보관된 어빙 스톤의 파일함에서

2010년 버나뎃 머피(Bernadette Murphy)의 요청으로 자료를 조사하다가 발견된 것인다.


버나뎃 머피는 "밴 고흐의 귀"(Van Gogh's Ear, 2016)라는 책을 약 10년간의 연구끝에 마쳤는데 

그녀에 의하면 작가 어빙 스톤이 고흐의 자서전적 소설을 준비하기 위하여

1930년 8월 프랑스의 아를르(Arles)지역을 방문하여 의사 펠릭스 레이를 만났고 

그자리에서 그림설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1930년 8월 18일이라고 적혔다.

윗 그림은 점선으로 표시된 방향으로 왼쪽귀가 절단되어 나간것을 설명하고 

아랫것은 남은 부분을 그린 것이다.

오른손 잡이는 왼쪽귀를 자르기가 더 쉽다.


책의 저자인 버나뎃 머피(Bernadette Murphy)는

아이리쉬系 영국인인데 프랑스의 아를르(Arles)지역에서 약 30년을 살며

고흐의 귀절단 사건에 의문점을 갖게되어 비전문 미술사가(美術史家)가 되었다.

그녀는 호흐가 귀를 준 여인이 창녀가 아닌 청소부였다는 것도 밝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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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암스텔담의 호흐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바라기"(15송이의 해바라기가 꽂힌 그림, F458)를

더 이상 대여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는 소식을 "그림방"(Arts)에 올렸었다.


"미술관 관장 악슬 뤼거(Axel Ru"ger)에 의하면 "해바라기" 그림을 보존/복원하는 과정에서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림이 "망가지기 쉬운"(fragile) 상태에 이르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다행히 캔버스나 그림물감의 상태는 안정적이지만 "진동이나 습도/온도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린 조치라고 한다.

현재 미술관에서 보존/복원하는 과정이 끝나면 2월에 다시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판 호흐 미술관이 1973년에 개관된 이래 "해바라기"그림은 6번 해외 나들이를 했는데

2014년 런던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London)으로 나들이 갔던것이 마지막이었다."


판 호흐 미술관 관장이었던 악슬 뤼거(Axel Ru"ger)

그는 영국의 왕실미술원 원장으로 발탁되어 간다.

(Jan 24, 2019.PHOTO: REUTERS)



또 미술관측은 보존/복원하는 과정에서 호흐가 사용하던 캔버스 프레임이 그림에 비해 작아서

윗부분에 약 3.5쎈티미터의 나무조각을 덧대어서 캔버스의 크기를 늘린것을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손지문도 발견하였다고 한다. (아래 사진 참조) very interesting!!!



판 호흐 미술관의 선임 복원가  엘라 헨드릭스(Ella Hendriks)가 복원/연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 표시를 한 부분으로 흐미한 선이 보인다.

1961년  복원과정에서 조금 잘못된 결과라고 한다. 









호흐가 목재를 덧 대었을때 사용한 다섯개의 작은 못(빨간 점)과

1961년 복원과정에서 사용한 3개의 볼트(파란 점). 이때 덧댄 목재가 조금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1961년에는 미술관이 개장하기 전이고 이 그림은 판 호흐의 조카(테오의 아들)가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그림에서 발견된 호흐의 지문.

미술관의 페북에 올려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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