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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스케치 5 화 공주 군산 전주를 돌며
07/20/20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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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능 입구에 조각상 


서울 스케치 5 화 (2019) 공주, 군산, 전주 주루 돌며 

 공주에서 

 나는 지금 공주를 가는 버스에서 내가 지금 찾아가는 백제 무령왕 무덤에서 혹시 나의 혼란한 백제 역사관에 다소라도 좀 머리를 정리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 나름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기도 했는데 백제만큼은 정말 학자들의 학설이 너무 다른 경우는 없다. 

 강단학자들의 학설을 보면 백제의 위치는 
소위 한나라 멸망당시를 무대로 한 삼국지에서 조조의 위나라가 그의 부하 사마의의 손자에게 나라를 빼앗겨 서진이 시작되고 그로 200-300 여년이 지난 남북조 시대의 남쪽 양나라(AD386-569)의 황제로부터 무령왕이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 시호를 받았고 조공을 했다는 것이 무령왕 묘지석에 쓰여 있다. 그리고 그의 공적이란 것이 지금 한강유역인 수곡성에서 고구려의 용병 말갈족을 무찔렀고, 지금 섬진강 유역의 상차리 하차리를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니까 백제의 영토란 지금의 한강에서 전라남도정도이란 것이다. 

 반면에 소위 재야학자라는 사람들은 강단학자들은 전부 친일역사관 즉 식민사관론 자들이라고 매도하면서 백제는 중국 땅 넓은 대륙의 커다란 왕국을 세우고 지배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버스는 무령왕 능에 도착했다. 

능 입구에는 상상속의 수호동물인 진묘수를 확대한 돌조각이 나를 반긴다. 수호신이라 좀 무시무시한 표정이진데 그것이 아니고 통통한 돼지 얼굴에 호감을 주는 얼굴이다. 내부를 그런대로 조심스럽게 보았다. 익히 보았고 들었던 진짜 진묘수, 묘지석, 왕관, 왕 그리고 왕비의 귀걸이 등을 보면서 세공 솜씨에 박수를 보냈지만 스케일이라고 할까 크기는 아무래도 강단학자들의 역사관이 옳은 것 같았다. 백제의 역사 더 나아가 삼국시대의 역사가 중국 남쪽에 양나라 북쪽에 북위라는 나라의 역사 한 귀퉁이에 나오는 삼국역사를 기준으로 이야기 하는 자체가 국가 문명문화의 잣대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무령왕 능에서 유물이 정교하고 섬세한 것은 수긍되지만 그 스케일을 보니 중국대륙에 큰 영토를 가지고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재야학자들의 주장은 역사를 과학이 아니고 외눈으로 보는 애국의 외눈박이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가 일본으로 급히 가다가 규수지역의 각라도 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그래서 섬이란 사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39 살 까지 왜국의 왕자들과 같이 살다가 그의 삼촌(?) 이 암살당하자 급히 왕으로 추대되어 백제로 돌아갔다는 역사적 사실은 왜국은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해석보다는 왜와 백제가 지위, 위치 관계 역시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능 입구에 진묘수를 확대한 조각이 우리를 반긴다


묘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지석


지석을 해석한것 


관의 목재가  일본에서 갖어온 적송이란다


진묘수라는 수호의 동물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것 보다 표정이 부드럽다고 한다


마구 이것이 진짜 유목민중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문명의 잣대이다



세공의 극치이다


백제의 활발한 교역을 설명하고 있다 


많은 인종도 설명하고 있다



이번 공주 군산 전주 여행은 고등학교 동창들의 홈컴잉 행사의 일환이었기에 공산성 유적등 보고 싶은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에서 공주에서 군산으로 가는 길에 서천국립생태공원이란 곳을 들렸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후 군마다 경쟁적으로 여러 볼거리 상품은 개발해왔다. 서천군으로 아주 야심찬 생태공원이다. 규모다 내용이나 훌륭했다. 다만 투자금액, 관리비 등을 생각할 때 소위 수지가 맞을지 궁금하다. 나야 잘 보았으니 불만은 없지만 말이다. 쓴 웃음이 지어진다. 내가 왜 서천군 재정걱정까지 하고 있나 하면서 말이다. 속담대로 난 걱정도 팔자인지 ..참.... 

