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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代作)과 대필(代筆)
05/21/201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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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代作)과 대필(代筆)

조사무


   요즘 종씨(宗氏) 조아무개가 구설수에 휘말려 홍역을 치루고 있다. 화투장인가 화투짝인가 가끔 마누라가 심심풀이로 재수떼기를 하는 재수 없게 생긴 딱지그림으로 유명세를 타더니 결국 옛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진리를 교훈으로 일깨워주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다. 당연히 화투로 재미를 보았으면 화투로 망하든가 화투때문에 망신을 당해야 마땅하련만 그의 절륜한 연애술과 탁월한 가창력을 감안하면 잠시잠깐 곤욕을 치르다가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무협지 수호지에 나오는 성수서생 소양(蕭樣)은 남의 서체(書體)를 감쪽같이 모방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지만 나도 남의 글씨체나 사인을 제법 그럴듯하게 흉내 낼 줄 안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퇴짜 맞은 보고서를 수정해 다시 결재받기가 번거롭고 귀찮아 대충 마무리한 후 상사의 사인을 조작해 상부에 보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천우신조가 있어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아 영창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라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할 적에는 동료들의 간청을 마다치 못해 삥땅을 도와주기 위해 월급봉투와 지급명세서를 조작해주기도 했다. 가끔은 고맙다며 소주 한 잔 사겠다는 동료도 있었지만 나는 벼룩이 간을 뽑아먹지라는 생각이 들어 거절하곤 했다말하자면 무료로 대필봉사(代筆奉仕)를 해준 셈이었다.

당시만 해도 총무부나 인사부 직원들이 급여총액과 공제액을 일일이 육필로 적은 별지를 현금과 함께 월급봉투에 넣어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월급봉투를 손도 대지 않고 아내에게 고스란히 바치는 순정파였다.


   욕심이 과욕을 낳고 과욕이 불행을 낳고 불행은 다시 재난을 낳는다. 조아무개가 화투장 그림을 대작(代作)시킨 혐의로 사법당국이 수사에 들어갔다. 공임인가 개평인가 하는 수고비라도 넉넉히 주었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대작은 미술계의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이 다시 화근이 되어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평소 각종 연예프로에 나오면서 특유의 화법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더니 결국 화술로 인해 설화(舌禍)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말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북조선에는 창작공장(創作工場)이란 곳이 있다. 일종의 사상공장(思想工場)이다. 작가들을 동원해 주체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고양시켜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작품들을 제작해낸다.

한국에도 수제자들이나 작가지망생들을 고용해 대필을 시키는 몇몇 유명작가들이 있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그렇지만 아무래도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이나 뜬소문에 지나지 않으리라 믿고싶다설령 그게 일부 사실일지라도 제자들을 위한 일련의 수련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대가로 금전이 오갔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기껏해야 제자의 글을 손봐주든가, 심사위원과 연계하여 문인으로 등단시켜주는 관행 정도겠지 싶다.


   봉급봉투나 명세서가 활자로 인쇄되면서 자원봉사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동료들 호주머니도 점차 가벼워졌다자연히 술 한 잔 사겠다는 친구도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몇몇 동료는 봉급 때만 되면 어디선가 민봉투를 구해다 내밀면서 끈질기게 대필을 부탁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온라인통장제도가 생기고서부터는 급여총액이 몽땅 마누라들 수중으로 직행해버렸다.


   마치 지갑을 통째 도둑맞은 듯 허탈해하는 동료들을 위로하느라 외상술값이 자꾸만 늘어만 갔다.

그 빚을 갚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가. 결국 손재주를 부리다가 손금이 닳도록 아내에게 빌고서야 일 년여에 걸쳐 청산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찌감치 자수하여 개과천선한 덕분에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세상을 살아가도 아쉬울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칠 것이 없어졌다. 항상 마누라를 수행비서처럼 대동하고 다니다보니 특별히 지갑의 두께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어졌으니 말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말할 때 곧잘 이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태어날 때 빈손이듯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빈손이라는 이 절묘한 표현이야말로 무소유사상의 핵심이요 행복의 요체가 아닐까.

까짓 손에 쥔 화투패가 삼팔광땡이면 어떻고 삼팔따라지면 어떠랴.

어차피 화투판을 떠날 때에는 빈손 탁탁 털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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