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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이태리 기행 6 화 쏘랜토 그리고 폼페이
12/20/20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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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남부 이태리 기행 6 부 
 쏘랜토(Sorrento) 그리고 폼페이(Pompeii) .



폼페이 입구에 서있는 조각...정체불명이다 본래 비너스 상이 있었다 했는데....인위적 돈 냄새가 난다

 

발뒤꿈치(Heel) 마테라에서 이제 발끝(Tip of feet/toe) 인 나폴리 지역으로 떠난다. 그 가운데에 이태리 알프스의 절경 돌로미티(Dolomites)를 닮았다고 작은 돌로미티라는 이름이 붙은 산속을 거쳐 꽤나 많은 시간을 거쳐 지나니 넓은 평원지대가 나온다. 고위 쏘랜토 평야(Sorento Pampania) 이다. 그리고 곧 폼페이에 도착 했다. 내가 이곳에 2007년에 온 적이 있으니 .따져 보니 벌서 11 년 전이다. 주차장에는 버스가 넘쳐나서 우리는 좀 더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폐허의 폼페이로 들어가는데 그렇게 많이 들어왔던 중국말 소리는 안들이고 한국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좌우 선후 사방에서 들려온다. 한국 단체 손님 여러 팀이 온 것 같다. 

작은 돌로미티라고 불리는 산골을 지나...


쏘랜토 팜타니아로 들어서면 곧 폼페이 폐허가 나온다 


지금 버졋한 길이 되어 폼페이로 걸어가지만 폼페이는 뒤로 밀린꼴이 되고  토사가 쌓여서 생긴 땅이다

 

폼페이 역사를 더듬어 살펴보니 기원전 8 세기에 오스코 족이 이곳에 정착을 했으며 그들이 폼페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고 몇 백년간 몇 개의 부족이 처 들어 와서 주인이 바뀌기도 했지만 기원전 89 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AD 62 년 큰 지진이 있은 후 이젠 괜찮다 하던 차에 19 년 후인 AD 89년에 베스비우스(Vesuvius) 화산 폭발로 5-6 미터의 화산재가 순식간에 덮쳐버렸고 잃어버려지고 그리고 전설로만 남았던 이 폼페이가 19 세기에 발굴로 오늘에 이루게 된 것이다. 폼패이가 당시에는 바로 바다에 닿은 항구이었으나 2000년 동안 토사로 2 키로나 뒤로 물러나 나는 지금 그 토사가 길이 된 도로를 걸어서 폼페이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 언덕에 커다란 남성 동상이 서있다. 제우스신인가?. 누군가? 근래에 세워 놓은 것 같다. 비록 녹이 슬었으나 이건 2000년 전 당시의 것은 아닌데...내가 알기로는 환락의 도시 매춘의 도시 그리고 뱃사람들을 유혹하려고 비너스의 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폼페이 유적을 돌아보았지만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인가? 우선 영어로 설명하는 가이드가 너무 성의가 없었다. 또 관광객이 넘쳐나서 우리는 밀려다니는 듯 했다.그리고 11년 전에 왔을 때에는 현장에 모습이 그런대로 보존되어 2000년 전의 진짜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그들이 유물을 잘 보관한다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꼭 기다란 상점 같은 곳에 넣어서 유리창을 들여다보게 했으니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폼페이에 들어서면 극장이 나를 마지한다.


칼리쿨라 개선문 거리를 거닐다가...


또 아폴로신전 페르쿠리오 길을 거닐다가 


제우스 신전까지 간다


나는 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여러 로마시대의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그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약성서에도 나오는 알렉산드리아와 쌍벽을 이루는 도사관의 도시 에베소, 사랑의 대명사의 도시인 고린도 같은 유명 도시도 갔었을 때에도 그곳에서도 매춘의 흔적도 보았다. 그러나 폼페이처럼 남자의 상징 그것을 문패에 붙이고 그림마다 벽화마다 성행위의 그림이 넘치는 이 폼페이는 정말 특이하다고 새삼 느꼈다.. 속으로 정말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이기에 하나님의 천벌이 내린 것이 아닌가 하며 실소를 지으며 폼페이 성에서 나왔다 

석고가 된 시신을 보고


부호의 장원 입구에 바닥 타일도 구경하고


호화스러운 벽화도 보고


무수한 포르노 벽화를 보았다


이런 집 문패를 보고 미소가 지어진다


2018 년 10 월에 발견 됐다고 발표된 그림이다. 제우스신이 새로 변신해서 여왕을 잉태시키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을 그렸다



폼페이에서 우리는 쏘랜토 해변을 돌아서 숙소인 호텔로 갔다.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멀리 자그마한 섬이 보인다. 그리고 하얀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러시아 남성 발레 불세출의 누레예프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마고트 폰테인과 열연 하였던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의 장면이 떠오르다가 바다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를 보였다. 문득 아차 이 바다가 호머의 오딧세이 (율리시스) 무대이었지 하는 생각이 났다. 당시에 미국이 벤허 같은 종교적인 스펙타클 영화를 만든 시기이었다. 그런데 이태리는 이테리답게 오딧세이라는 신화를 영화로 그것도 또한 스펙타클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주인공 오딧세이(율리시스) 가 바로 내가 보는 저 바다 위에서 자기 몸을 돛대에 스스로 묶어 놓고 사이랜의 유혹이 어떤 것일까? 하며 시험과 도전을 해보았고 결국 돌섬으로 오라는 인어의 소리 (사이랜) 에 몸부림을 친다. 그 역을 맡은 주연 배우 커크 더글라스의 명연기 장면이 떠오른다. 

 사이랜의 얽힌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사이렌은 본래는 인어가 아니라 인간과 새의 혼합이었다 한다. 그런데 자기가 부른 배가 자기에게 오다가 카프리 섬에 부딪쳐서 파손되었으나 침몰하지 않고 그 배가 나폴리로 흘러갔고, 그래서 그 반 인간 반 새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그리고 모습이 반 새 반 인간이 아니라 반 인간 반 물고기 즉 그가 인어가 되었다고 한다. 

한가하게 요트가 지나가지만 이 바다가 호머의 오딧세이 무대이었다. 그리고 섬에 자그만하게 보이는 하얀집이 러시아의 그 유명한 무용수 누리예프 별장이었다


영화 율리시스(오딧세이) 광고 포스타 커크 다글라스,실바노 만가노가 주연한 영회이었다


율리시스와 사이랜.  빅토리아 여왕시절 허버트 존스의 작품이다


 창밖으로 한쪽을 바라보면 깎아 세운 듯 한 모습의 기암절벽이 경이롭고 또 한쪽은 높은 산 언덕에 집들이 보인다.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살수 없는 꼭대기 까지 집이 보인다, 도저히 살수 없으리라 생각이 들어서 가이드에게 저기서 어찌 살 수 있겠는가? 물어보니 대답이 무덤이란다. 오로지 당나귀에 의존해서 올라갈 수 있는데 근래에는 오직 나이 많은 분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찾는다 한다.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잊어진 저 산꼭대기에 뭍인 고인들이 저 바다의 그리스 전설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겠지.....

폼페이 폐허를 구경하고 쏘랜토 숙소로 오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언덕 위에 집도 그랬고



율리시스 사이랜 폼페이 폐허 누리예프 제우스 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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