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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사스 3 국 기행 2화 바쿠에서 세키로
09/26/20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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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바바 영묘 (살아있는 할아버지) 모스크 사원이다. 자그마한 마을에 이렇게 큰 모스크가 있다니


코카사스 기행 2 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서쪽 세키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고대 서양사의 주연은 로마이다. 그리고 로마가 주인공이 된 것은 지중해의 중심인 시실리섬을 지배하던 카르타고에 도전하고 승리함으로서 시작 된다. 이 소위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는 부강했던 나라이었고 밀 재배로 풍요로운 나라이었다. 그로부터 2,200 여 년이 지난 몇 년 전에 나는 그곳(오늘 날의 튀니지)를 찾았다. 밀밭이 펼쳐진 땅이 아니라 불모지 사막이었다. 불과 2200여년 사이에.... 

 바쿠에서 이제 서쪽 조지아 국경으로 우리 일행은 떠난다. 우리는 고부스탄 암벽화에서 소, 사슴 같은 사냥감의 동물, 표범 같은 맹수, 뱀 의 암각화를 보았다. 그러나 나를 태운 버스가 바쿠를 떠나서 한참 차는 달리고 있지만 계속 불모지 사막이었다. 불과 몇 천 년 사이에 암각화에서 보던 모든 동식물 등은 살아지고 불모지 사막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지구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실감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나에게 펼쳐진 자연풍광은 파노라마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지나니 사막에서 자라는 거친 풀에서 소와 양의 먹이인 목초로 변해서 소 와 양을 방목을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이어서 거무틱틱한 땅에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했더니 이어서 나무들이 늘어선 듯하더니 어느 사이에 산기슭에 울창한 산림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 거리 정도를 버스로 달리면서 즐긴 파노라마이었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보고 

평생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공산주위 체재아래서 살고 있었던 서민들 그들은 배 고품만 면하면 그런대로 불평 없이 산다. 이러한 국민 의식 속에 원유로 졸부의 대통령....그는 그러한 국민의식 수준에서 화려한 건물 짖고 자기 과시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껏 한다는 것이 교통 혼잡이 일어나자 차 좀 그만 타라 하면서 휘발유 2 값을 두 배로 올린 것뿐이다. 주유소 간판을 보고 얼핏 계산해 보니 휘발유가 갤런에 4 달라가 넘는다. 

버스가 바쿠시내 중심을 벗어나 시외에 접어들자 산언덕에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판자촌 집보다는 훨씬 좋지만 단독 주택으로는 좀 모자란다. 전기와 가스는 넣어주지만 무허가 주택이란다. 시골에 사람들이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수도 바쿠로 몰려들기 때문에 들어선 달동네 집들이다. 등기도 안 되어 사고팔기도 곤란하고, 언제 헐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산다. 그러면서 직장 구하기애 열중이다. 그런데 바쿠 시내 간판을 보면 아랍어, 자국어, 러시아, 영어를 어지러울 정도로 제 각각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세는 영어란다. 이 지역 취업에 영어를 하면 우선이라고 영어 열풍인 모양이다. 

황무지가 전개된다


바쿠 시외 달동네 


 얼마를 지나니 판자 집도 못되는 움막 같은 집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빵을 구어서 파는 집들이다.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값싸게 들여온 밀가루로 빵을 구어 서민의 배를 채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무들이 보이고 숲을 이루는 도로에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애들이 조그마한 봉투를 들고 서있다. 가이드가 차를 세웠다. 아이들이 우! 모여든다, 그런가 했더니 대장(?)같은 청년이 나타나서 애들을 정리하고 물건을 팔도록 한다. 바로 길가 호두나무에서 딴 호두다. 값은 봉지에 1 달라 이다. 비싸다. 그들에겐 우리가 호구이겠지. 대장 놈이 자기 몫을 적당히 챙기고 애들에게 좀 잘 챙겨주길 바랄 뿐이다. 언필청 아제르바이잔 국민 평균 소득이 1 만 불이다. 그러나 국민들 의식, 국가 관리의 반부패와 개선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빵 굽는 집 


