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jung
다정(dajung)
Virginia 블로거

Blog Open 11.04.2011

전체     315023
오늘방문     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32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달력
 
일본 규슈 여행 1 화 태제부천만궁에서
05/31/2019 13:45
조회  1212   |  추천   7   |  스크랩   0
IP 68.xx.xx.202
일본 기행 1 화 태제부천만궁 신사에서 (2019) 

태제부천만궁 신사


일본하면 나의 모든 생각은 두 사람의 글에서 시작 된다 하나가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이 한국역사에서 3국 시대라고 부르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3 국 시대를 그리 부르지 말고 여기에 일본(왜) 와 가야를 넣어서 5 국 시대라고 해야 한다는 그의 역사관, 그리고 제레드 다이야몬드의 저서 총,균,쇠 의 한국판에 특별 부록에서 한국과 일본은 일란성 쌍둥이인데 왜 그리 서로 앙숙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글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러한 이유의 근원을 따지기보다 좀더 양국이 친숙해 질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를 바라면서 여행을 시작 했다

 나는 지금 후쿠오카 역에서 기차를 타고 태제부천만궁으로 가는 길이다. 후쿠오카 기차역 이름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하카다(博多)이다. 이 지역에서 본래 상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후쿠오카이었고, 무사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하카다 이었다 한다. 그래서 무역항으로는 후쿠오카가 더 알려졌지만 몽고, 고려군이 처 들어 와서 벌렸던 곳으로 몽고고려군 침공 같은 전쟁을 말 할 때면 하카다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곳 하카다 에서 전쟁의 실상은 전쟁다운 전쟁을 별리기 전에 큰 바람으로 고려 몽고군이 크게 패했고 그래서 그 바람을 신풍(가미가제/神風) 부리기 시작했고 2 차 대전에 자살폭격기 가미가제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내가 태제부천만궁을 찾는 첫 번째 이유는 신궁인 천만궁 방문보다 태제부의 잔재라도 보고 싶어서이다. 천년 넘게 한일 간의 갈등 그리고 오늘 날 절정에 이른 한일 간에 상호 증오하게 된 원천이 663 년 백강전투이고 그 연장선에서 태제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660년 백제가 신라 당 연합군에 의해서 망하였다. 그리고 3 년 뒤 일본에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백제부흥을 꾀하였다. 이때에 왜(일본)가 1,700 척에 2만 7 천명의 군대를 파견 백제부흥군에 합류하였다. 당과 신라, 그리고 백제와 왜 간에 벌어진 국제 전쟁이었다. 전쟁 결과는 백제부흥군과 왜가 패하여 모두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이들은 당과 신라가 일본으로 쳐들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수성을 쌓고 방어를 준비하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방어사령부가 태제부(太帝府) 이다. 나중에 이곳이 서일본의 정치, 문화, 외교의 중심이었고, 홍로관이라고 외국 사신들의 입국과 접대를 관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잔재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천만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스타벅스 커피집 입구 장식에 방어목책 개념의 데코레이션이 전부이었다. 

 간 날이 장날이었나? 일본은 서기 몇 년 이런 식이 아니라 천황재임의 임기 년 수로 따진다. 그리고 그날 5 월 1 일이 새로운 천황 레이와 즉위 날이었다. 천만궁 신사는 천황의 축하보다도 천황으로부터 축복을 빌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로 인사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섰다. 문이 보인다. 3 국시대의 솟대인 소도가 연상된다. 바로 하늘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새의 조각이 보인다는 말이다. 

문을 지나면 첫 번째 보이는 것이 하도 만져서 반짝이는 소의 금속 조각이 있다. 소에 엉켜진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신궁은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이다. 그는 모함으로 이곳에 귀양을 왔는데 이상하게도 그를 모함한 사람의 가족들이 병들고 죽고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한다. 그래서 모함한 사람이 귀양을 풀개하고 그 후 그가 죽고 시신을 교토로 옮기려고 수레를 태웠는데 소가 이 지점에 이르러 풀썩 주저앉고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신사를 지었다 한다. 그래서 그 소를 기리는 조각이 있는 것이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그 후 학문의 신으로 추존 되었다. 그리고 학문의 신 신사가 일본 전역에 12,000 개가 있는데 이곳이 본부이라 한다. 입시 때면 바로 이 신사에서 금속으로 된 바로 이 소 조각을 만지고 신사에서 행운을 빌면 합격한다 해서 하도 소를 만져서 조각이 그렇게 매끄럽게 된 것이다. 신사로 가는 길에 매화나무가 몇 천 구루가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 교토에 있는 매화나무 가지가 날러 와서 이곳에 6 천 그루의 매화나무가 생겼다 한다. 또 그로 인하여 그의 주검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매화나무가 그의 상징이 되었다. 

신사 앞에 섰다. 너무나 긴 줄이라 신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고 그저 신사 제단만 구경하고 돌아서야 했다. 나의 백제와의 인연을 찾는 역사 발자취는 이제 많이 지워져 있는 것 같다. 이 신사를 오르기 전에 가마도 신사를 찾았었다. 사실 웅진천황, 신궁 황후신을 모시는 신사로 천지천황 2 년째에 (663) 백강전투에서 패한 후 664년 태제부로 방어본부를 옮긴 후 야로오즈 신을 모시게 된 신사이나 이곳 역시 이제는 남녀의 인연의 신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모든 것이 이제는 현재의 재미 행운을 비는 신사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후쿠오카 나의 숙소로 가는 기차에서 주위를 승객들을 본다. 그리면서 한국의 지하철 승객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보았다. 얼굴들이 편안해 보인다. 그런데 ? 화장술이랄까 의상 때문인지 좌우간 교토같은 대도시가 아니어서인지 승객들이 어딘지 촌티가 난다. 또 있다. 휴대폰에 그리 몰두 하지 않은 듯 하다. 나 같은 관광객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들이다. 버스 안내판, 식당 어느 곳 간판도 모두 다 일본글 다음에 한글이다. 나는 느긋하게 일본식과 한국식 식단의 뷔페 식당에 들렸다. 한국 소주 참이슬을 판다. 약 3 달라이다. 나는 소주 한 병을 곁들여 느긋한 저녁을 즐겼다.

후쿠오카의 전망대....해변을 매몰 하여 신시가지를 만든곳이다


태제부천만궁 역이다 


버스까지도 레이와 천황 등극 축하 광고이다


천만궁 입구에 들어선다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일주문이고 하늘과 영결을 상징하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다. 

한국 삼국시대의 문화의 잔재이다


소를 만지고 기도하면 합격한다나...


신사 참배는 손 부터 정결하게 하고...


꼬마 아가씨까지 천황의 축복을 빈다


스많은 사람들이 천황취임을 기해서 봉헌을 했다


정원 부근에 6000 개 매화나무가 있다



신라 당 연합국의 침공의 대비했던 태제부의 잔재는 스타벅스 가게 문에 

장식된 방책이 전부라니.....


나는 일본의 신사를 한국의 삼신할머니 모시는 칠성당이고 조상 모시는 사당이 

아닌가 싶다


백제 부흥군 패배 다음해 하니까 664년  태제부 본부 설치한 

웅진천황 2 년 세워진 야로오즈 신사가 이제는 아가씨들 좋은 남자 

만나게 해 달라는 신사로 이메지가 바뀌었다. 일본의 현주소이다




신사. 레이와 천황, 태제부, 테제부천만궁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일본 규슈 여행 1 화 태제부천만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