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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년 가을 한국 여행-4 화
12/08/20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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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년 가을 한국여행- 4
다이나믹 한 서울 그러나 아쉬움이......
나는 별로 흔하지 않은 서울 토박이이다. 우리 조상들이 한 번도 한양을 떠나 산 적이 없다는 말이다 6.25 때 부산 피난살이 3 년이 있기는 하지만 ....
...
서울을 그려볼까? 조선조 시대 서울은 종로 북쪽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이 있었고, 그리고 그 왼쪽에 땅과 곡식을 주관 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우측에는 임금의 선조를 모시는 종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왕을 모시는 벼슬아치들이 모여 살았다. 북촌 사람들이라 불리면서 말이다
서쪽으로는 역관, 의관, 관상감에 천문관 등 전문직이나 기술직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이들은 많은 경우 서자 같은 신분으로 그저 품계가 종 9 품에서 잘해야 정 8 품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른 듯하다
그리고 지금 다동, 무교동쯤에서 시작되었나? 육주비전이란 왕실에 돈을 대고, 전매권 같은 권리를 누리는 명주, 종이, 어물, 모시, 비단, 무명 의 6 품명의 상인들이 길게 자리를 잡은 주위로 동대문 까지 평민들이 모여 살고,
그리고 말인즉 남산골 생원님(남산골샌님)인 과거시험을 재수 삼수하는 시골서 상경한 가난한 선비와 백수건달들이 모여 사는 남산 기슭이 있었다.
자세하고 그래도 신빙성이 있는 기록을 보니 청년 이승만이 독립문 건립을 위한 집회 연설을 할 때 한양 인구가 약 십구만 명으로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한일 합방 후 상 하수도 시설로 집단 역병으로 죽어가는 숫자가 줄고, 일본인들도 몰려오고, 또 시골에서도 모여 들면서 인구가 갑자기 백 만으로 늘어나면서, 전차 가 들어서고, 신작로가 생겨나고, 학교가 들어서고,
그리고 다동, 무교동, 관철동 같은 부촌이 일본 상가에 대항해서 민족 자산으로 화신 백화점, 우미관 같은 상가 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의 강남 같은 개념으로 성균관 뒤 명륜동, 혜화동으로 옮겨가고,
반면 일본인들이 들어 와서 값싼 땅 남산 기슭에 회현동, 묵정동, 장충동 같은 곳으로 주거지를 삼고, 진고개(충무로) 로부터 명동의 상가, 남대문 일대에 은행 같은 건물이 들어서는 지각 변동이 생긴 것 같다.
물론 그 후 성곽을 허물고 전차는 사대문 밖에 돈암동,효자동,마포,영천,청량리,왕십리,노량진을 넘어 영등포로 뻗어 나갔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 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토박이인가, 일본 유학 했던 사람 같은 지식인인가, 아니면 지방서 올라온 지주인가 38 선이 꽉 막히기 전에 월남한 사람들인가 등 어느 정도 그들의 모습이
떠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는 6.25 동란 이후 불가능 해 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 동네의 특성 같은 것이 남아 있는 듯 했고 지금도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그 동네가 어떤 곳이었는지 상상이 되며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번 나의 서울 나들이에서 서울의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의 어떤 특성을 알아낸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 한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서울은 이제는 내가 며칠을 다닌다 해도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정도 밖에 안될 만큼 그 규모나 다양성이 상상을 초월 한 듯 했다 그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의 구()가 옛날의 한양으로 생각될 만큼 하나 하나가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서울에 도착 후 하루를 지낸 다음 동남아의 라오스를 여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통 체증으로 비행기를 놓칠까 두려워서 인천 공항왕복에 편한 곳을 미국에서 인터냍으로 찾아서 구로구에 있는 한 저렴한 호텔에 투숙했다. 그곳은 대림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한 10 분 정도의 거리이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먼저 라오스 여행 준비 차 전철을 타고 남대문시장에서 안경과 백팩을 하나 사려고 대림역으로 갔다. 그러다가 역 계단에서 무가지 잡지 하나를 집어서 드려다 보았다. 그리고 시익 웃음이 나왔다. 이것은 조선족들의 삶을 위한 잡지이었다. 알미늄 창틀 교육 학원, 카비냍 목수 교육 학원 같은 학원 광고, 취업비자 전문 변호사 광고, 그리고 연변 조선족 게시판 소식 등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재미 교포를 위한 주간지 같았다. 물론 수준은 조금 떨어졌지만.....
나하고 동행을 해준 동생뻘 되는 사람 이야기로는 대림역 내가 탄 입구 반대쪽 출구는 조선인 명동으로 불리며 이곳 구로구에 조선족이 거의 5 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철의 경로석이 없는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서 섰다. 사실 내가 키가 좀 크기 때문에 서서 모두들 정신없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다양했다. 문자 메시지를 받고 보내는 것만 있는지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게임을 하는 사람, 드라마를 보는 사람,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은 유럽 축구 시합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만 혀를 내 둘렀다.
