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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 남도 여행-1 화 (2016)
10/22/201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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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 불교 도래지에 사면 대불상과 부용루 ..하지만 근래에 지은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는 없다


한국 여행   남도 여행- 1 화  (2016 년 가을)


  친구 H 의 말 “앙드레 지드 글에 이런 말이 있지,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고, 사실 피라밋을 몇 번이나 가 보았지, 그런데 근래에 좀 다른 생각이 들었어, 사실 한국은 가장 유적이 빈곤한 나라 중에 하나이잖아, 하지만 다녀보니 유적이 빈곤한 한국의 구석 구석이 하나의 테마를 가진 공원 같고 이제 우리 나이답게 그곳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말없이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마누라가 ‘왜 그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마다하고 무너지고 폐허가 된 유적, 목이 잘린 조각이나 열심히 보러 다니는지 나는 이해가 안가요’ 라고 빈정거리지만 나는 과거가 실린 그곳에서 그의 후손들이 사는 모습, 입은 옷, 먹는 음식까지 아니 그 사람들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흥미롭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지...”


이런 대화가 60 년이 넘게 한 평생을 같이 지네 온 한국의 친구와 압구정동 버스 정류장에서의 만남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처럼 H 라는 친구에게 ‘나 언제 한국에 도착 한다’ 하면 이 친구는 나의 의견을 묻을 생각도 않고 며칠간의 여행 기획을 짜 놓고, 나를 기다린다. 이번에도  이 친구가 일방적으로  ‘ x일 8 시에 압구정동 현대 백화점 버스 정류장으로 와라, XX 여행사 2박 3 일 남도투어 예약 해 놓았다’ 했고 그래서 만나서 버스에 타서 앉자마자 이것이 우리의 첫 대화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간 대화가 없었다. 이 친구가 나에게 창밖을 내다보면서 오래간 만에 한국을 보며 마음을 정리 하라는 무언의 선물이다. 이렇게 나의 전라남도 2 박 3일 투어가 시작 되었다.그리고 첫날 3 개의 테마 공원을 산책이 시작 되었다.


1) 농약을 팔지 마세요

전북 군산에서 부안군 변산면까지 장장 33.9 키로의 방조제로서 네덜란드의 32.5 키로를 넘어서 기네스북에 올린 세계 최장의 방조제이란다. 아직도 방조제로 생긴 물을 빼고 있고 동시에 땅을 흙으로 메우고 있다. 그런데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땅 분양이 잘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분양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대 놓은 방법이 이 지역에 카지노를 개장이라고 한다. 바로 63 개의 고산군 열도를 관광지역으로 개발하고 그곳에 카지노를 개발하면 새만금 분양이 촉진될 것이란 기대를 한다 이런 말이다. 그 개발 예정지가 된 땅이 바로 방조제의 끝자락이자 고산군 열도를 들어서는 땅이다. 그런데 이 땅이 카지노 개장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투기에 대상이 된다. 땅값이 어찌되었나?, 계산기를 써서 머리를 정리해야겠다. 당초 평당 500 원 하던 땅의 일부가 이제 140 만원이 되었다니 장장 거의 3000배가 뛰었다고 말이다.


이 땅을 당초에 가지고 있던 어민들 땅 값이 얼마 때 팔았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들은 한때 로토에 당첨된 기분으로 돈을 만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때에 그 돈의 냄새를 맡은 누군가가 나타나겠지. 그렇다 소위 ‘타자’가 나타났다. 그들이 이들을 노름판으로 몰고 가서 어민들을 알거자로 만들었다 한다. 그래서 한때에 자살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농약을 팔지 말라’ 고 군청에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제 140 만원의 땅 주인의 얼굴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 땅에 주인이었던 어민들은 가난을 운명처럼 알고 다시 배를 몰고 고기잡이를 나선다고 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땅을 메우고 있는 새만금이 보이고, 오른쪽 바로 코앞에는 산을 깍아 내리는 작업장을 넘어 아름다운 군산열도의 섬들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섬들은 그러한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2) 굴비입니다


집마다 굴비를 주렁주렁 걸고 있는 거리를 지나 법성포에 들어서서 서기 384 침유왕 원년에 인도의 승 마라난타가 처음으로 백제에 불교를 전래 했다는 도래지에 드러섰다.사면대불상,부용루,탑원,상징문,간다라 유물관 등 참으로 잘 꾸며 졌다. 그런데 나에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돈으로 꾸민 정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운 소녀가 아니라 화장을 짙게 한 여자 같다는 말이다. 오히려 나에게는 이곳에서 내려단 본 법성포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흥미 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고려 1200 년대에 유명한 척신 이자겸이 있었다. 그는 예종과 인종에게 두 딸과 결혼 시켰으니 왕의 장인도 되고 왕의 외할아버지도 된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다가 권력 다툼에서 밀려서 이곳 영광으로 귀양을 왔다. 그런데 밥에다 이곳에서 흔히 보이는 생선 말린 것을 얹어 먹으니 무척 맛이 있었다. 비록 귀양을 와서 괘씸한 마음이 들은 왕비인 딸이요 왕인 사위이었으니 그 말린 생선을 먹이고 싶어 보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굴(屈) 하지 않는다(非)” 하여 굴비라고 이름을 붙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굴비라는 이름의 시작이다


