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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생일 대충 때우기
05/18/20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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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생일 대충 때우기

조사무


   세상에는 많고 많은 기념일이 있다국가나 민족별로 지키는 기념일도 있고지방정부나 문중(門中또는 각종 단체 등 소규모사회에서 특별히 의미를 두는 기념일도 적지 않다게다가 가정이나 개인 등이 소중하게 여기는 기념일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들처럼 이역하늘을 이고 다민족과 어우러져 살다보면 그 숫자가 갑절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한 지 48졸업도 채 못한 학생을 막무가내로 다그쳐가며 결혼식을 치룬 지 올해가 44년째다.

엊그제 5월 15일은 그녀의 예순일곱 번째 생일이었다평소 생일 정도는 과감히(?) 평가절하하며 살아왔는데 한 차례 크게 병치레를 격고 나니 그동안의 무심이 좀 미안해졌다두 달 전에 파나마를 함께 다녀왔기에 생각 끝에 이번에는 아내의 생일과 어머니날을 기념하기 위해 비교적 가까운 옐로스톤을 찾았다.


   그녀의 생일 아침이었다호텔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마누라를 뒤에서 보듬어 안고 귓불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줘 정말 고마워.”

립서비스에 아내의 기분이 좋아보였다혼자서 기념품가게를 찾았다마누라가 준 용돈에서 아직 20불이 남아있었다

깜찍하게 생긴 백곰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인 목걸이를 하나를 샀더니 8불 거스름이 남았다

가격표를 떼어내고 포장을 부탁했다.


   오래간만에 손도 잡고 가끔 팔짱까지 끼며 관광길에 나섰다내게 실려 오는 그녀의 체중이 제법 묵직했다함께한 세월의 무게려니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호텔 인근 식당에서 들려 저녁식사를 주문한 후 선물보따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선물이 시원찮아 미안해.”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포장을 풀어보더니 아내가 말했다.

참 예쁜데.”

그거 싸구려야하지만 진짜 선물은 따로 있지.”

그게 뭔데.”

짧은 글 하나 준비했어들어봐.”

관광길에 온종일 틈틈이 핸드폰에 메모한 시를 읽어주었다.


   언젠간

   큰일 한 방 터뜨리겠다고

   입김 뿜어내는

   옐로스톤

   숨을 고른다


   록키산맥 깊은 사타구니로

   양수羊水가 비치고

   덩달아

   나도

   숨이 가쁘다


   망연히 서있는 마누라

   예순일곱 갈래 눈 주름살이

   꼭 산주름 같아

   공연히

   핏줄이 에리다

   (2016. 5. 15)


   대부분의 기념일은 개인사정에 따라 지켜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다메모리얼데이에 바비큐파티를 열고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누구도 책잡지 않는다노동절 날에 가게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고 공무원들아 나서 단속하지 않는다만우절에 진실을 말한다고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것은 오히려 너무나도 사적인 기념일이다특히 연인사이든 부부사이든 남녀관계에서 더욱 예민하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사적인 기념일의 특성이다.


   아무래도 그런 사적 기념일에 민감하기는 여성들이 더 심한 것 같다남자들이 무덤덤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기념일에 여성들이 과민한 경우가 흔하다생일은 물론 결혼기념일이나 밸런타인데이를 모른 척 지내다보면 직간접적인 맹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그렇다고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속이 좁다든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어쩌면 남녀를 구분 짓는 성염색체 고유기능이 작용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싶다.

아무리 현대가 유니섹스시대라고 하지만 남녀 간에 엄존하는 이질성과 불변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원만한 남녀관계의 열쇠가 아닐까그것이 다이아몬드든 황금이든 구리든 하다못해 플라스틱으로 주조한 열쇠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마누라 손길이 제법 가볍다잘만 하면 귀갓길 자동차 속에서 아내의 흘러간 옛 노래 몇 곡쯤은 능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화음이 산산이 깨진들 좀 어떻고가리가리 찢긴들 대수이랴염치불구하고 나도 과감하게 흥얼흥얼 콧노래로 따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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