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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사스 3 국 기행 5 화 아르메니아 1 편
10/24/201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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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크고(8등신이 아니라 6 또는 7 등신?) 이 여자가 아르메니아 여인상이다 



코카사스 기행 5 화 아르메니아 1 편 

               아르메니아로 향하면서 

              아르메니아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은 자기들은 노아의 4 대손 도갈마의 첫째 아들 하이크(Haik)의 후손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의 적장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상 사람들은 신체상의 특징으로 그들은 키에 비해 머리가 크고 직모에 매부리코를 가진 종족으로 생각한다. 본래 인간의 원형이 그랬었나? 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유태인을 좋아 한다. 특히 미국 같은 남의 땅에서 이민자로 사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런 것 같다. 그들이 그 숫한 고난을 물리치고 성공 스토리를 써서 일까? 아니면 교회에 출석해서 목사 설교의 내용이 대부분 구약 성경에서 한 줄 따왔기에 구약의 주인공인 그들을 역사의 고리로 유태인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들은 노아의 4 대손의 장자 후예란다 


아르메니아 여인 


아르메니아 여인과 함께


그런데 사실은 유태인들도 한국인들에 호감을 갖는 것 같다. 그들 주위에 국가나 사람들의 역사는 침략과 식민통치 등의 갑의 나라 사람들인데 한국은 자기네들과 같이 피해와 압박을 받던 을의 역사의 사람이기에 그럴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심지어 H라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싸이의 오빤 강남스타일의 탄생은 마돈나가 싸이의 가랭이 밑으로 기어가게 하고, 또 NBC 방송 아침 골든타임에 록펠러 광장에서 싸이의 춤을 소개로 소위 떴는데 이는 언론, 음악계를 장악한 유태인들의 한국인의 대한 특별 호의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NBC 방송국 Rockefeller Center 에서 공연을 해 주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러한 맥락에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호감이 간다.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약 1,000 만 명이다. 그 중 자국에 300만 명이 산다. 그리고 미국에 같은 숫자인 300만을 비롯해 러시아, 유럽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가 700 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스람권의 터키와 정교회 러시아 틈에서 살다가 유태인 대학살보다 먼저 19세기에 오스만 터키 침공으로 150만 혹은 200만의 학살당하는 소위 제노사이드의 희생의 민족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동병상련이란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지금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이러한 비극의 과거를 되 세기며 체념 속에서 사는가, 두터운 신앙심으로 굳건히 사는 가, 아니면 과거는 과거 하면서 낙천적으로 사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아르메니아로 가고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공원 


                 그들의 고대 역사는 연어처럼 회귀하였는가?
 
고대에 아르메니아 고원지대에 수렵생활을 하던 그들이 사는 동굴 앞에 곡식 알맹이가 있어 잘 먹고 다음 사냥터를 떠났다. 얼마 후 다시 이 동굴을 찾으니 그 앞에 그 곡식이 또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먹고 떠나고 다시 오고를 거듭하다 그들은 재배라는 것을 배우고 먹다 남은 곡식 낱알을 심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던 밀 재배이었다. 이 밀 재배는 남하하여 소위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 문명을 태동 시켰고, 바빌로니아 문명을 거쳐 저 멀리 이집트까지 퍼졌다. 그곳에서 유턴(U turn)을 하여 로마를 거쳐 바로 이 아르메니아 땅으로 회기 한다. 서기 1 세기 막 탄생한 기독교라는 선물을 가지고 말이다. 밀 다시 말해서 빵의 긴 여로이었다. 

화덕에 붙혀 구는 방식 이것이 최초에 빵이었다.  이것이 유태인까지 이어지다가 이집트에서 효모를 써서 

부풀리기 시작 했다



 이제 아르메니아인의 호감 속에 나는 대학살의 여진이 아니라 여유 있는 마음으로 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시작은 느긋하게 점심으로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들어가는 길목에 흥미를 끄는 풍경이 있다. 노점상들이 꽤나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비누, 빨래비누, 화장지 같은 생필품이다. 그런데 구조가 조지아 사람들은 땅 주인으로 세를 놓아 수입을 잡고,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생필품들은 거의 다 러시아 제품이고 그리고 그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다. 아르메니아는 조지아, 터키, 이란, 아제르바이잔 4 나라에 포위된 상태인데 기독교의 조지아 말고 나머지는 다 적대적이다. 그래서 대부분 수입을 해야 하니 물가가 비싸고 때론 부족 할 때도 있다한다. 

내륙에 같은 동방정교 국가인 조지아 말고는 적대적인 국가에 포위되여 있다


국경에 생필품 노점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 입국 수속은 아주 빠르고 인상도 좋았다. 관광객을 환영하는 분위기이었다. 우리의 아르메니아 기행은 느긋한 점심으로 시작 되었다. 예전 카라반 숙소를 식당으로 개조한곳이었는데 포도주에 양고기와 절임채소이었는데 이곳도 조지아처럼 맛이 좋았다. 물론 포도주도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식당의 특별 배려로 기타를 뉘인 형태의 악기로 이곳 전통 음악까지 소위 샴페인 뮤직까지 즐기면서 말이다. 

옛날 카라반 숙소가 리소트로 변하고


전통 음악을 샴페인 뮤직으로 즐기며


포도주를 곁들인 양고기로 즐겼다



                 핑크의 도시란 이름에 아르메니아 수도 가기 전 두 곳을 들리고... 

먼저 독수리 날개라는 뜻의 하가르친(Haghartsin) 수도원에 들렸다. 11세기에 지은 것으로 별 특징은 없었다. 아르메니아 역시 지성소는 신도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고 지성소에 햇빛 줄기가 내리도록 한 설계가 흥미로웠고 그 빛을 내리게 한 지붕에 돔이 작지만 아름다웠다. 

하가르친 성당


작지만 둠 설계가 특이하고


지성소에 햇빛을 들계했다


지성소는  작고 보잘것없었지만 모든 신자에게 커텐을 열여 있었다


 이어서 둘레가 100키로가 넘어 제일 크고 더군다나 해발 1900 미터라는 세반 호수를 찾았다. 먼저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바나반크 수도원을 갔는데 지금은 육지이나 본래는 물 높이 때문에 섬이었다 한다. 9 세기 한 여자가 죽은 남편을 기리며 혼자 살았다 하며 그 뒤 12 세기부터 신부들이 와서 수도원이 되었다 한다. 그저 아담한 성당인대 돌조각 하나와 벽화 하나가 날 괴롭힌다. 무슨 뜻의 메시지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기우뚱 거리며 예레반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내일부터 진짜 아르메니아를 볼 기대감을 갖고,,,,,



세바나반크 수도원 


세바나반크 수도원에서 본 세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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