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 길든 입맛 韓 최초 MSG로 '독립'…화학조미료 아니었네
05/30/20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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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 41. 미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미료 ‘아지노모토’를 한국에 들여왔다. 일본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 냉면을 집중 공략했고, 비싼 고기 육수를 내지 않아도 감칠맛을 내는 아지노모토에 한국인은 열광했다.

광복 후 일본 제품의 수입이 일체 금지됐지만, 한국인들은 밀수까지 감행하며 ‘쌀보다 비싼’ 아지노모토 구하기에 나섰다. 광복 후에도 한국인의 입맛은 여전히 일제하에 있었던 셈이다.
“입맛 독립 이루자” 일본 간 36세 청년
1956년 부산 대신동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현 대상그룹 전신) 창업주 임대홍 회장(오른쪽). 사진 (주)대상

경쟁 상대도 없이 밀수로 한국의 식탁을 점령한 아지노모토를 보고 분노한 36세 사업가 고(故)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회장은 국산 조미료를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의 조미료 공장에 취업했다. 조미료 제조기술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어깨너머로 배운 제조공정 기술을 갖고 돌아온 국내에서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한 번 실험실에 들어가면 100일이 넘도록 그곳에서 살 정도였다. 결국 1956년 1월 부산 동대신동에 495㎡(약 150평) 규모의 조미료 공장과 ‘동아화성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순수 국내 자본과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1956년 최초 국산 조미료 탄생
1960년대 미원 제품. 사진 (주)대상

호응은 컸다. 미원을 사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공장 앞에 줄을 섰다. 임 회장이 ‘석부’(돌로 만든 초기 제조설비)를 개발하면서 월 생산량은 5t에서 당시 최대 규모인 150t까지 늘었고, 가격 합리화도 이뤄낼 수 있었다. 가정주부 사이에서도 ‘맛의 비밀’로 통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모든 가정집이 미원 하나씩은 다 갖게 되면서 ‘미원’은 조미료의 대명사가 됐다. 1968년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김지미와 광고 전속모델 계약을 맺고 국내 최고 모델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임대홍 창업회장이 개발한 석부. 전국 각지의 유명한 돌을 전부 수집해 철분과 염산 함량 등을 조사한 끝에 석질이 가장 우수한 전라도 황등산에서 돌을 공수했다. 임 회장은 4개월 동안 직접 돌을 깎고 밀어 석부를 완성했다. 석부는 1일 평균 7~10t의 글루텐을 분해할 수 있었다. 사진 (주)대상
90년대 들어 승승장구하던 미원에도 시련이 닥쳤다. 한 식품회사가 무첨가 마케팅에 나서면서 미원의 주성분인 MSG(Mono Sodium Glutamate)가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것. 이를 계기로 약 20년간 정체기를 맞았지만 2012년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로 재점화된 MSG 유해성 논란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다양한 매체가 MSG 검증에 나서 안전성이 다시 입증되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10년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미 80년대부터 국제 사회에서 안전하다고 인정받았지만, 국내에선 뒤늦게야 오해가 풀렸다.

화학 아닌 발효조미료…“위 건강 보호” 연구도
발효미원. 미원은 발효미원과 다시마미원으로 거듭나며 국민조미료로 도약했다. 사진 (주)대상

실제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닌, 미생물 발효과정을 거치는 발효조미료다. 사탕수수에서 얻은 원당이나 당밀을 미생물로 발효시켜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을 추출한다. 이를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첨가해 글루탐산(88%)과 나트륨(12%)으로 구성됐다.

MSG의 정식 명칭도 L-글루탐산나트륨이다. 글루탐산은 다시마, 표고버섯, 멸치, 조개, 새우, 토마토 등 천연 재료뿐 아니라 모유에도 함유된 물질이다. 2018년 1월부터는 MSG의 정식 표기(식약처 고시)도 ‘화학적 합성품’에서 ‘향미증진제’로 변경됐다.

최근엔 MSG의 긍정적 효과를 부각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국제아미노산과학연구회(ICAAS)는 지난 2017년 한국식품과학회 국제심포지엄에서 “MSG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에 의한 위 손상으로부터 위점막을 보호할 수 있다”며 “폭식증이나 거식증 치료에도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MSG가 나트륨 섭취량을 최대 30%까지 줄인다는 연구는 이미 국내외에서 공인된 바 있다.

매출 40%는 가정집…‘발효미원’으로 제2 도약
2016~2018년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모델을 맡아 젊은 층의 관심을 받았다. 사진 (주)대상

미원이 개척한 조미료 시장은 종합조미료, 자연조미료, 액상조미료 등으로 세분화하면서 지난해 1910억원(닐슨데이터, B2C 기준) 규모로 커졌다. 미원은 전체 조미료 시장의 20.8%를 차지하는 발효조미료 시장에서 95.4%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미원은 현재도 기업간(B2B) 거래까지 포함해 연간 1000억원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직접 구매(B2C)한 금액은 한해 400억원이 넘는다. 미원 전체 매출의 40% 이상이 여전히 가정집에서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미원은 2014년 10월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이름도 ‘감칠맛 미원’에서 ‘발효미원’으로 바꾸고, 부드럽고 깔끔한 감칠맛을 구현했다. 패키지 디자인 역시 지난 60여년 간 미원의 상징이었던 붉은 신선로 문양을 과감히 축소하고 사탕수수 이미지를 앞세웠다. 리뉴얼을 기념해 홍대에 4일간 문을 연 팝업스토어 ‘밥집 미원’에선 발효미원을 넣어 나트륨양을 30% 줄인 국밥을 70년대 가격인 100원에 판매해 하루 물량이 조기에 매진되기도 했다. 이후 2015년 ‘다시마로 맛을 낸 발효미원’, 2017년 ‘표고버섯 발효미원’도 새롭게 선보였다.

최근엔 20·30세대를 겨냥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2016년 슈퍼주니어 출신 김희철을 모델로 섭외한 게 대표적이다. 김희철이 등장한 ‘픽 미원’ 광고는 유튜브 영상 공개 20일 만에 누적 조회 수 100만 건을 돌파했고, 이듬해 ‘픽 미원’ 2탄인 ‘오쓸래 미원’ 역시 공개 열흘 만에 6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이어갔다.

지난 2월엔 요리 월간잡지 ‘이밥차’와 손잡고 미원을 활용한 레시피북 ‘미원식당’도 출간했다. 미원에서 지난 1997년 대상으로 사명을 바꾼 대상 측은 "앞으로도 재미있는 콘텐트로 소비자와의 물리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활동을 펼치겠다"며 "소비자들이 미원을 직접 활용하고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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