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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가 곧 미덕일까
03/13/201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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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가 곧 미덕일까

조사무


   목전에서 발생한 교통참사에 그만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정면으로 충돌한 차량에서 수증기인가 연기인가가 꾸물꾸물 새어나오고 빈 깡통처럼 오그라든 운전석에 에어백을 안은 운전자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참 복잡한 출근시간대라 로칼 차도를 막은 채 손써줄 상황이 아니어서 별수 없이 앞차 뒤를 따라 현장을 벗어났다.

송구스럽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었다.


   문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신호등 앞에 자동차들이 길게 정차하고 있었다. 바로 옆 골목길에서 차량 한 대가 중립지대로 진입하기 위해 시그널을 깜빡이고 있었다딴에는 친절을 베푼답시고 앞 공간을 비워주고 어서 들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운전자가 고맙다는 손짓을 하며 중립지로 들어서는 순간 내 뒤를 바짝 따르던 자동차 한 대가 급히 차선을 바꾸며 같은 공간으로 꺾어들다가 둘이 정면으로 부딪친 사고였다.


   사람들은 흔히 양보가 곧 미덕이라고 한다. 미덕은 난초향기 같다 해서 난방(蘭芳)이라고도 한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이나 사양지심(辭讓之心)이란 말도 있고, 아름다운 양보라는 말도 심심찮게 쓰인다.

인간사가 대충 그렇듯이 양보에도 양면성이 있다. 아름답기는커녕 추한 양보도 있다. 이를 야합이라고 한다

선의의 양보가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양보도 있다. 책임과 부담을 남한테 전가하려는 회피성 양보도 있다.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양하고 일생을 후회하는 사람을 아무도 아름답다고 칭찬하지 않는다오히려 우매하다고 손가락질하며 흉을 본다.


   고대 희랍 우화작가 이솝(Aesop)은 모든 걸 양보하고 나면 곧 양보할 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Yield

to all and you will soon have nothing to yield)고 말했다.

양보거리가 텅 빈 사람은 바람 빠진 풍선이요, 잘해야 팥소 없는 찐빵 취급을 받는다

혹자는 혹 너무 인색하고 매몰찬 소리라고 탓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현명하다거나,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며 기리기도 마뜩찮다.


   대선정국에 접어든 조국을 멀리서 바라본다. 정당에 속한 주자들이 당내경선을 거쳐 다당체제로 대선이 치러질 것 같다. 개개인 모두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다들 집권의지를 불태우겠지만 국민들의 날 선 시선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혹여 특정 이념에 편향된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사사건건 훈수나 두며 늙은이 티를 내는 자칭 원로들의 간섭과 강압에 못 이겨 국민의 선택권이 제한당하고 박탈당하는 야합만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경선을 통해 선출된 주자들이 양보나 야합이 아니라 공정한 선거를 치루고, 결과에 승복하고, 모두가 사심 없이 국익을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는 그런 나라로 거듭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보와 타협은 다르다. 우선권을 포기하고 남에게 선택권을 넘기거나, 자기주장을 굽히고 타인의 의견을 쫓거나, 남을 위해 자익권(自益權)을 내려놓는 것이 양보이다타협이란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어떤 일을 놓고 서로 협의하는 것이다. 타협과 달라 야합에는 지향하는바 공동선이 없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집권의지가 없든가 아예 포기하는 정당은 존립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야합하기 위해 양보라는 미명하에 도중하차하는 후보나 그들을 억지로 끌어내리려는 의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내 섣부른 양보로 인해 벌어진 참극이 있은 후, 나는 철면피 운전자가 되었다되도록이면 교통법규는 준수하되 위험성이 도사리는 곳에서는 얄미울 정도로 양보를 않는다. 그래서 동승자한테서 뻔뻔하고 야박스럽다는 지적을 받곤 하지만 눈도 깜짝 않고 시종 마이동풍으로 일관한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혼잡한 천사의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를 떠난다. 굳이 떠나야할 이유야 많고 많지만 개중에는 교통사정도 빼놓을 수 없는 핑계 중 하나다.


   헛나이일망정 제법 낫살깨나 붙고 보니 번잡한 도시에서 운전해야 하는 현실이 짐스럽다. 특히 시시때때로 헛생각에 가까운 잡념과 사념에 빠지는 버릇이 심해진 나이가 아닌가.

운전 중에 밝지도 못한 눈으로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어설프게 양보하기도 찜찜하고 번거롭다. 미덕인가 난방인가는 몰라도 어설픈 양보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싫다.

이웃 리처드가 말하듯 노인 운전자의 천국이라는 그곳으로 어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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