뒤쪽에서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을 하기에 고개를 둘러보았다. 중동 사람인가? 그러고 보니 또 한 무리는 아무래도 동남아 여자 같은 사람들도 보이기도 하고...이제는 국제도시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지하철에서 내려서 남대문 시장을 향하여 걸어갔다.
남대문 시장에서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안경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미국 이곳에서 안과 의사가 써준 처방에 맞추어 안경을 2 개 샀는데 175 불을 주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미국에서 쎄일 광고의 가격보다 비싼 것 같아서 약간 후회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 보기에 일본 여자 같은 사람 두 명이 들어오자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모두 그 여자에게 가서 아양을 떨었다. 아마도 그들이 보자 하니 나에게서는 돈벌이에 별별일 없어서 그런 듯 했다
그리고 백팩 하나를 샀는데 등산용품 가게에서 40 불하는 것이 일반 가방가게에서 똑 같은 것이 10 불을 하니 무어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거리를 거닐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정말 여기가 한국인지 어리둥절했다. 이곳에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일본인, 중국인 들 뿐만 아니라 서양, 중동 계통도 꽤나 있어 보였다.
너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는지 점심시간까지도 한참 남았다. 나는 언제나처럼 평화시장 고서점을 찾았다. 3 불 내지 5 불에 살 수 있는 꽤나 귀한 책을 마치 사냥하는 기분으로 찾아서 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책가게는 해 마다 줄어들고 책도 이젠 한참 뒤져보아야 별것이 없었다.
겨우 3 권을 사들고 평화시장 안에 점심을 먹자며 이끄는 대로 쫓아서 들어섰다가 그만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아마도 100 개 가 훨씬 넘어 보이는 포장마차가 시장 가운데에 길게 늘어서 있었고 모든 메뉴가 다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 또한 다양했다. 동행한 동생이 이 평화시장 부근에 러시아인촌, 몽골인촌, 네팔인촌 이 있어요, 이젠 국제도시라니까요한다.
아주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해물 빈대떡에다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먹고 있는데 옆에 두 젊은 여자가 나하고 똑 같이 시켜 놓고 막걸리 사발에 빈대떡을 스마트 폰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 화장도 안한 모습이라 마치 집에서 나와 집 앞 구멍가게에서 콜라 한 병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좀 이색적 분위기 이었다. 내가 어디서 왔느냐 했더니 일본 고베에서 왔단다. 그냥 심심해서.......
오후에는 서둘러 나의 호텔로 돌아 왔다. 아침에 보니 내가 머문 호텔 바로 앞이 구로구 구의회 건물이었고, 여러 개의 천막이 들어서고 행사가 있어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강당에 들어가니 둥지 문학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옛날 말로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문학 잔치이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어린이 책 잔치라며 각 아동문학 출판사의 책 부스, 그리고 방 마다 동화 작가의 강연, 그리고 무대 연극 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참으로 다양하고 그리고 본받을 만한 선진국으로 위상이었다.
저녁이 되어 내가 아끼는 판소리 소리꾼이 꼭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좀 왁자지껄한 음식점을 내가 부탁해서 서울대학 정문 뒷골목에 불고기집으로 정했다. 그곳을 찾다보니 좀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들어서서 손님들을 보니 술을 마시고 떠들어대는 데 그들이 다 나의 나이 또래는 아니라 나의 손아래 들 이었다. 허나 모두들 다 꽤나 즐거워 보였다.
TV에서는 일본에서 무슨 연기자 선정이 있었는데 배용준이 1 등을 했다며 많은 관중들 앞에 손을 흔드는 화면도 보였고, 북경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베이징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서 한국의 K-POP 의 공연이 있었는데 경찰이 몇 천 명이 질서 유지를 위하여 동원 됐다 하면서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판소리 하는 소리꾼이 들어섰다 건강 하냐, 요즈음 공연 활동은 어떠 하냐 등 판에 박은듯 한 수인사가 끝난 후 대화가 끈어 졌다. 같이 공유할 대화가 없어서 일까 왁자지껄한 주위와는 너무나 다른 우리의 모습이었다.
어색해서 그랬나? 소리꾼이 탁상위에 스마트 폰을 놓더니 선생님 생년월일이 어찌 되나요하며 묻는다 내가 그건 왜 묻느냐하니 아니 그저해서 ‘190000 일 이지했다. 그러자 소리꾼이 스마트 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이윽고 말이 선생님 사주팔자가 장동건이 하고 같다고 지금 내가 아는 점쟁이가 이멜 보내 왔어요한다
이것이 내가 아끼는 소리꾼 세대와의 대화의 전부 이구나, 그리면서 지난 번 서울 방문 시에는 지하철에서 젊은이들만 스마트 폰에 몰두 했었는데 이제 나 같은 늙은이도 주위와 단절하고 스스로의 스마트 폰에 빠져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무인도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자 종업원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었다
이 봐요 당신은 말이야 나이가 좀 든 여자 손님에게는 언니, 이모라고 부르고, 남자에게는 큰오빠, 삼촌이라고 부르던데 왜 나한테는 그렇게 안 부르고 어르신이라고 부르지그러자 여종업원이 시익 웃으며 대꾸 했다 참 어르신 농담도 잘 하시네요
기억컨대 그 때 나는 미소를 띄고 있었으나 마음은 비참 했던 것 같다

