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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가 어때서 2 화
04/03/202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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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 운동에 기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리고 선봉대가 다동기생조합 출신이었다



트로트가 어때서 2화 

1913년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이 결성된다. 이를 사람들은 무부기기생조합이라고 불렀다. 무부기(無夫妓) 즉 기둥서방이 없는 기생들이 결성한 조합이란 말이다. 광교다리에 기둥서방이 있는 유부기(有夫妓)의 광교기생조합의 기생들과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 조합결성은 조선이 망하고 나서 풀려난 관기(官妓) 중에서 기둥서방이 없는 궁 출신들이 시작했던 모임이었다. 그런데 서도(西道) 하니까 평양출신의 기생들이 이 모임에 그들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그들이 주도권을 잡은 조합이 되었다. 

다동기생조합은 연예계의 출발점이었다. 가요뿐만이 아니라 무용, 연극 영화 배우의 뿌리이기도 했다


본래 진주 전주 등의 남도는 소리꾼들로 유명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도는 가무로 유명했다. 당시 돈께나 있는 양반들을 위시한 신흥 부자들이 연회를 열면 이들을 초청했었고 이러한 조합들은 초청을 받고 기생들을 출장시키는 중계를 하는 역할이었다. 다시 말하여 기생들이 출장하여 시간을 기록하며 돈을 받고 하는 소위 권번(券番)의 시대이었다. 

 초청을 받는 집단의 하나인 판소리는 본래 서민들이 마당노리 한 판을 벌리면 소리꾼이 나와 판 소리(노래)를 하였다. 본시 판소리는 질척한 마당 판소리로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같은 판소리가 주도 했었는데 그런데 그만 양반님들이 연회에 부르면서 양반 체면이니 어쩌니 하면서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만 찾았다. 그래서 현재 판소리 하면 아쉽게도 이 5 개만 남았고 고고하게 그 품위(?)를 지켜와 일반 서민들이 아니라 각 대학 음대에서 판소리가 명맥을 잇고 있다. 

서민들의 판소리가 없어졌다. 이제 다시 복구가 간혹 시도 된다. 변강쇠 타령의 재현이다

 
그러나 서도출신들의 가무(歌舞)는 달랐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 한 것이 바로 다동기생조합 이었다. 이들은 자기네 영업활동에 연회종목을 넣고 양반들이 벌리는 지금으로 치면 파티에 적극 참여했을 뿐만이 아니라 극장을 얻어서 창극뿐만이 아니라 연극까지 공연했다, 그리고 서양 춤까지 보급하기도 했다. 가수의 출현이자 배우의 출현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에 선구자라는 자존심도 대단했고 3.1 만세운동에 기생이 집단으로 참여했다는 기생이 바로 이들이 선봉이었다. 

 그리고 지방공연을 할 때에 나팔수가 따따따 나팔을 불러대고 장구치고 뒤에 단막극 한편의 배우와 가수들이 따라 나서고 해서 소위 딴따라라고 천시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또 한편에서는 부잣집에는 유성기가 있었고 유성기를 틀면 그들을 즐겁게 하는 그 가요가 있어 가요의 맥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것들이 가요의 원류이요 그래서 가요의 원류를 나는 다동기생조합으로 본다. 이렇게 딴따라 그리고 유성기에 담긴 레코드의 노래의 양 바퀴로 조선의 가요는 해방을 마지 할 때 까지 이어졌다. 
 

 극장과 커다란 천막에서 이러한 형태의 딴따라들이 나타나고


돈 있는집에는 유성기(레코드) 를 틀어 놓고 음악을 즐겼다. 

가요의 명맥을 이어갔다는 말이다 


해방이 되자 가요가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가 큰 물결이 들어왔다. 미군들 진주와 함께 서구 음악이 들어왔다는 말이다. 소위 미8군 쇼가 한국음악인들에게 활동의 무대가 되었고 째즈, 칸트리, 리듬엔불루스, 발라드, 로큰롤 등의 음악이 홍수처럼 들어 왔다는 말이다. 이봉조, 김희갑, 신중현 같은 소위 밴드맨, 그리고 가수로 한명숙, 최희준, 현미, 패티 김, 위키 리, 유주용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들이 전후 시작한 가요계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이 음악 속에 묻혀 즐거움을 누린 것은 물론 또 팻분, 엘비스 플레스리, 낫 킹콜, 폴 앵카 등의 노래 몇 곡 정도는 부를 수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로 촌놈소리 안 듣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한편 한국의 전통 트로트풍의 가요는 그저 겨우 명맥을 이어갔을 정도이었다. 


미 8군쇼 출신인 김시스터스는 나중에 라스베가스에서 인기리에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통기타 발라드 음악, 그리고 째즈, 트위스트, 고고, 디스코 운운 하며 춤을 곁들인 음악이 주를 이르며 가더니 급기야 힙합음악인지 랩 음악인지 까지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이제 젊은 일부의 음악 팬들을 빼고 나머지 음악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피로감을 주지 않았을까? 방탄소년단이 한류의 폭풍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건 젊은 일부에게 폭풍이고 무대 위에서의 음악이지 함께 나누는 대중음악은 아니라고 받아드린다. 

세계가 호응하고 한국의 자랑이기는 하지만 난 별로다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기존 유행 음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때에 나타난 변화의 바람이자 또 우울한 세대에 마음을 달랠 트로트가 새로운 해석으로 호응을 받으며 재탄생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너도 나도 트로트에 빠져든 것 같다. 

 글 말미에 윤경옥이 부르는 보랏빛 옆서 그리고 노사연이 부르는 바램 2 곡을 들으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보랏빛 옆서는 에디뜨 피아프의 장미꽃 인생과 그리고 바램은 마돈나의 아르젠티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마라 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비교해 보라고 권한다. 이 세계의 가수의 노래보다 감히 더 낳다 라고는 못해도 그래도 손색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트로트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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