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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정한 엄마 인가?
06/17/2011 09:10
조회  6612   |  추천   29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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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아들이야기

~~~~~~~~~~~~~~~~~~~~~~~~~~~

 

어느 부모님이나 이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기쁜 것은 자식의 올바른 모습이겠지요.

 

지금 나의 가족이야기를

쓰려고 이 시간 컴 앞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형이 간

코넬 대학교를 얼리액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일찍 뽑혀 들어갔습니다.

행운이 함께 해주었는지

코넬을 졸업한

 뉴저지 출신 재벌,

J0HNSON씨가 만든 영예의 장학재단,

뉴저지주에서
가장 뛰어 난 입학생에게 주는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재학시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영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일본 동경대학교까지
수많은 대학교에 공부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참으로 기쁨을 주었습니다.

드디어
그 작은 아들이

정식으로 심장내과(Cardiology) 박사가 되었습니다.

 살아온 지금까지 공부한 그의 삶,
 아들의 의술이 이 세상에 펼쳐지길 바라며
 지금 이 시간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코낼대학교 생화학과( 의예과)- 4년을 졸업하고
1년간 저희 비지니스 일을 했음
그 다음해 의과대학 합격
의과대학교( 본과)- 4년
심장내과 인턴- 1년
심장과 레지던트 -2년
일반 내과 의사가 되다 (자격증 취득)
일반 내과 의사를 하면서...

다시 특수 심장내과 전문의
팰러쉽에 도전하다- 4년
초등학교를 합하면 총27년을 공부했습니다

2009년 7/1일부터 심장내과 특수닥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험을 치르며 한 단계씩 올라갈 적마다
밤을 새며 공부했던 아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시립니다.

아들이 진정으로 심장내과 전문의가 되고자 했기에
참 기쁩니다.
그러나 제가 어머니인터라
 공부만 한 세월이라 가여운 생각이 듭니다

 아들이 마음을 다하여
아픈 사람의 등불이 되어 그의 삶을 살아가길 바랄 뿐 입니다.


 

.
그의 온화한 성품은 우리 집안의 자랑꺼리입니다
국민학교때 저금한 돈, 모두를 아무도 모르게 어려운 학우에게
몽땅 줘서 초등학교때부터 그의 큰 선행이 알려졌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날까지 살아온 그의 공부는 항상

앞자리에 있었습니다.

 미국 온지 1년만에 
초등교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아 
학교의 미국 선생님들이
"너는 이젠 모든 잉글리쉬를 가졌느냐? 하며
제퍼슨 초등학교 시절 미국 선생들을 놀라게한 아들

작은 아들과의 추억

그리고 나를 기쁘게했던 많은 일들
어찌 말로서 다 표현할수 있겠습니까
?

코넬대학에서 의예과 공부를 하면서
와인공부를 하여 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땄던 아들
본인은 술 한잔도 겨우 마실 정도의 실력(?)...

무엇보다도 코넬대학교 졸업시
졸업장 안에 노란 금색으로 쓰여진
우등상(distinction all subject honors)을 탔었고
장래가 총망되었던 아들, .


미국의 의과대학을
분명히 들어 갈 것이라며 모두가 바라보았던 아들.

자신의 지도교수(노벨상 화학상 후보) 밑에서
연구원으로 2년간 공부를 하고 나서
의과대학을 가려고 했던 아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조용히 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3 ,의과 대학을 가지않고 세탁소 일을 했던 작은 아들
~~~~~~~~~~~~~~~~~~~~~~~~~~~~~~~~~~~~~~~~~~~


아들에게 지금 쉼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세상의 일을 잘 알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경영학 석사로서 자신의 꿈을 버리고
먼지 펄펄나는 아버지의 일을 보면서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작은 아들에게 1년을 쉬며
세탁소 일을 할 것을 권했고
  세상을 좀 알고
 의과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미 코넬 대학교 생화학과 지도교수의
수석연구원이 되었던
아들을 1년간 세탁소일을 시켰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었지만
아빠가 고교졸업 하고 바로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를 갔다와서 대학을 갔었고..

 

삼촌이 군대가고,직장일 하다가...
 25세에 대학을 갔지만

서강대학교와 서울대학대학원을

우등(운정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타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가되어
한국의 유명한 포항공대

교수가 되어 현재도 재직하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모두들 결코 후회는 없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부모의 말을 깊이 듣더니
아무 말없이 이틀간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틀후
~~~~~~~~~~~~~~~~~~~~~~~~~~~~~~~

 

아들은 맑은 미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나의 친구들과 그 시절 내 주위사람들은 
우리 부부의 결정을 놀라워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졸업해서 금방 들어가도
의과대학 들어가기 힘드는데,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데...
 어찌 세탁소일을 시키느냐고..?
염려 가득한 눈길로 우리 부부를 보았습니다

우등상을 타고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세탁소일을 시키다니... 하며
모두 자기 일처럼 진정으로
걱정과 우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걱정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아들을 너무나 잘 아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결정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머니인 제가 제안했었던 것입니다

나의 마음안에는
사람이란 힘든 노동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한번이라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늘 공부만 한 아들에게
1년간이지만 많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어머니로서

아들을 마음껏 푹쉬게 하고 싶었습니다

맛있는것 만들어서 실컨 먹이며

진실로 휴식시간을 가지고 나서

의과대학을 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면

이런 시간을 가지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이 엄마의 사랑을 받아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웠던 시절의 추억입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감동으로 기쁘게 했던 것은
의과대학 4학년때 동양인으로서
코낼대학교 뉴저지 입시 심사관으로
작은 아들이 선출되었던 일입니다.

 

* 입시 심사관으로 추천 되었던 것은

아들의 지도교수 였던 생화학과 교수님이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은아들과 통화하며
~~~~~~~~~~~~~~~~~~~~~~~~~~~
 
 다행히 1년을 쉬면서
터키, 체코,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등등
유럽의 여러나라들을
여행했으며,

 

아버지를 도와서 세탁소 일을
벤믈 몰고 다니며 옷을 배달하였고,
옷 포대 자루를 어께에 메고 들어와서
바지를 다리며...
건강한 청년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일을 하며 틈틈이

다시 공부하여

이듬해 의과대학애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가슴으로 뿌둣함이 솟아오릅니다.
진정 나는 매정한 엄마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진실로 아들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난 가을 코너스톤을
아들과 함께 여행 했던 날
 
이제
2009년 7월1일 부터
심장내과 박사가 되어
샌프란시스코 *** 심장센터에서
첫발을 내 디디는 나의 작은 아들에게
행운과 영광이 가득하길,
주님께 기도하면서...

2009년 6월 30일.

 

저의 삶의 이야기가 미국 살아가는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로 좋은 일들을 나누며 지냈으면 합니다.

 



신디드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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