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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리버 크루즈 3 화 네바강에서 시작된 크루즈
11/08/20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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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의 포토 포인트


러시아 크루즈 3

네바 강에서 시작된 크루즈

 

오늘 일정이 우리 크루즈가 오후에 떠나기로 되어 있어 오전에 피터의 집 (Peterhop) 으로 소위 별도의 돈을 내고(option) 방문하였다. 그런데 이 피터의 집이란 것이 내가 7 년 전 왔을 때에 우리가 보통으로 부르는 여름궁전 같았는데 선머슴이 생사람 잡는다고 같은 크루즈에 탑승한 한국 부부가 첫 만남에서 나만큼 여행 한 사람 없다고 하면서 피터호프는 여름궁전과 다르다며 나를 그것도 모르느냐 하는 태도라 어떨 결에 돈까지 지불하고 버스를 타고 가까이 가 보니 바로 여름궁전이 아닌가? 화도 나고 또 나의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실소도 금치 못했다.

 

그러나 7 년 전에는 여름궁전 내부는 구경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방문이 가능했고, 또 이번에는 그래도 러시아 가이드라 7 년 전 방문 때 보다 좀 더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함으로 위안을 삼았다. 본래 이곳은 피터 대제시절 러시아와 스웨덴이 패권 다툼을 하고 있을 때에 러시아는 두 개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나가 세인트피터스버그에 방어진지와 코트린(Kotlin) 섬 방어진지이었다. 피터 대제는 이 두 진지 하루거리 가운데에 병영을 설치하고 두 곳을 지휘하였고 스웨덴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이곳에 궁을 지었다. 이 궁을 짖는다는 소문을 듣고 프랑스 루이 14 세가 피터 대제를 특별 초정을 하여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버여 주었고 그가 베르사유 궁을 모델로 해서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방 14 개이었으나 그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가 80 개의 방으로 확장 그리고 그 후 케서린 여제가 호화판으로 궁을 꾸며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궁전의 내부를 돌아 다녔지만 한마디로 아무런 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동안 금으로 작식된 방을 너무 보아 왔기에  그런것 같았다 .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케서린 여제도 금으로 된 방이 아니라 그래도 잠만은 좀 차분한 분위기에서 자기를 원 했는지 그녀의 침실은 도금이나 금이 없이 단순한 침실이었다. 나는 엄청난 그리고 화려하고 온갖 분수로 만들어진 여름궁전 정원을 거닐다가 배로 돌아 왔다. 이제 리버 크루즈가 시작 되니 말이다.

 

본래 러시아의 역사 시작은 바이킹족이 발틱 해를 건너와 지금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네바 강으로부터 강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 볼가강 줄기를 타고 모스코바 지역을 지나 지금의 키에프 지역을 거쳐 성스러운 도시 콘스탄티노플(동로마제국) 지금의 이스탄불까지의 길을 따라 세워졌다. 러시아란 이름도 이 바이킹 족이 세운 부족국가(?) 키에프의 살던 종족을 루시(Russi) 라고 부른 것이 기원이다. 사실 당시에는 넓은 이 러시아 땅 이곳저곳의 스라브(Slav) 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리버 크루즈는 바로 이 네바 강으로부터 여러 호수와 강 지류를 거쳐 볼가 강으로 들어가 모스코바까지 가는 코스이다. 이 크루즈의 항해 지도를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오시프 스탈린 (요셉 스탈린) 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4 학년 나는 90 일간 북한 치하 서울에서 매일 이곳저곳에 김일성과 나란히 걸려있는 스탈린의 초상화를 보아야 했다.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면서 무서운 존재라고만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 알고 보니 바로 그가 빠른 공사화, 공업화, 애국주의, 집단농장, 2 차 세계대전 승리 등 여러 역사의 주역이었지만 사실 그의 피의 숙청, 정적 제거는 정말 끔직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정치적인 숙청 작업 중 강제 노역으로 여러 사업을 벌렸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항해 할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모스코바까지 운하를 만든 것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그리고 두 번째로 큰 라도가 호수, 오메가 호수가 있어 풍부한 물이 있었다 해도 18 개의 갑문 설치는 정말 인간의 고된 노역이 상상된다.

 

이제 강 양편에 자작나무 숲속에서 가끔 동방성교의 양파모양 지붕을 보기도 하고, 이제 생활수준이 낳아졌는지 빌라 들이 보이기도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자유 경쟁시장 맛을 아는지 식단이 맛이 있었지만 음식이나 써브하는 사람들의 친절과 정성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저녁 후 음악이 연주가 있어쓴데 보통 다른 나라의 크루즈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왜냐고? 크라식 음악으로 베토벤과 모차르트 작곡들을 피아노로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즐겼다. 내 나이 때문이었나?


사진 설명



여름 궁전 1709 년 스웨덴과 전쟁 승리후 피터 대제가 14 방으로 짖기 시작한 궁이다.


금 장식이 없는 유일한 방이다. 그러나 산들리에 등 역시 호화스럽다


정원 입구에 모습이다


분수대


발틱 해이다 건너편에 스웨덴, 노르웨이가 있다


정원은 동서로 양분되어 있는데  오른쪽 아담  왼쪽은 이브 공원으로 이름을 지었다 . 아담 분수


발틱해 스웨덴을 향하여 바다의 신 넾튠 조각 상


오른편에 코트린 섬이 보인다


캐서린 여제 구역(Block)이다 .


크루즈가 자작나무 숲 사이로 가고 있다.


6.25 때에  나는 공산 치하에서 90 일 살았다 그리고 김일성 사진과 함께 바로 이사진을 꽤나 많이 보았다. 그런데 바로 이 스타린이 강제 노역으로 만든 18 개의 갑문을 통하여 모스코바까지 가고 있다


갑문에 들어서고 있다


갑문을 벗어나면 수량이 풍부한 유럽애서 가장 큰 호수로 나간다


크루즈 한 척이 지나간다. 갑문폭에 맟우어야 하므로 배의 폭이 같다,


선장의 안내로 조타실에도 가보고..


음식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정성이 들어 있었다. 캐비아에 포도주 지금도 군침이 돈다


나의 음식 서브 담당 아가씨 8 일간 대접 최고로 받았다


식사 후 음악 프로그램은 고전 음악과  러시아 민요인데 수준급 이었다

 


여름궁전, 피터 대제, 요셉 스탈린, 코트린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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