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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노파
12/21/20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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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노파

조사무


   며칠 전 좀 늦게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가 녹슨 손수레를 끌며 끙끙대는 노파를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이따금 옹아리라도 하듯 입속말을 우물대는 억양으로 보아 러시아 태생 할머니가 아닐까 싶었다삼사백여 야드쯤 떨어진 집까지 짐을 옮겨주느라 오랜만에 땀깨나 흘렸다생각보다 무겁기도 했지만 그보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다길을 비켜 달라 해도 ‘!’ 어느 집이냐 물어도 ‘!’ 전등불을 밝혀 달라 해도 ‘!’ 소리만 되뇌었다가까스로 거실까지 짐을 옮겨주고 떠나려는데 그제야 비로소 또렷이 땡큐!’ 하며 세파에 얽인 주름투성이 손을 흔들어주던 그녀가 눈에 선하다.


   아기가 하루하루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은 대견하고 신통하다아가가 옹알거리는 모습은 진기하고 신기하다젖먹이가 요람에 누어 혼자서 놀소리를 할 즈음이면 용하다 못해 신통방통하기 그지없다옹알이나 놀소리는 설익은 말이다무언가 속생각을 나름대로 표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옹알이와 놀소리를 통해 말은 서서히 영글어간다이때쯤이면 어른들은 한시름을 놓기 마련이다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첫 난관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믿음이 서기 때문이다.


   아이 넷을 낳아 길었지만 손수 땀흘려가며 돌보아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아이들 성장과정을 제대로 실감해보지 못했다하지만 은퇴 후 늦깎이로 젖먹이 손녀를 보살피면서 아이의 놀라운 변신을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다묽디묽은 젖을 빨고서도 제법 형체를 갖춘 똥을 싸는 아기는 귀엽고 기특했다기저귀를 갈아주느라 옷가지를  들추면 물큰한 똥냄새가 훈훈하고 구수하게 느껴지곤 했다.


   오늘 동네 교회에서 열린 어린이 성탄절공연에 다녀왔다저보다 덩치가 우람한 백인 소년소녀들 틈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즐겁게 춤추는 손녀가 꽤나 깜찍했다비록 단막극이지만 거침없이 연극대사를 오롯이 종알대는 손녀를 스마트폰에 담으면서 절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옹알이 놀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짧지도 않은 대사를 달달 외다니 참 장하다 싶었다.


   섭취한 음식을 소화시키고 찌꺼기를 제때 배설하지 못하면 변비에 걸린다변비는 만병의 근원이라지 않는가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해대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다마찬가지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입력한 지식이나 정보도 때맞춰 출력해주어야 마땅하다

말수가 지나쳐도 문제지만 너무 과묵해도 좋을 리 만무하다하고픈 말을 적시에 출력하지 못해 과부하에 걸리면 육체는 물론 정신마저 병들고 만다.


   글은 말의 범주에 속한다그래서 말과 글을 아울러 언어라고 하지 않는가세상사에 쫓겨 정신없는 사람들보다는 한가로운 사람들이 글쓰기에 더 좋다하지만 요즘은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글을 쓰기보다는 가상공간을 들락거리며 영양가도 시원찮은 잡다한 지식을 포식하는 경우가 참 많다. 솔직한 내 고백이기도 하다그렇고 그런 정크 푸드를 과식하고 언어를 통해 적절히 배설하지 못하면 심신이 아울러 건강할 까닭이 없다.


   요즘 손녀는 틈만 나면 동영상만화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 은근히 걱정된다. 하지만 조잘대기도 잘해 그나마 다행이다만화삼매경에 빠졌다가도 걸핏하면 할아비 영어발음이 틀렸다며 잔소리를 해댄다. 고게 밉고 귀찮기는커녕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 반가울 따름이다.  

오늘은 온종일 겨울비가 잔사설을 늘어놓는다문득 며칠 전 산책길에 만났던 노파가 궁금해진다자식들은 일터로 나가고 손주들마저 등교를 했을 것이다지금쯤 노파는 혼자 댕그라니 집을 지키며 입을 봉한 채 빗소리를 들으며 지겹도록 시간이나 죽이고 있지 않을까혹 가까운 이웃에 고향친구라도 있어 답답하고 외로울 때면 서로 오가며 허물없이 수다라도 떨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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