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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살자.
07/21/20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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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관계를 말할 때 몇 가지로 간략하게 말한다.

1> 너 살고 나 죽자. 아주 숭고한 인간관계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는 극한 상황, 위급한 상황에서 부모 특히 모성애의 발로에서 볼 수 있다.

2> 너 살고 나도 살자.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다. 이런 조직 문화는 타협과 이해에 따라 조직이 크게 발전한다.

3> 너 죽고 나는 살자. 일반적으로 이기심이 충만한 사회에서 보는 현상이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불신이 충만하여 그 사회는 쇠락한다.

4> 너 죽고 나 죽자. 이런 인간관계라면 말 그대로 양자 파멸이다. 사람이 서로 자신을 포기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상 4가지 유형의 인간관계는 일시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또는 국가에서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없다. 1, 2, 3유형에서 인류가 아니고 국민을 생각할 때 즉 국민성을 생각할 때 나는 너무 서글프다. 내가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임을 심지어 증오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선진국 대부분이 2유형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한국인이 ‘너 살고 나 살자.’에 속하는가? 천만에, ‘너 죽고 나 살자’에 속한다고 믿으니까,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증오한다.

요즘 한국 정치나 사회상이 불신으로 국가 전망이 점차 기울어 쇠락하고 있음을 나는 예감한다.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다.

바로 며칠 전에 내가 참외를 좋아해서 아들이 참외 한 상자를 사 왔다. 상자에는 ‘꿀참외’라고 했다. 그러나 그저 오이 맛이다. 아들의 성의가 너무 무색하여 공급회사인 *** Trading에 전화했다. 그 참외 상자는 자기 회사 상자이지만 다른 참외 생산자가 그 상자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말하나 이는 거짓 해명이라고 믿고 그 참외 생산자를 타이르듯이 내 속내를 전했다. ‘꿀참외’로 속여가며 소비자의 허탈감을 무시한 처사는 분명 ‘너 죽고 나 살자.’의 표본이다.

이뿐만 아니다. 다수 한국인과 상대하여 받은 상처는 많다. 고국 방문에서 지역 사정을 몰라 물어보면 대답하기 귀찮으니 저리 꺼지라는 식으로 턱을 채올리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궁여지책으로 학생들한테 물어보니 그 후로는 그런 고통이 해결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나는 많은 백인의 친절을 받았기에 한국서의 박탈감이 그래서 너무 컸다. 우리 조상은 ‘의식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한 그 뜻을 이해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피압박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래서 바로 ‘엽전 근성’이란 말이 나온 모양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한국인이 많거나 우글대는 집회나 도시에 가면, 역시 ‘너 죽고 나 살자.’는 것인지. 내가 부정적으로 사물을 보는 못된 버릇이 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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