3) 어디까지 보여 주어야 하나


목포에 들어섰다. 아주 옛날 이곳에서 연락선을 타고 제주도를 간적이 있는데 그 이후 처음 방문이다 유달산 중턱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목포가 일제 수탈을 위한 항구로 개발 되면서 주택이 들어선 이후 쭉 그대로 지켜온 마을이다. 내려다보니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가수 남진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항구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을 만큼 아름다운 포구이다. 허지만 확대경을 들이대면 생활전선의 격정에 항구라 폭력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의 폭력배가 그래서 태어 낫나 싶다.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일제 수탈의 현장인 동양척식회사이자 나중엔 식산은행이 된 건물을 방문 하였다. 지금은 잘 꾸며진 박물관이다. 조선조 시대에 이곳이 수군의 소위 민호가 있었고, 일제 때에 조계지로 일제가 발을 들어서고, 개발 되면서 시작된 생활상으로 전화, 자동차 등의 물건들, 그리고 독립운동의 현장을 보이는 사진들 등 꽤나 잘 정리된 박물관이었다.


동행한 친구 H가 휴우 하고 숨을 고른다. 내가 왜 그러느냐 하는 표정을 지으니 설명을 한다. 개관 초기 정 모 라는 시장의 초청으로 영향력이 있는 아니 그보다도 역사의식을 가잔 몇 사람이 초대되어 관람하였다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시된 위안부 사진을 보았는데 성노예 운운하기 전에 사진을 보니 꼭 돼지우리보다도 못한 곳에서 사는 사진이 있었다 한다. 그분들이 보기에 성노예 이전에 인간의 최소한의 그 무엇도 없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장에게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어린이들에게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효과보다는 우리 조상의 최소한의 인격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 사진들은 따로 보관하여 학술적인 자료로 남기되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의견들을 보였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 저서 안 보인다며 안도 하는 표정이었다.


 나 자신도 때에 따라서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목적도 좋지만 후손들에게 고발이란 이유로 우리들 자신들에게 우리 조상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자괴감, 허탈감, 모욕감을 주는 경유가 꽤나 있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얻는 것 보다 어떨때에는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평소에 생각했기에 잘 했다는 셍각이 들었다.


점심으로 인삼이 들은 바지락 죽을 먹었고, 저녁으로 소위 삼합을 안주삼아 술 한잔을 즐긴 후 녹차에 밥을 말아 그 숟갈 위에 굴비를 얹어 먹으니 별미였다. 숙소로 돌아 왔다. 현대 호텔이다. 별이 6 개 붙은 특급호텔이다. 보건데 현대중공업이 한창 잘 나갈 때에 조선소 현장을 찾는 귀빈, 현장 임원들 등을 위하여 시작된 것 같았다. 필립핀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흉물스러워 보이는 조선소 드라이독 등 거대한 구축물 배경으로 몇 명이 안 되는 손님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에서 앞으로 한국의 조선 산업은? 해양 운송 산업은? 하며 걱정스러운 생각이 나의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라 좀 씁쓸했다.


                          (사진 설명)



서해안 고속도로 가기전 첫 휴계소    이 동네는 밤 단지로 마치 공원같이 민들고 관광객을 끌고 있다

전국이 공원이다  


                                  새만금 방조제


평당 500 원 짜리가 140 만원으로,,,,그리고 땅을 깍고 평지를 만들고 있다


그런것의 관심을 두지 않고 초연하게 평쳐 있는 고군산 열도


                                법성포 도래지에서


                   부용루 대웅전인데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인도 고승 마라난타 백제에 불교를 전파했다


간다라 조각품들이 소개 되고


여러 불상들이 펼쳐 있다


나에게는 법성포 전경이 더 아름다웠다


                        목포에서


동양척식 회사 건물 이다 이제는 이곳이 막물관이 되어 있다


한때는 수군 진영이었으나.....


일제가 면화를 재베시켜 수탈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의병이 일어 나고


신문에도 크게 실리기도 했으나....


일제는 자동차도 들여 오고


1911년 하니까 한일합방 다음해에 이곳에 전화까지 달았다


독립 운동 정신은 살아 있어지만.....


 시대의 아픔을 안고 목포의 산등성에 집들은 아직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법성포, 불교 도래지, 마라난타, 굴비, 유달산,동양척식회사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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