다이나믹 한 서울,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서울 방문 이었다.....



 

                                                              청계천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서울의 명품이다

 


 

 
 
한국의 다이나믹 한것을 보여주는 힌 징면이다
생긴지 얼마 안된 '진 에어' 의 스트어데스 복장이다 그리고 착륙 30 분전 모두에게 운동인지 춤 을 같이 추자고 나선다
물론 나도 기분 좋게 따라서 했다
 
 



 

                              놀러 왔는지 고급 버스를 대절해서 데모대가 지방 각지에서 몰려오고.......

 

 

 


 


 

                                      경찰들은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 너희들은 굿을 하던 무엇을 하던 나는 내일을 본다 하면서 세계 불우 이웃 돕기  모금을 하고..

                이것이 다이나믹 이겠지........

 


 


그리고 이제는 남녀 노소 모두들 스마트 폰 속에서 자기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시내 거리는 이것이 이제 한국인만의 거리는 아닌듯 하고........

 


 

 

 

평화 시장 먹거리 골목은 나의 입을 닫을수 없게 했다. 규모, 메뉴 그리고 이곳을 찾는 세계인(?) 들 때문이다

 


 


 

                                      

   너무 걸었나 인사동 2 층 찻집에 앉아 내려다 보았다. 참으로 별천지 같다

 
 
 
 


 

                                         일천원 (약 1 불) 짜리 호떡 꽤나 맛이 있었다


 


                     이집 호떡집은 정말 손님들로 장사진이었다


 


고아원생들의 문학 상 시상식 이것은 분명 문명국임을 말해주는듯 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 책 축제를 열러 어린이들에세 책 읽기를 장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들도 도와주고 있고.......



국가 기록원에 있다는 헤화 국민학교 입학식 사진이다

사실 나는 6.25 전 까지 이곳 혜화 국민 학교를 나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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