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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과 길상사
07/12/202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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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월북이 아니라 이북에서 살았고 1.4 후퇴때 남하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정권에서 쓸모 없는 시인이라 폐기 처분 받고 목동,농사꾼으로 바보같이 

살다간 시인이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0 년 이제 50세가 된 김연수가 불행을 사랑한 

시인이라며 금년에 소설을 냈습니다 


음악과 같이 하는 글 1편 백석과 길상사 - 이영묵


시인 백석과 길상사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시인의 모닥불입니다

3연 3행의 자유시로 1936년 1월에

간행된 시집 `사슴'에 실렸는데일제강점기

민족 주체성이 훼손된 시기에 꺼져 가는

모국어 시의 명맥을 되살려내고 방언을

사용하여 민족 주체성의 확보와 모든

동족 사물들 사이의 관계의 합일을

지향한 시라고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오늘은 이 시를 쓴 백석과 길상사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백석과 길상사 이 두 글자의 인연을 마치 흐르는 강물의 시작점을 찾는 듯이 동학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죠



##### 음악 #### 강물처럼 흘러흘러 (장사익 노래)#####




종황제 때 동학란에 전주를 굳게 지킨 백낙신이란 군령(장교가 있었죠그 공을 인정한 고종이 남쪽에는 믿을만한 사람은 너 밖에 없다하여 백남신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죠전라도가 고향이고 재산가로 집안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그는 고종황제의 위세를 안고 부를 쌓기 시작하죠그러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철저한 친일행각으로 나서며 토지를 침탈하여 농지를 대거 소유하기 위한 지름길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에 전라북도 대표 명중에 하나가 되었죠그리고 그의 아들 백인기는 금융계의 귀재로 은행 설립도 하고 일본 자본을 움직여서 백남신 백인기 아비 아들 둘이 전라도 최대 부자가 되지요



#######가곡 남촌 (테너 안형렬) #######





그런데 재산 대 가기 힘들다 하지요 대째 가서 가산을 말아먹게 되지요그리고 서울 성북동에 백인기가 지었던 호화찬란한 여름 별장을 팔게 되지요그 별장이 그 유명한 대원각이란 요정으로 변하여 세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지요이 대원각은 60, 70 년대의 삼청각과 더불어 요정정치의 주 무대이었지요그리고 그 대원각의 주인이 김영한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자 이제 김영한이란 여자를 소개해야 겠네요

먼저 시인 백석의 시 하나를 감상하시지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사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고용히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여기서 나타샤는 김영한이고 이 시는 김영한을 사랑한 시인 백석이 지은 시입니다.

김영한은 15 살에 과부가 되고 기생이 됩니다권번 시대이었죠그런데 그의 시와 서화의 천재성을 발견한 스승 신윤국이 그를 일본에 유학을 보냈습니다만 그의 스승이 병마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머물고 있는 함흥으로 옵니다그곳에서 함흥관이란 요정에서 일하면서 스승 뒷바라지를 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둘이서 만나고 사랑하고 동거하고 백석의 부모는 강력반대하고 강제로 결혼시켰으나 결혼 당일도 김영한의 집으로 가버리고 그러다가 김영한이 백석의 장래를 자기가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며 서울로 홀홀 떠나버립니다지금의 눈으로 보면 신파극 같은 사랑이었죠어찌 되었던지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었죠김영한은 서울에서 대원각 사장으로 백석은 평양에서 살다가 공산당 이념을 추구하는 시인이 못 되고 그래서 이름 없는 시골에 그저 그런 시인으로 살았습니다.



########내 맘의 강물 (테너 김재형) ########



영한은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백석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살았죠그러다가 말년에 그녀는 부처님에게 귀의했습니다그리고 그녀가 당시 금액으로도 천억 원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드렸습니다법정스님이 사양하여 조계종의 말자 암자로 지속하다가 결국 법정스님이 받아드렸고 스님이 지어준 법병 길상화의 이름을 따서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길상사 뜰에는 그분에 공덕추모비가 서 있습니다.

언제고 서울 가시면 그분의 하얀 마음의 비석 앞에 붉는 꽃 한송이

놓아드리면 어떨까요?


#########비목 (소프라노 신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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