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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는 없다
12/18/20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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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는 없다

조사무


   아침산책길에 패스트푸드 식당에 들렸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창가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노부부 앞좌석에는 삼십 대의 젊은 남녀가 마주앉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각자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할아버지가 황소두꺼비 같은 손으로 어린애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갈무리해 할머니 입에 넣어주곤 했다. 음식을 먹여주는 할아버지도 흡족해보이고, 음식을 받아먹는 할머니 표정도 무척 행복해보였다.

엉뚱스레 세간에 떠도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고집스레 손가락으로 음식을 움켜 먹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에 좋다며 일부러 나무수저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상천지 어디에도 흙수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허구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흙수저 타령은 자기비하에 가깝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하릴없이 팔베개나 하고 아랫목에 드러누워 부모나 조상을 탓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원망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분수를 알고 이를 지키는 것은 결코 수치도 비겁도 아니다.


   수저란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우르는 낱말이다. 수저는 음식을 섭취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금수저를 사용한다고 건강에 이로울 리 없고, 일회용 플라스틱제품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몸에 해로운 까닭도 없다

만약 청자백자를 굽듯 황토로 곱게 빚은 수저를 상품화할 수만 있다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금방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물도 그렇다. 신분고하와 빈부차이에 관계없이 영양가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애써 피하려는 세태가 아닌가. 과식보다는 소식이, 기름진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이 각광받는 세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 내용보다는 형식을, 알맹이보다는 껍질을, 질보다 양을, 인품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만연하기 시작했다사람을 사귀어도 먼저 겉모습이나 옷차림으로 호불호를 결정한다. 하찮은 상품도 그럴듯한 포장기술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어딘가 좀 톡톡 튀고 이색적인 책표지가 독자의 시선을 끈다. 좀 낯간지럽고 자극적인 글 제목에 관심이 쏠린다.


   어려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며칠 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마치 연목구어(緣木求魚)하는 것처럼 어려워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선뜻 동의하기는 싫지만 옳은 지적이란 생각이 든다.

옛적에는 개천에서도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개울물이 옥수(玉水)처럼 맑아서였을 것이다. 요즘은 개천마다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질펀하다. 물이 탁하다 못해 악취까지 풍긴다. 그러니 어찌 무지개가 떠오르기를 바랄 수 있으랴. 용은커녕 미꾸라지 한 마리도 노닐 수 없는 오수(汚水)니 말이다.

스스로를 흙수저라며 이웃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욕바가지를 퍼붓다보면 집 앞 도랑으로 욕지기가 흘러들어 부글거리기 마련이다.


   노부부가 일어섰다. 할아버지가 얼른 할머니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부축하더니 볼에다 입맞춤을 했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할아버지 팔에 의지해 출구로 향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겨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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