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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도 뿔나면
11/20/2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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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도 뿔나면   

조사무


   계곡을 따라 말편자 모양으로 굽은 숲길에서 오늘을 연다매일 아침 찾아나서는 5마일 산책길이다제법 쌀쌀해진 초겨울 날씨 탓일까요즘은 백두산 초입에 목젖처럼 솟은 허항령(虛項嶺고갯마루에서 나그네와 조우하기가 쉽지 않듯 인적이 뜸하다그렇다보니 이십여 리 길을 줄곧 혼자 걷는 날이 오히려 많다그래서일까요즘은 평소에 비해 유난히 많은 사슴들이 시야에 잡힌다.


   오늘 아침에는 올 들어 첫 살얼음이 잡혔다쌍갈랫길 어름에서 사슴가족을 만났다길섶 언저리에서 성체 암수 한 쌍이 새끼들과 함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행여나 방해라도 될까싶어 백여 야드 상거에서 발길을 멈춘 채 우두커니 관망하고 있었다때마침 초로의 사내가 애완견을 앞세우고 부리나케 앞질러갔다마음 같아서는 잠시 기다렸다 가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괜한 간섭으로 비칠까 저어되어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예로부터 비례사물(非禮四勿)이라 해서 예()가 아니면 보지(), 듣지(), 말하지(), 행하지()도 말라 했다어디 그게 인간사회에서 뿐이랴. 자연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땅히 유념하고 지켜야할 범절(凡節)이 아니겠는가.


   수상쩍은 기척을 감지한 사슴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숲길을 가로질러 도망치기 시작했다앳된 사슴 한 녀석이 꿈지럭대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개와 정면으로 마주쳤다기가 오른 개가 으르렁 얼러대기 시작했다기절초풍한 어린 사슴이 오금이 저린 듯, 오도 가도 못하고 당혹해하는 기색이 안쓰러웠다그때였다. 모퉁이 숲가에서 새끼를 기다리던 수사슴이 앞발을 힘껏 구르더니 길길이 뛰며 개를 향해 돌진했다겁에 질린 개가 꼬리를 사리더니 주인 사내 꽁무니 뒤로 숨어버렸다어린 사슴을 달래 도닥이며 숲속으로 사라지는 수사슴 위풍이 꽤나 당당해보였다.


   하필이면 

   사슴들 숲에서

   풀 뜯는 이른 아침에

   굳이 개까지 끌고 나타나

   보란 듯이 활개 치며  

   산책하는 사람

   얄궂어라


   최근 인근 아칸사스 (어느 시골에서 사슴뿔에 받쳐 죽은 사내가 있었다사냥꾼으로 관록깨나 붙은 그는 전가의 보물처럼 아끼는 구식 전장총(前裝銃)으로 사슴을 조준해 총탄을 발사했다사슴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사냥꾼이 회심의 미소를 씹으며 쓰러진 사슴에게 접근했다한순간총상을 입고 성이 잔뜩 난 사슴이 전광석화처럼 벌떡 일어나 뿔을 곤두세우고 사력을 다해 포수에게 덤벼들었다졸지에 치명상을 입은 사냥꾼은 병원으로 후송되는 와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느 사냥꾼한테서 들었노라 전언하는 형식을 빌려 상처 입은 사슴이 길길이 뛴다네.(A wounded deer leaps the highest.)”라고 노래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를 연상시키는 뉴스였다.


   옛적에는 분뇨를 수거하는 아저씨들조차 예()를 알아 주민들이 아침상 받는 시간을 피해 “똥 퍼요!” 소리치며 호객하는 것이 관례였다더군다나 밥 먹는 개는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몽매간에서조차 지극정성 애완하는 개를 운동시키고픈 갸륵한 심정이야 십분 이해되고도 남지만 그렇다고 하필이면 사슴들 아침상을 뒤엎다니......, 

혹시나 비례(非禮)를 못 참아 잔뜩 뿔난 이웃 사슴들까지 떼거리로 가세하여 길길이 날뛰며 개 주인에게 분풀이나 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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