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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행 1 화 (2017)
10/10/20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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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투라는 단편 소설의 작가 리콜라이 고골


새 시대를 열고 있는 러시아


후르시쵸프 수상 하면 그가 UN총회에 와서 구두를 벗어 발언대를 두드리며 서방세계를 맹렬이 비난하던 모습이 나에게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미국 방문에서 엄청난 미국의 국력에 놀랐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로서 농업 부분을 눈 겨워 보았다. 그리고 옥수수가 먹기도 하고 사료로도 쓰임을 보고 옥수수가 굶주림 해결의 열쇄라고 보고 귀국 후 전 국토에 옥수수 제배를 명하였다. 물론 기후 토양을 고려하지도 않았으니 대흉작이었고 러시아인들을 더욱 더 굶주려야 했다. 이제 러시아인들은 그를 바보 수상이라고 부르며 그를 코믹한 유머가 많이 떠돈다.


유머 하나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돼지 농장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일렬로 세운 돼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프라우다 신문 기자가 이 사진을 신문에 올리면서 무엇이라 써야 하나 고심 하다가 이렇게 썼다. ‘오른쪽 끝이 후르시초프 서기장입니다’


유머 둘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죽어서 지옥에 갔다. 그리고 염라대왕 앞에 섰다. 염라대왕이 왈 이곳 지옥에서 벌을 받는 모습 몇 개를 보여주겠다. 그 중 하나 자네가 골라라. 후르시초프가 첫 번째를 가 보니 활활 타는 장작불 위에서 레닌이 고통스러워했다. 아니요 하고 두 번째를 가 보았다. 커다란 프라이 판에 스타린이 어이 뜨거워하며 통통 뛰고 있었다. 다시 아니오 하고 다음을 가보니 브레즈네프가 금발의 미녀 마린 몬로와 함께 침대에서 딩구르고 있지 않은가? 후르시쵸프가 나 이것을 원 하오 하니까 염라대왕 왈 임마! 이것은 마린 몬로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이지 브레즈네프가 벌 받는 것이 아니야


이러한 유머가 2017년 가을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모스코바 까지 가는 러시아 국적 선박 리버 쿠르즈(river cruise)에서 러시아 가이드가 첫 모임에서 안내의 말을 시작 할 때에 시작한 유머이다.

와! 이렇게 달라졌나 했다. 내가 2010년 이곳 러시아에 왔을 때에 농담이 이러했다. 엘리베이터에 여러 사람이 탔다. 누군가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그 웃는 사람은 미친놈이거나 미국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길거리를 쳐다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러시아가 7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에게는 진정 믿을 수 없는 변화이었다. 7 년 전 당시에는 길거리 행상이라고는 꽃을 팔거나 책을 파는 것이 전부이었고, 그리고 꽃 파는 행상들의 꿈이 란 것이 발레공연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프리마돈나에게 꽃다발을 안기는 것이고, 책장사들은 야! 자본주의 돈타령에 파묻힌 골빈 놈들아 책 좀 읽어라 하면서 경멸의 눈으로 보았던 그들, 하지만 옷이라고는 검정, 하얀색, 회색이 전부이었다. 그런가 하면 일 년에 책을 14 권 이상 읽는 러시아인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돈나 공연에 표가 매진되지 않은 러시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행상은 안보이고, 요란한 색의 옷을 입고, 셀폰을 들고 희죽거리며 길을 걷는 여자의 모습만 보이니 정말 세상이 정말 바뀌어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진정 러시아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 해 본다.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가?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고들 한다. 다시 말해서 러시아는 어느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굴곡의 모습으로 역사를 장식한 대표적인 나라이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을 패전시켜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였고, 사실상의 세계 2차 대전의 주 무대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었고 소련 연방의 당시 총 인구 2억 2 천 중 거의 25%의 희생자 즉 2500 만 명의 전사자와 2500만의 부상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싸워 결국은 히틀러를 무너트리고 2 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게 한 나라이다.


그러면서 나는 독일과 소련과의 2 차 세계대전이 이야기만 나오면 작곡가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생각이 난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당시는 레닌 그라드) 가 독일에 공격으로 포위가 되어 장장 800일을 버티며 항쟁을 하였을 때에 민간인 100 만 이상이 굶어 죽어갔다. 이 때에 전쟁의 참전을 하겠다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러시아 인들이 말렸다. 그 위대한 예술인은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예술 사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래서 참전 대신 오케스트라 심포니 7 번을 작곡하였고, 바로 레닌그라드 포위 속에서 독일병사들이 들을 수 있게 커다랗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했다. 독일 병정들은 레닌그라드가 건재하며 강한 항전 정신에 위축되었고 세인트 피터스버그 침공의 전의를 상실했다. 사실 이 연주 도중 하루 125 그램의 식량배급으로 영양실조로 쓸어져 숨진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러시아의 국민정신이었다.


이제 그 러시아의 국민정신이 다시 그리고 서서히 제 궤도에 들어 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7 년 사이에 내 눈에 보이는 변화 변영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생각 해 보기로 했다. 이 사실을 나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면 러시아(구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한 변천의 역사에서 보아야 하고 역사 변천의 인식은 이렇다. 먹고 살아야 하는 빈곤이 최악의 상태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한다. 아마도 이 시대가 농민들이 수탈과 강제 노역의 노예제도로 최악의 굶주림에 시달렸던 제정 러시아 시대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10월 혁명으로 공산 정권 수립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경재체재 정책으로 얼마간은 굶주림을 면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다소 안정되었다. 이것이 스타린 사후 1970년부터 약 20 년간 즉 후르시쵸프 수상 때부터 브래즈네프 수상 때 쯤 일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의 인간 세계에서는 먹고 사는 시장원리이란 것이 항상 존재하게 되어있지만 구소련에서는 이 시장기능에 벗어난 비능률과 과오의 궤도를 수정할 수 없는 공산주의가 그 시장원리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소련 공산당 관료들은 시장의 존재 위에 그 공산당이 군림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얼마간 버티어 갔다.


