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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이태리 기행 2 화 산 위에 성 그리고 트라니
11/23/20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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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남부 여행 -2 산위에 성 그리고 트라니 (Castel del Monte and Trani) 


 여행 둘째 날이다 오늘의 일정의 첫 방문지는 산위에 성(Castel del Monte) 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이태리 리라 화폐 1 전 짜리는 이 성의 모습이다. 

 나는 이성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 성을 지은 이름조차 복잡한 프데리코 2 세 (La Puglia e Frederico II) 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에서는 호엔슈타우펜 왕으로 불리고 시실리에서는 프리데릭 1세 그리고 때로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예루살렘 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태리에서는 풀리아의 프데리코 2 세(La Puglia e Frederico 2) 라고 불린다. 사실 그의 역사적 기록을 보니 그는 호엔슈타우펜 왕가로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4 살 때에 시실리 왕국의 주인인 어머니가 죽자 시실리 왕이 되었고 그리고 첫 번째 부인이 죽자 예루살렘 왕국의 공주와 결혼을 해서 예루살렘 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후 이곳 이태리 남부 풀리아 지역의 왕으로 군림한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와서 통치를 했는지 중세 서양사를 전공하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예루살렘을 십자군이 회복 후 예루살렘에 기독교 왕국이 세워졌지만 12세기 초 이스람의 그 유명한 술탄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그리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기독교의 예루살렘 왕국이 잠시 존재 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밀려나서 십자군 기사들이 지중해 로데스섬으로 더 밀려나서 말타섬으로 옮겨 갈 즈음에 그가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그의 인생여정이 말해 주듯이 그는 이스람 문화권과도 친숙해 질수 있었고, 또 건축과 과학에서도 꽤나 많은 지식을 쌓은 듯하다. 또 그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고, 초기 나폴리 대학의 재정 지원자이자 이태리어의 정리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신곡을 들먹이며 단테를 이태리어의 통일의 효시로 말하는데 요즈음은 프데리코 2 세를 꼽는다. 

 바리에서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 숲을 지나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니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성이 보인다. 말 그대로 산 정상에 성이다. 가까이 가 본다. 건물양식이 특이하다. 팔각형 건물이다. 성 안에 박물관에 모형을 보니 그 팔각형의 건물의 뜻을 알겠다. 당시 서구인들은 하늘은 원 그리고 땅은 4 각형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원과 4각형을 겹쳐놓으면 8 각형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 건물은 우주를 상징하는 8 각형을 표현한 것이다. 


산위에 성 (Castel del Monte)모형의 1리라 동전이다   아주 작다


성 앞에 왔다


정문은 사자 조각 문양이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건물에는 살림살이 방이 없다. 그저 달랑 벽난로만 있다. 프데리코 2 세는 이곳을 단지 이곳 지방 영주들을 모아서 자기의 위세와 단합을 위해서 만나는 장소로 그리고 때로는 사냥할 때에 잠시 머무르는 장소로만 이용 했든 것 같다. 

프레리코 2 세 (Federico 2)


하늘은 원 땅은 4 각형 이것을 합치면 8 각형 모양..즉 우주가 된다


하지만 내부는 이런 벽 난로 


이런 보잘것 없는 회의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런 수세식 변기가 있고


그리고 한 방울의 빗물이라도 더 모으려고 패인 골과 수도 관을 만들었다


 이 성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이다. 하지만 이 성의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프데리코 2 세와 로마교황과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고 그래서 교황이 프랑스지역 영주들에게 명하여 프데리코 2세를 제거하라 명령을 했다. 그래서 그들의 침공을 받고 전쟁에 패하여 그의 아들은 포로가 되어 바로 이 성에 14년을 지냈다 한다. 그 후 이 성이 별로 쓸모도 없어서 아무도 보살피는 사람이 없어 폐허로 있다가 근대에 와서 복원되었다 한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절경이다 그루지아 출신의 미아라는 여자가 사진을 찍자니 끼어 든다 


인생무상을 되새기며 바로 바닷가에 항구도시 트라니(Trani)를 찾았다. 아름다운 해안이다 개인용 요트가 꽤나 많다. 이곳이 아드리아 바다로 나가는 항구이다. 프데리코 2 세 때에 꽤나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ABC 하며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ABC....Another Beautiful Church.... 사실 유럽은 어디를 가나 또 다른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이곳에는 순교자 성 니콜라 성당이 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기 전에 별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롤라궁(Marola Palace) 그리고 스코라노바 성당(Scolanova Church) 또한 뜻밖에 볼만하였고 바닷가를 낀 스와비안 성(Swabian Castle) 성도 볼만하였고, 그리고 성 니콜라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좌우간 내 눈 높이, 내 수준에는 역시 ABC Another Beautiful Church 이었다. 

트라니 가는길에 신석기 시대부터 있었다는 돌집 (Trulli)


성 니콜라 성당 


성 니콜라


스와비안 성( Swabiran) 


이 수도 꼭지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로마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300 키로 수로관(나폴리로부터) 을 

통해서 온 물이다


바리에 나의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본다. 그러다가 길가에 오픈 카페에서 한가로이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낮에 이곳 길가 카페에서 오징어 튀김(calamari) 과 샌드위치 그리고 맥주를 둘이서 먹었다. 20 유로쯤 된 것 같다. 그 후 상가를 구경한다고 뒷골목에 들어서니 길가 카페가 보였고 메뉴에 가격표를 보니 이곳에서 먹었으면 약 2 유로정도 더 싸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공연히 입맛이 쓰고 어제 바리에서 2-3 인분이나 될 수 있는 4 유로주고 먹은 큼직한 마가리타 피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유럽에서 20 유로면 net net 20 유로이다. 세금도 없고 팁도 없다. 발밑에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최고 자리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리고 그들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면 됐지 단 2 유로쯤 더 썼다고 입맛을 다시는 나...한심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오후이었다. 쉿! 그런데 말입니다...나중에 카페 영수증을 보니 그곳은 자릿세(Table charge) 로 일인당 2 유로를 받았더군요. 명당자리니 그곳에서 먹었으니 돈 내야 했나봅니다. 그러고 보면 바가지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 쯧쯧..


아름다운 트라니 항구


바로 이렇게 물결치는 곳에서 먹었으니...자리값이 있어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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