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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용 구구단
06/24/20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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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용 구구단

조 사 무


   해방직후, 공산당치하 황해도 깡촌 우리 마을 인민학교에서 일학년 학생들이 구구단을 공부하고 있었다붉은 완장을 팔에 두른 골수공산당 선생동무가 길쭉한 훈육막대기를 내게 겨누며 물었다.

칠칠은 뭐지?”

칠십칠입니다.”

터무니없는 대답에 기가 막힌다는 듯 잠시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팔팔은?”

팔십팔입니다.”

반동분자 곁가지는 역시 못 말려.”


   어린나이에 공산당원 선생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겠냐마는 은근히 장난기도 도지고 마음 한 구석에는 가급적 바보스럽게 구는 것이 신상에 좋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저지른 짓이었다

결국 공산당 핌박을 견디다 못해 우리는 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그해 늦가을, 야심을 타고 삼팔선을 넘었다.


   백일을 갓 넘긴 손녀가 찡얼찡얼 잠투정을 해댄다. 손녀를 품에 보듬어 어른다고 거실을 뱅뱅 돌며 웅얼웅얼 구구단을 외운다. 혹시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지 않을까싶어 십여 년 전부터 산책길에 주문 외우듯 하는 비공인 구구단이다

아직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검증된 적은 없지만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으리라 믿는 마음에서다.


   ‘일일은 십일부터 시작해 구구는 구십구까지 477 보를 걸었다. 쌔근거리는 손녀를 소파에 눕히려고 조심조심 허리를 굽히고 숨을 죽이는데 식탁에서 채소를 다듬던 아내가 휘둥그레 눈을 뜨고 속삭인다.

아니, 당신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워?”

혹시 내가 치매에나 걸리지 않았나싶어 걱정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산책길에 구구단을 열 번 읊고 나면 4,770 걸음이다. 구구단을 이십 번만 반복하면 만 보에서 귀가 약간 빠진다

되풀이가 영 지루하면 틈틈이 중간 중간에 적당히 추임새를 섞는다.

'이사는 지겨워, 삼팔은 따라지, 칠칠은 칠뜨기하다보면 어느새 절로 흥도 나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숫자놀음은 참 재미있다. 하지만 정통 구구단은 쌈박질에 이골이 난 꼴통 보수 같아 식상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치매예방 구구단은 셈이 참 후하다일삼은 삼하면 겨우 셋이지만 일삼은 십삼하면 열하고도 셋이 남으니 얼마나 후한가

칠칠은 사십구보다야 칠칠은 칠십칠이 훨씬 넉넉하다5불짜리 두 장을 넣고 산책을 나서면서 호주머니에 55불이 들어있다고 여길 수만 있다면 훨씬 느긋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기차에 비해 지하철 기관사는 참 딱하다. 일 년 내내 동일노선을 달려도 기차기관사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계풍광(四季風光)이라도 맛볼 수 있지만, 지하를 아무리 달려보았자 오죽 답답하고 따분할까. 웬만한 인내력이나 정신력으로는 석 달 열흘도 채 못버티고 궤도를 일탈하고픈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구구단도 마찬가지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세상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날 이때까지 단물 빠진 껌처럼 맛대가리 없는 숫자를 계속 씹어야한다니 어찌 지겹지 않겠는가.


   일탈에는 신선한 생동감이 있기 마련이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숲을 뚫고 계곡을 건너 바위를 타고 정상을 밟는 즐거움, 그건 바로 희열이다. 페어웨이를 일탈해 러프(rough)나 벙커(bunker)에 빠진 공을 그린에 올린 다음 버디나 파를 잡고 좀 눈꼴시게 우쭐거린다고 해서 꼴값한다고 욕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상식을 벗어난 구구단을 외운다고 누가 흉을 보랴더군다나 치매예방 효과만 확실하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설령 놀림을 받는다해도 결코 손해볼 것이 없다.


   주술 부리듯 '일일은 십일, 일이는 십이…….이사는 이십사, 이오는 이십오……, 오오는 오십오, 오륙은 오십육……, 칠육은 칠십육, 칠칠은 칠십칠……, 구팔은 구십팔, 구구는 구십구'까지 막힘없이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오일은 오십일, 오십일 년 전 바로 이맘때 처음 만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꼬셔본다.

"삼삼은 예쁜이 여보, 괜한 걱정 붙들어 매고 치매도 예방할 겸 심심풀이로 나랑 구구단 놀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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