  결과는?  사회 붕괴이다. 빵 한 개, 계란 한 개를 사기위해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 구소련의 몰락의 서곡이었다는 말이다. 이때가 고르바쵸프 와 옐친 대통령시대이었다. 여러 위성 국가들의 탈퇴로 소련 연방은 없어지고, 맥없이 동독을 서독에게 돌려주고 루불 화의 가치는 추락하고 말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추락과 바닥은 공산주의의 후퇴와 시장경제 속으로 진입을 의미했고, 이제 러시아는 이 바닥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에 들어선 것 같다. 그리고 운이 좋았는지 시대를 잘 만난 것인지 이 진입 시기에 불라디미르 푸틴이 등장하여 그는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사실 그는 그러한 능력도 있어 보인다.


빵을 해결하고 시장논리를 펴고 있는 푸틴의 인기가 그리 높은 것을 보고 나 스스로도 놀랬다. 여지 것 나를 포함해서 많은 서방의 사람들이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즉 재건 개편의 깃발로 오늘의 러시어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들을 하였는데 러시아 현 주민들은 고르바쵸프는 말만 하는 사람이고 빵 한쪽을 위해서 줄서기만 하게 만든 사람이고 실제 일을 제대로 한 사람은 푸틴이라 입을 모았다는 말이다.


이제 러시아는 힘찬 내일로 향하는 젊은 국가이다.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결할 수 있다는 그런 관점에서가 아니라 건전한 사회로 말이다. 그런데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리버 쿠르즈에서 저녁이면 가이드가 해설자로 변하여 러시아 역사, 레닌부터 현재의 푸틴 대통령 때 까지 공산당 권력과 역사의 변천, 독재자 스타린의 일생, 러시아 동방정교희 이야기 등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정부에서 하도록 지시한 것이냐 하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그리면 그 이야기 원고는 어디서 구했느냐 하니까 자기가 공부하면서 작성한 것이라 한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모스코바로 가는 동안 3 곳에서 정박해서 구경을 하였다. 마을마다에서 주민들의 러시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 긍정적이고 그리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러시아가 미래로 향하는 힘의 원천인 듯하다. 그러면 그 원천의 근원은 어디서 인가? 나는 이렇게 대답 하겠다. 모스코바에 가서 중요 건물 앞이나 공원에 서 있는 동상들을 보아라! 누구일까? 외투라는 소설로 자본주의를 고발한 고골, 민족의 의식을 깨어준 푸시킨, 한 시골 지방 지주가 소작농에게서 매 맞아 죽은 아버지를 둔 도스토엡스키 이러한 문인들의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띤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가이드들의 이야기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책들을 이미 정독을 했다고도 한다. 한 국가의 희망찬 미래는 국민들의 건강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의 그 건전한 마음의 바탕은 어려서부터 읽어 온 책들 즉 역사, 철학, 문학이다.


나의 11 일간 러시아 방문은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화려한 여름궁전, 헤르미타지의 미술 박물관, 크레물린 안에 있는 동방정교회의 화려한 성당이 아니었다. 발레 구경도 아니었다. 러시아 사람들의 희망찬 눈망울이었다. 건전한 사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좀 더 낳은 세상으로 향하겠다는 희망찬 발걸음 이 모든 것이 러시아 시민들의 마음이었고 그 원천은 올바른 정신이었고 이 올바른 정신은 문화 아니 책에 바탕이었다. 이것이 내가 7 년 만에 다시 찾아 힘찬 젊은 러시아의 건전한 정신문화의 샘물을 찾은 값진 여행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7 년 후에 다시 찾은 러시아에서 더 즐거운 모습을 볼 것 같다. 그리면서 한국의 사설 학원에서 대학 입시 공부를 하는 대학 재수 삼수 학원생이 참고서를 달달 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은 바른 길로 지금 가고 있는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사진 설명




러시아가 몽고의 지배하에 반식민 반 조공의 형태로 지네다가 모스코바 공이 몽고(킵착크 한국)를 물리치고 러시아가 완전 독맂된 국가가 되고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망할때에 황제 조카와 결혼 동방정교의 황제 즉 짜르 가 되었다. 그가 이반 3 세이고 그의 승리의 상징 성당인 바실리 성당이다 모스코바 붉은 광장에 있다


이반 3 세


근대 국가로서 , 해군을 창설하고, 수도를 세인트 피터스버그로 정한 피터 대제 (표트르 대제)


피터 대제의 조카 며느리 그가 러시아의 황금시대를 누렸다



알렉산더 2 세 농노 제도 를 페한다. 기득권의 귀족들에게 암살당하고 그 피를 흘린곳에 세워진 피의 성당이다 러시아 혁명의 여명이 보인다


노일 전쟁때에 참전 한 오로라 함, 이 함정에서 쏜 대포가 10 월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세인트 피터스버그 사수에 힘을 실린 쇼스타코비치의 무덤에는 지금도 꽃다발이 놓여 있다


같은 러시아 유명 인사묘에 있는 호르시쵸프 무덤이다. 인생 무상인가


오늘날에 모스코바 거리 풍경이다


지하철 광고이다 이젠 사회주의도 아니다 융자 이자가 싸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비싼것 같다


 모스코바 대학가 앞에 오도바이족들이 모여 놀고 있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니 응한다.



구굴, 피터 대제, 알렉산더 대제, 토스토엡스키 흐르시쵸프 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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