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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말 한마디 '부끄러움'
10/11/20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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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졌다면 이런 혼란은 없으련만.....



윤동주가 말했던 한마디 말  '부끄러움' 

 중국 초기역사에 주(周) 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무너트리고 기원전 1046년에 통일을 한다. 그리고 무왕이 넓은 국토 전부를 직접 통치가 불가능 했으므로 그의 친척과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국토를 나누어 소위 태수라는 직분을 주며 통치토록 한다. 봉건제도의 출발이다. 초기에는 지방 통치자들이 주나라를 섬기고 공납도 하였다. 그러나 2 대 3 대를 지나니 친척들과 공신들이 초기에 가졌던 충성심도 없어지고 그리고 이웃 태수끼리 영토 등 이권으로 분쟁이 시작되었다. 

 주나라 무왕의 시대로부터 약 260 지난 기원전 770 년 후부터 진나라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는 기원전 221 까지 약 550 여년의 이러한 지역의 분쟁을 역사가들은 춘추전국 시대라 부른다. 그 이후 중국의 역사는 천하 통일, 지방분권 통치, 지방 통치자의 반란, 그리고 다시 통일의 반복이었다.

 자연이 천하통일 후 절대자는 어떻게 하면 지방 태수들의 반란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안한 것이 과거제도이었다. 통치자는 아름다운 시를 짖는 소위 시심(詩心)을 가진 사람은 배신이나 반란은 안 할 것이다 생각했고 그래서 시제를 하나 주고 시를 지어보라 하는 과거시험을 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과거제도 또한 해결책은 못되었다. 일단 태수로 임명되자 그 아름다운 시심은 사라지고 그들 또한 탐욕과 배신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 계속 나타났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재미연세대총동창회에서 주관하는 윤동주 미주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리고 축사를 한 N 교수는 시인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심을 어느 정파가 자기들의 사상을 대표한다며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입시 시험에 문제로 출제하는 등 윤동주 시인 부끄러움 없는 그 아름다운 시심을 더럽히는 세속의 현황을 개탄을 했다. 이어서 수상자 조옥동 시인의 수상소감이 있었는데 그 녀는 고교 때에 윤동주의 시 서시에서 ‘부끄러움’ 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에 매혹되어 그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화두로 삼고 일생 시를 썼다고 했다. 이어서 백관수 선생이 동경 YMCA에서 1919. 2. 28 일 독립선언 낭독 후 감옥생활에서 지은 한시들을 한글로 옮긴 공로로 그의 아들 백순 시인이 특별수상을 했는데 수상 소감에서 백관수 선생의 시에서 그 또한 부끄러움이 그분의 시에 녹여 놓았다고 말 했을 때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윤동주 시인이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나 하며 천정을 올려보았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것이 윤동주의 서시 첫 4 행간이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부끄러움 이었다. 그래서 그는 몸을 감쌌다. 한국인 우리들은 인간이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 했는데 그중에서도 첫째가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하는 옷이었다. 인간이란 자기 마음속에서 아마도 이 부끄러움과 부당하고 탐욕스러운 마음과의 갈등 속에서 번민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소위 사림인지라 부당하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늘 하지만, 그러다가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 얼굴을 붉힌다. 이 때문에 인간 사회는 소위 인륜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며 이로 인하여 사회가 질서가 유지되며 굴러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근간에 내 주위에 특히 한국 땅에서 소위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며 부끄러움을 전혀 가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현 한국의 현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답지 못하고 매우 혼란하고 불안과 소요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은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운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되는 세상이다. 하늘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우리 모두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가끔이라도 떠 올리며 되새기며 살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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