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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전투를 생각하며
10/18/201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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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전투 지역


백강 전투를 생각하며


언제인가부터 어떤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서 이론 전개나 토론을 하다가 자기가 틀렸거나 또는 설득할 자신을 잃고 말문이 막혔을 때에 대화를 단절시키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건 식민사관이야’ 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만들었다는 소위 그들의 식민사관의 학설을 이어받은 식민사관의 원흉(?) 이병도이라는 사람이 만든 역사교과서를 교재로 중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운 나로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글을 접하고 보니 내가 배운 이병도의 교과서가 오로지 식민사관 만은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일본이란 나라는 글과 불교 등을 비롯해서 그들의 모든 문화라는 것이 백제에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라고 일본을 소위 백제의 문화식민으로 취급한 이병도를 친일식민사관의 원흉이라고 떠들어대니 무어가 아주 잘못 된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내가 새삼 이러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근간에 나의 페이스북 하고 유투브에 마치 홍수가 난 것처럼 소위 식민사관 때려잡기, 그리고 환타지 같은 역사이야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병도에 대한 글들이 많이 눈에 띠는데 그 글들이란 내용이 그를 식민사관의 원흉이라며 저주와 증오이었다. 나는 이제 좀 그만들 해라 하고 싶어졌다.


그러자 문득 나는 백강전투가 생각이 나서 그러한 분들에게 잠시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백강전투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졌다.

백강전투란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등이 당나라고 포로로 끌려간 후 백제가 다시 나라 재건을 시작했을 때의 역사이다. 백제 멸망 후 왕으로 추대한 왕자가 바로 왜에 상주대사(인질)로 있던 부여풍 이었다. 백제 부흥군이 부여풍을 되돌려 달라 하자 왜국은 1-2 년을 숙고하다가 어쩌면 당나라가 일본으로 처들어 올수도 있다 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자기 방어의 생각도 들어서인지 부여풍과 함께 661 년 1만 명, 662년 봄 2만 7 천명,663 년 1 만 명을 원군으로 파병을 했고, 그래서 663년에 지금의 금강 하류에서 벌어진 백제와 왜의 연합군과 신라와 당의 연합군과의 전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벌어진 첫 국제 전쟁이었다. 결과는 왜와 백제 부흥군이 패하여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고  왜는 돌아갔지만 말이다.


일본 중국, 한국의 역사에서 기록된 이 백강전투를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의 사실을 인지하여야 한다. 첫째 미개하다는 왜가 백제의 왕자를 인질이었던지 상주대사이었던지 좌우간 상주시키고 있었고, 4 만 명의 군을 파병 했을 만큼의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과, 백제가 중국 땅에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소위 재야 역사가들의 이야기는 이 백제 부흥 전쟁시절 어느 역할이나 아무 언급도 없었다는 사실. 즉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백제 제국은 환타지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식민사관의 원흉이자 역적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이병도가 일본을 잔득 치켜세울 수 있는 이 백강전투를 교과서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감안하자니 그가 정말 식민사관의 원흉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식민사관의 진실 또는 실체는 무엇일까를 생각 다시 해 보아야 한다. 나의 생각은 외눈으로 보지 않고 균형의 눈으로 볼 때에 첫 시작은 북한정권이 자기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느라고 남한정권을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역한 친일파들이 그대로 남아서 정권을 세웠다 다시 말해서 친일파 정권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바탕은 식민사관이고 그 원흉 중에 한명이 이병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한 것을 남한에 철없는 종북 세력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분별없는 많은 사람들이 바보같이 그리고 어수룩하게 끌려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관점과 평가는 항상 서로 토론도 하고 서로의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우리고 서로 자기의 학설에 논리의 토론장이 되어야지 자기 학설과 다르다고 인격 모독을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출발이 북한의 불순한 시도가 보인다는 점에서 더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마디 더하자면 역사는 역사이고 과학이다. 애국도 아닌 철없는 애국이란 단어로 한 학자의 역사관을 저주에 찬 식민사관으로 포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오늘 날 중국과 러시아와 정상회담이다 어쩐다 하면서 자기편 끌어안기에 한참인데 남한은 일본 때려잡기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백강전투, 식민사관,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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