서천 국립생태 공원 


날씨 때문이었나 사막에 관심이 갔다 


북아메리카 사막 


고놈 이름이 뭐더라


 군산에 들어선다. 

3년 전이었던가 왔던 적이 있다. 그리고 옛 일제시대 세관건물, 역사 박물관등을 구경 했었다. 그런데 근래에 손모라는 국회의원이 목포의 특정지역을 역사 박물관자리로 지정운운 하면서 투기다 어쩐다 한 생각을 하며 일제시대에 목포, 군산, 장항 이 3곳의 항구가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보네는 항구이었기에 고종황제 때인 1899년 개항 이후 여러 발자취가 있어서 새로운 생각으로 거리를 좀 유심히 관찰했다. 길거리에 활기가 없어 보인다. 군산이 그마저 지탱했던 조선소마저 불황이라 활기가 없어 보인 것 같다. 그러나 어제인가는 최소한 관광 상품으로 활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먼저 호텔에 첵크인 했다. 호텔 옆 공터에 특산물 판매 축제가 있었다, 저녁 일정을 끝내고 늦은 밤 오래간 만에 만난 가까운 고교 동창들과 꽤나 늦게까지 추억담을 안주삼아 늦게까지 막걸리를 즐겼다. 

새만금을 거쳐 전주에서 여행을 끝내고

 군산에서 일박을 하고 전주로 가자니 새만금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새만금이 완성된 후 아마도 몇번 새만금을 보았고 지나쳤다. 5-6 년 전쯤에 보았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 정치꾼들이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해서 벌린 사업 인 것 같다. 그러니 과정과 목표가 헷갈린다. 새만금 방파제를 쌓은 것은 과정이고, 완성이 된 후 사용,용도가 목표일진데 농토, 공장지대, 비행장, IT 산업, 마카오 같은 국제 도박 관광도시 등 수 많은 이야기는 들어 왔지만 올때마다 아무 변화가 없이 그저 방파제만 볼뿐이다. ‘한번 내려서 볼까요?’ 하는데 모두 합창하듯이 ‘그냥 전주로 갑시다’ 한다. 



새만금 전경 


여하튼지 새만금이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전주에 들어섰다. 한옥마을, 경기전, 조경묘 등 여러 차래 보았기에 그저 전통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그리고 한옥마을 산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한옥마을 들어서는 곳에 소위 소녀상이 있고 세월호 시위(?) 천막이 아직도 2 채나 남아있는 것을 보고 씁쓸했다. 전주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전동성당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성당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데 눈길을 끄는 의상이 있었다. 전주 한옥 마을에서는 전통 한옷과 함께 소위 일제 시대 하니까 ‘홍도야 우지마라’ ‘이수일과 심순애’ 시대의 옷을 빌려주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 시대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성당의 건립이 호남지역에서 순교자들을 기리고자 세웠다 하며 그 중에 한명이 윤지현 프란시스코이다. 그런데 그가 바로 도산 윤선도의 후손이란다. 도산은 누구인가? 사색 당파 소론의 거두이자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홍타이지 에게 세 번절하고 그때마다 머리를 땅바닥에 세 번 구부리는 그 치욕을 맹렬히 성토하고 바로 완도의 보길도로 갔던 바로 그가 아니었던가? 그의 후손이 공자님을 버리고 서양 천주교의 신부가 되었다. 하늘에서 윤선도가 어떤 심전이었을까? 

경기전 입구 


이성계  조선 왕국 이태조 어진

 

전동성당 


60 년 70 년 되돌아간 시절이다


선당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이 순교자 터 란다


내가 또 쓸때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헤매 이었으나 걸국 찾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주위를 돌아다 본다. 언제 다시 이 고등학교 동창들을 다시 볼 것인가? 동창 친구들과 귀중한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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