진흙 화덕에 반죽을 붙혀 굽는다. 인도의 빵 난 과 같은 방식이다 


호두를 파는 애들에 왕초(?) 가 나타난다



                      보고, 탐방하고, 음식도 즐기고 

바쿠를 벗어나 얼마 안 가서 산기슭 중턱에 한국으로 치면 칠성각이나 삼신각 같은 작은 건물이 보인다. 올라가 보니 그저 방이 두 개 보였다. 그런데 마주 보이는 언덕에 꽤나 많은 무덤과 비석(?)들이 보인다. 그 암자는 본래 영험하다는 예언자의 무덤이고 그 예언자가 볼 수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내세에서 복을 받는다고 믿고 그렇게 무덤아 늘어섰다는 설명이다. 이스람 국가라 하드래도 토속무속 신앙이 꽤나 성행 했나싶다. 

한국에 칠성각 같은 개념이다 


죽어서 복 받겠다고 마주 보는곳에 뭍혀있다


다시 얼마를 갔나? 마자라라는 작은 마을에 디리바바 영묘(Diri Baba Mausolrum) 가 나타났다. 그동안 대도시에 웅장한 모스크를 보아 온 터라 크게 놀랄만한 건축물은 아니었으나 시골 마을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큰 모스크이었고, 내부 기하학적 문양과 장식 미술은 높은 수준이었다. 디리바바란 살아있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15세기 초에 지어진 수니파의 성자이란다. 

디리바바 영묘 사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역시 어디서나 기하학적 문양은 뛰어나다 


이곳은 성역화 된듯 했다


 마침내 조지아 국경에 가까운 세키(Sheki)에 도착했다. 페르시아 제국이후 투르크, 몽고, 티무르 등의 침략과 침략의 통로로 토착 영주들이 할거한 것이 아제르바이잔 역사라고 이미 밝혔지만 18세기에 아제르바이잔은 18 개의 토후 (왕국)가 존재 했으며 그 중 이 세키가 무역의 중심이란 지리적 이점으로 꽤나 번성했던 곳이다. 그래서 19세기 러시아에 제일먼저 합병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유네스코 유산인 세키 왕(칸)의 여름 궁전을 돌아보았다. 접견실, 집무실, 거실 등 큐모는 작았지만 그 섬세한 벽화, 장식, 문양은 아주 뛰어난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었다니 놀랍다. 이 화려한 왕궁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교역이었고, 과거의 영광의 실크로드 시대는 지나갔다하더라도 그래도 대상은 존재했고, 그런대로 꽤나 큰 대상들의 숙소인 캐라반사라이(Caravanserai)를 구경했다. 지금 낙타, 말의 쉼터는 기념품가게, 그리고 대상들의 숙소는 호기심 많은 사람(?) 들을 위해 호텔업을 하고 이었다

세키 왕국에 여름 궁전  못하나 쓰지않고 지었다고 한다 


정밀한 문양 


현란한 공예 솜씨


카라반사라이 (숙소)


이층에 대상들 숙소가 이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호텔로 쓰고 있다.

  
바쿠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점심 그리고 세키에서 저녁을 먹었다. 역시 그들의 진흙화덕에서 만든 빵, 그리고 양고기가 주된 음식이었는데 야체 절임이 정말 맛있었다. 마늘절임, 오이절임부터 이름 모를 야체와 과일 절임을 값싸고 맛있는 포도주로 즐겼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입에서 침이 돈다,

점심 생 야체와 절임 야체가 풍성하다  


저녁   

두 끼 양고기 이외 특별한 음식은없었다. 그러나 오이 마늘 고추 등 그리고 이름 모를 야체 과일의 절임 반찬은 정말 맛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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