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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04/03/20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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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단상]

수레바퀴 아래서

조사무


   질곡(桎梏)이란 속박으로 말미암아 자유가 박탈된, 또는 제한된 상태를 뜻한다. 원래는 옛날 형구로 쓰이던 차꼬나 수갑을 의미하는 낱말이지만 몹시 부자유스러운 고통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질곡의 역사 질곡의 세월이란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똑똑하고 착하고 성실한 소년 한스가 절망이라는 질곡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자살에 이르는 역경을 그려낸 이야기다.


   소설을 읽고 나서 키르케고르가 1849년에 펴낸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이 생각났다. 키르케고르에 비해 그리 오래지 않은 후대인 헤르만 헤세가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추측에서였다.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지목한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전거는 바로 기독교 복음으로 언약한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있는 한 그 어떤 지상적, 현세적인 온갖 고난은 물론 죽음조차도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어린 한스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사회적, 종교적 중압감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그에게 냉혹한 현실은 감당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준엄하고 냉엄한 현실의 벽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결국 심연을 가늠할 수 없는 늪에 가녀린 몸을 던져 익사하고 말았다. 절망의 늪에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터줄 물꼬조차 없었다. 그는 복음의 언약 역시 자연스러움, 즉 자유를 통제하고 제한하고 훼방하는 한갓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성숙한 지성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 단독자로 서서 미래 또는 천상을 바라보지만, 미숙한 소년 한스는 절망의 벽에 지친 몸을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과거로 회귀하며 하염없이 상념에 젖는다. 그때는 모든 것이 지금과 달랐어. 훨씬 아름답고, 즐겁고, 생동감이 넘쳤거든. 어디 그뿐인가. 

그 시절에는 읽고 또 읽어도 재미가 샘솟는 동화책도 있었고, 모험으로 가득한 책도 있었어. 정원에는 손수 만들어 설치한 물레방아가 사시사철 돌고 있었지. 그리고 저녁녘이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냥 즐거웠었지.


   한스가 그리워 못내 잊지 못하는 옛일들이 많았다. 풀 베고 말기기, 토끼풀 뜯기, 낚시질하기, 가재 잡이, 호프(hops) 거두기, 나뭇가지를 흔들어 과일 따기, 모닥불을 지펴 감자 굽기, 그리고 추수한 곡식을 타작하기 등등 하나같이 신나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고향에서 하루하루가 행복에 겨웠다.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사유로 신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밟은 고향은 이미 옛 고향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무들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리고, 새롭게 현실에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고향은 절망의 땅이었다.


   요즘도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소설 주인공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중압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허구한 날 혼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혼술을 홀짝이며 외로움을 달래는, 왕따를 당해 외곽을 겉도는, 출구를 못 찾아 갈팡질팡하는, 상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은 방어벽 앞에 주저앉아 한숨짓는, 그렇고 그런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저들에게 복음이 언약한 영원한 생명을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느끼지는 않을까.


   헤세는 그의 다른 소설 싯다르타에서 '인생은 원을 따라가는 행보가 아니라 위를 향해 등정하는 과정이다. 그 오르막길은 나선형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고 했다. 이는 과거사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며 살아야한다는 키르케고르 생각과 흡사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좌절을 맛보기가 십상이다. 언제 어디서 수레바퀴에 깔려 으스러질지도 모르고 어딘가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달팽이는 오늘도

   찰나로 허기를 달래며

   꽃그늘을 향해 고행한다

   길은 아득하다


   칼 찬 마젤란

   수평水平을 항진航進했다

   봇짐 진 달팽이는

   지평地平을 가로지른다

   (졸시: ‘마젤란과 달팽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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