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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추 술친구들
09/07/201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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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추 술친구들

조사무


   학창시절, 특이한 술친구가 둘 있었다. 스님들이었다. 무교동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교우(交友)가 시작되었다. 속성이 각기 이었는데 첫 대면인사로 홍 스님, 석 스님하고 불렀더니 제발 그놈의 코뚜레 같은 호칭은 집어치우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며 홍 땡추, 석 땡추라고 불러달라기에 까짓 부탁쯤이야 하고 선선히 그러자했다. 저들은 매번 땡전 한 닢 내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퍼붓듯 공술을 마셔댔다.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원입대하기까지 우리들은 동숭동에서 시작하여 무교동, 명동, 때로는 정릉골짜기나 뚝섬까지 술집원정을 나서곤 했다. 당시에는 값이 헐하고 푸짐하기로는 토끼고기만 한 안주가 달리 없었다. 술상에 누워 뜨거운 김을 모락대는 벌거숭이 토끼 뒷다리는 항상 저들 차지였다. 허기귀신에게라도 홀린 듯 토끼다리를 게걸스레 씹어 삼키곤 장삼소매로 입과 턱을 문질러대던 저들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암암(暗暗)하다.


   어느 해 말복 무렵, 벽제에 있는 소문난 보신탕집에 동행했다가 손님들로부터 수모를 당했다. 술이야 진묵대사(震默大師) 말마따나 곡차라 쳐도 스님주제에 개고기라니, 변명이 옹색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손님들 다 들으라는 듯 복날 복달임으로 견피(犬皮) 두세 근만 더 보시하면 너희들 복 받을 게야.”라며 너스레까지 떨어댔다돌아오는 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술집에나 드나들면서 언제 도를 닦아?” 하고 물었더니 이미 돈오(頓悟)의 경지조차 초탈해 더 이상 닦아낼 설진(屑塵)이 남아있지 않다네.” 라며 큰소리쳤다.


   술을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자고이래로 술을 온갖 이로운 약 중 으뜸이라는 뜻으로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기도 한다. 약주이든 백약지장이든 만약 술이라는 촉매가 없었다면 역사상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은 고사하고 문화의 꽃마저 제대로 피어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사람들은 인류 최초의 위대한 발견으로 서슴없이 불()을 꼽는다. 그럼 가장 위대한 발명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름지기 불과 술, 즉 화주(火酒)야말로 쌍벽을 이루는 인류문명의 동인이요 동력이 아닐까싶어서다.


   술친구처럼 허심탄회한 인간관계는 세상에 흔치 않다. 그런데 요즘은 술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대중교통수단이 열악한 미국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마음 놓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당할지도 모르는 시간적,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 불이익을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모골이 송연하다. 궁여지책으로 엄처들을 대리운전사 겸 감독관으로 모시고 술자리를 벌리다보니 취흥이 옛 같지 못하다.


   어디선가 읽었다. 술은 건강을 해치고, 인격을 파탄시키고, 가정의 화평을 깨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4대 악의 원흉이라나. 무슨 테러범이라도 되듯 술에다 악의 축이라는 낙인까지 찍다니 지나친 독설이 아닌가. 인류평화와 행복에 위해하기로 따진다면 술보다야 불이 천 배 만 배 더 흉악스럽다. 그 옛날 안줏감 토끼 대가리를 닮은 겨울나라, 그 나라 애송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 수 있는 건 다 핵무기라고 하는 불의 힘을 믿어서가 아닌가.


   술의 역사는 깊고 오래다. 민족마다 각기 고유한 주조비법이 있어 나름대로 술을 빚어 음주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여건과 풍습에 따라 나무뿌리나 열매 또는 가축의 젖을 발효시켜 술을 빚기도 하고 곡식에서 주정을 얻기도 한다.

술의 공과를 따진다면 당연히 과보다는 공이 많다. 낫으로 사람을 해치면 흉기가 되지만 벌초를 하면 이기가 맞다. 조폭들이 경쟁조직원의 인대를 절단한다고 전국의 회칼을 회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사랑도 지나치면 질투가 되고, 질투가 심하면 증오가 되고, 증오가 여차하면 치정살인을 부른다. 음주문화 또한 그렇다. 음주가 아니라 과음이 문제다. 적당한 술은 약주일 뿐만 아니라 선약이나 미약도 될 수도 있다.


   땡추 술친구들이 아직 열반에 들지는 않았을 터, 요즘도 주선(酒仙)임을 자처하며 동가식서가숙하며 주유(酒遊)하고 있을 성싶어 섣불리 공개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현빈이나 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우아한 법명(法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날이 가까워서일까, 반세기도 전에 헤어진 땡추 술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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