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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이태리 기행 5 화 알베로벨로 그리고 마테라
12/15/20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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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이태리 기행 5 화 Alberobello 그리고 Matera 

 알배로밸로에서 




알베로벨로 마을을 배경으로 


 인구가 1 만 명이 조금 넘는 자그마한 마을이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 무엇인가 책자를 들춰 보았다. 살펴보니 이 곳의 역사의 시작은 어제 내가 들렸던 오트란토(Otranto)에서부터 시작 된 것이었다. 1484 년 오스만 터키가 오트란토를 침공하고 점령하고 이스람교로 개종을 종용하고 배교하지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던 시대에 기리안토니오(Gigliantonio) 1 세가 이들 오스만 터키 군과 싸웠고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그 지역을 지배했던 나폴리 왕국에서 그에게 공으로 이 알베로벨로 땅을 주었다 한다. 하지만 그 땅은 돌멩이 밭에 나무만 무성했지 별 쓸모가 없었다. 

이런 척각한 땅 그리고 돌맹이의 땅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안드레아 마테오(Andrea Matteo) 백작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 아이디어란 것은 ‘이 땅에 와서 개발을 해서 농사를 지어 먹어라 소출의 단 10% 만 세금으로 받겠다’ 이었다. 아마도 당시 세금 10%는 파격적인 혜택이었던 모양이었다. 농노 같은 조건으로 비참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우선 이곳에 밭을 일구기 위하여 흩어진 돌멩이를 걷어 내려는 이점도 있어 그 돌멩이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이곳에 돌멩이 집(Trulli)을 지어 살았고 현재 약 900 개 남아있다.
 

투룰리 집들 


본래 이 돌멩이 집은 이 지역에서 석기시대부터 있어다하며 세계에서 아일랜드와 이곳에만 있는 지붕이 돔처럼 동그란 모양의 특수한 모양의 집이다. 이곳에 이 돌멩이 집(Trulli)에는 두 개의 다른 개념이 있다. 여지껏 다른 지역에서 보아온 돌집은 5 가구의 소작인을 들 수 없어 지방정부에서 조사가 오면 금방 헐어버리려는 집과, 이 알베로벨로 처럼 영구히 살려는 집이다. 

이곳에 마침 기념품 상점 주인이 친절히 돌집 구조를 보여 주어서 이곳의 구조를 자세히 관찰하니 이중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도 아주 공간 이용을 잘 해 놓았다. 이 돌멩이 집 동네를 거닐면서 보니 한 방울의 빗물도 받아 놓으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지혜가 돋보였고 지금 이 돌멩이 집들이 기념품 상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손님을 대접하였는데 꽤나 남부 이태리의 흥을 보는 듯해서 즐거웠다. 

집 동네를 들어섰다 


마을 상점 주인이 우리를 반긴다


아직도 주택으로 이용 살고 있다. 번지 있는 집이란 말이다


말을 메어두던 고리이다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지


내부에 들어가서 돔 형태의 지붕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은 기념품을 올려놓고 팔고 있지만 이곳이 부엌이었다


페인곳에 나무를 걸어 2 층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이니 최대로 사용하려고...



 마테라에서
 
 알배로밸로에서 잠시 점심과 휴식 후에 마테라(Matera) 로 향했다. 이곳 마테라 역시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일뿐만 아니라 2019 년도 유럽 문화도시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테라가 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에 등록된 핵심은 계곡에 흩어져 있는 동굴마을(싸시/Sassi) 이다. 이곳에 1 만 5 천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해서 빗물을 받아쓰던 흔적과 유물이 출토된다. 그리고 로마 비잔티움 시절에는 인구가 꽤나 번성했었다. 

지금의 모습은 그 번성했던 로마 시대의 모습이다. 그래서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멜 기븝슨 의 작품 (Mel Gibson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비롯해 몇 개의 영화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러나 비극이 시작된다. 비록 로마시대 때는 아주 번성했고 그 이후에도 계곡 위 언덕에서 양들도 키우고 또 수로를 이용해서 물도 받아쓰고 생활 해 왔지만 18-19 세기에 이르러 이 언덕에 사람들이 이주 해 오면서 밀농사를 짓기 시작 하면서 그들은 삶의 터전을 모두 잃었다. 1952 년 2 차 세계대전 혼돈의 와중에서 벗어나 이태리 정부가 국내 상황, 국민들의 삶을 드려다 보기 시작했을 때 첫 번째가 이 싸시 마을의 비참한 삶을 보고 주민들을 이곳에서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계곡 아래 마을 전경 


동굴 집 


로마 시대 지은 물 저장 탱크 


그런데 이곳의 동굴에서 화장실도 공용으로 쓰고 혼거(混居) 비슷한 생활을 몇 천 년 살아온 그들인지라 현대와는 절벽을 쌓고 아직도 1 만 1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철거를 안 하고 산다고 한다. 인간은 참으로 짖궂인대가 있다고 할까 길가 창가에 포스터가 보인다. 그 동굴의 집을 판다는 광고다. 이 참혹한 곳에 이제 그 동굴을 개조해서 사람이 살게 해 놨으니 와서 살라고 한다. 아마도 그곳에 한번 사아 보겠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왜 그런 호기심을 인간들은 가지고 있는지? 

마을 계곡을 구경하려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나는 계곡을 내려가다 길이 너무나 좁고 미끄러워서 중도에서 포기 하고 다시 카페나 들려 커피나 마셔야겠다고 돌아오고 있데 나에게 행운이 찾아 왔다. 혼자 외롭게 돌아오고 있엇는데 별로 크지 않지만 왠지 들리고 싶은 성당이 눈에 들어 왔다.

파르고토리 성당(Church of Pargotory)이었다. 비가 와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성당이 이제 성당이 아니라 미술 전시장이 되어 그림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림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꽤나 수준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작가 이름을 보니 어! 어! 모네, 크림, 라파엘 등등이 아닌가? 이 정도면 경비원이 있고, 사진 찍을 때 플래시 터트리지 마라 등, 요란할 만 한데 너무 조용해서 안내원에게 이거 진짜 그림이냐 하니까 진짜란다. 이 값비싼 작품들을 그런 식으로 전시 하다니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 거렸다, 역시 이태리 동쪽의 남부 풀리아 지역은 전체가 문화의 도시 조용한 도시 그림을 아낄 수 있는 수준의 동네라는 기분이 들었다. 

계곡을 내려 가다가 포기하고 '''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  라는 곳에 들렸다


전형적인 바로크 풍이다


크진 않앗지만 장엄해 보였다 



그리고  성당에 들어 섰다


현재 과거 그리고 온 종족의 머리를 진열해 놓았고


그림 전시가 되어 있었다 허술해서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가...어 어 했다


모네 작품도 있고 


구스타브 그림 작품도 있고


라파엘 작품도 있엇다

 이제 내일이면 남부의 동쪽 풀리아 지역 기행을 끝내고 서쪽의 나폴리, 쏘랜토, 카프리, 아말피 로 간다. 거의 10 년 전에 간곳이다 어찌 변했을까 궁금한 마음을 갖고 폴리라 지역의 기행을 끝냈다.


투룰리 알배로밸로 마테라 아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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