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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양념
04/12/20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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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양념

조사무

 

   철학과 문학이 부부는 아니지만 서로 통정(通情)은 한다그러나 서로가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는 호혜평등관계는 아니다그렇다고 대가(代價)가 오가는 거래관계도 아니다때론 애정(愛情)으로또는 춘정(春情)에 끌려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그렇지만 두 눈을 부라려가며 서로를 감시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비록 상호간 계약은 없어도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처럼 막역지교(莫逆之交) 견지하는 특수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지적활동 분야가 있다예컨대 철학문학신학미학윤리학과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지리학 등등이다그들 중 철학과 문학은 정인(情人)에 가깝다. 비록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고 합환주(合歡酒)를 나눠 마신 천생배필

(天生配匹)은 아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목말라하는 사이임에는 틀림없다. 동거는 않지만 가끔 서로 거처를 오가며 갈증을 풀기도 한다가끔은 어스름 녘 물레방앗간에 숨어들어 밀애(蜜愛)를 탐하기도 한다저들은 바람기가 막상막하하다

그래서 만남과 헤어짐이 무상(無常)할 수밖에 없다.

 

   치마폭 넓은 여자가 난 좋더라

   속 보이는 여자가 난 좋더라

   등 돌렸다 돌아서도 냉큼 품어주는

   배알이 아예 없는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옷고름 풀린 여자가 난 좋더라

   앞섶 열린 여자가 난 좋더라

   떠났다 돌아와도 좋아 미치겠다는

   오지랖이 아주 넓은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철학과 문학은 인문학을 대표하는 두 분야다철학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객관적 진리를문학은 미적 정서적 공감을 추구한다철학은 그 논지(論旨)의 진위 또는 논리성으로문학은 주제의 언어 표현력이나 감동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는 다시 말해 철학과 문학의 기능이 서로 상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철학과 과학이 서로 다른 지적활동 범주에 속하듯문학과 철학도 상이한 범주에 속하는 지적활동이다따라서 과학이 철학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듯이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할 까닭 또한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학작품에다 철학적 잣대를 들이대길 좋아한다자고이래로 문학비평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늘 있어왔다이는 철학과 문학이 비록 서로 독립된 지적활동 범주일지라도 양자의 관계를 섣불리 묵살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철학과 문학이 서구에서 별개의 학문으로 나뉘어 지금까지 이어왔지만 두 학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라는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과 문학이 목표하는 바는 하나다.”라고 모모 문학비평가가 말했다목표가 같다고 해서 철학과 문학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남녀가 서로 의존관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는 헤르마프로디테(Sleeping Hermaphrodite)’처럼 자웅동체(雌雄同體)가 될 수는 없듯이 말이다.

 

   앞서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했다그럼에도 철학적 사유가 꼭 필요한 문학 장르가 있다바로 수필이다. 수필을 놓고 마음 쏠리는 대로생각나는 대로붓 가는 대로자연 또는 일상사에서 보고 느낀 감상이나 체험을 기록한 신변잡기(身邊雜記)라고 정의하다니 지극히 경솔하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그래도 빤짝이는 사유(思惟)의 결정체(結晶體)가 행간(行間)마다 알알이 박혀있는 글이라야 비로소 수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수필은 여느 문학 장르와는 달리 허구(虛構)를 금기시한다때문에 허구라고 하는 화학조미료 대신 철학적 사유라고 하는 천연 양념으로 맛을 보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수필문학의 숙명이다. 

철학적 사유가 전무한 글은 아무리 문체가 번듯해도 조미료를 듬뿍 뿌려 비벼낸 비빔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글이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다. 차라리 맨밥에다 간장 한 숟가락을 고루 뿌려 얼추 비벼 먹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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