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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대 속에
04/26/201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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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後斷想]

행복은 그대 속에

조사무


   버몬트 길로 접어들려는데 작달막하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바로 옆 사무실에서 댄스교습소를 운영하던 딸을 도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주던 수다쟁이 로저스가 틀림없었다. 하도 반가워 얼른 자동차문을 내리고 하이, 로저스!”하고 불러보았다. 목소리가 도시소음에 묻혀버렸나, 그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건널목을 휑하니 건너갔다. 등이 예전보다 좀 더 구부정해 보였지만 건덩건덩 춤추듯 걷는 몸짓은 여전했다.


   벌써 십 수 년이 흘렀다. 아침 일찍 사무실문을 열려고 하면 느닷없이 나타나 좋은 아침!”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곤 하던 그였다. 당시 고희를 앞둔 인디오계 멕시코출신으로 열세 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그는 대물림한 듯싶은 구닥다리 점퍼에 콧부리가 낡아 가죽이 보풀어 오른 구두를 신고 다녔다. 멕시코인 특유의 낙천성에다 인디오의 순천명하는 품성까지 타고나 언제 보아도 행복에 겨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한 번 풀어놓은 이야깃주머니는 먼지까지 탈탈 털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못 말리는 수다였다. 그럼에도 도저히 미워 할 수 없었던 건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늘 한 자락 없이 행복해하는 그의 표정 때문이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사람에 따라 이루고저 하는 행복의 내용이나 크기가 서로 다르다. 그것이 권력이나 명예 또는 부귀일 수도 있다. 또는 평화나 자유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성한 식욕과 성욕을 제일가는 행복조건으로 꼽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행복의 실체가 무엇이든 손아귀에 넣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 다섯 손가락을 오므려 움키려들면 잽싸게 빠져나가다가도 손바닥을 활짝 펴고 가만있으면 오히려 손가락 사이를 제멋대로 들락거리며 노니는 송사리 같은 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마르쿠제가 <행복은 그대 속에>라는 일종의 행복론을 남겼지만 그 자신은 별로 행복한 일생을 보낸 것 같지 않다. 그가 나치정부의 사상탄압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등지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전전하다가 결국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그러니 밤새워가며 그의 저서를 읽고 또 읽어본들 무슨 효험이 있으랴. 행복은커녕 발음하기도 까다로운 현학자들 이름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공리공담만 그득해 골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듯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는다어설프게나마 감이 잡히는 행복의 요체는 검소하고 조촐한 삶이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말로야 쉬어보이지만 선인(仙人)이나 선승(禪僧)이라면 모를까, 우리 같은 속인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인가.


   행복은 길을 걷다가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흔히 눈에 띄는 페니 동전도 아니다. 풀밭이나 가시밭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허탕만 치는 보물찾기, 그래서 행복은 신기루 같다고 하나보다. 설령 운 좋게 행복 한 닢을 손에 쥐었다 해도 또 다른 욕심이 고개를 곧추 세우고 행복은 아직도......’ 라며 충동질해댄다. 그 부추김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평생 고난의 행군대열에서 한 발짝도 빼낼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닐까.

 

굿판이라도 벌리듯 라틴음악을 시끌벅적하게 틀어놓고 댄스를 지도하는 큰딸을 자랑할 때면 로저스의 입술에 침이 마르기는커녕 오히려 게거품이 부걱거렸다. 바쁜 날에는 수다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별수 없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수다공세로부터 탈출을 시도할라치면 오늘도 행복!” 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당신도!” 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면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Siempre estoy feliz.(난 늘 행복해.)”


   행복에는 관성질량(慣性質量)이니 중력질량(重力質量)이니 하는 질량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행복은 덩어리도 부스러기도 아니다. 행복이란 사람의 마음을 숙주 삼아 그 갈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길이도, 부피도, 무게도 없는 행복 바이러스, 이를 계량할 수 있는 도량형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사 코언(Cohen)이 공동으로 제시한 행복공식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인간의 행복지수를 제대로 측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난 늘 행복해.”

얼마나 쿨한가. 골치 아프게 행복론을 뒤적일 필요가 어디 있으랴. 마르쿠제나 달라이 라마, 카네기나 세네카의 행복론도 다 부질없는 공염불이나 다름없다백세인생도 꿈같은데 만세삼창을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비타민 챙겨먹듯, ‘난 늘 행복해를 말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다보면 분명 행복은 그대 속에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Siempre estoy fe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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