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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그리고 여인
07/06/20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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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後斷想]

분노의 포도, 그리고 여인

조사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다보면 바로 이 사람이라고 콕 찍어 내세울만한 주인공이 없어 보인다독자의 생각과 안목에 따라서는 존 조드나 그의 아들 톰 조드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목사출신 짐 케이시와 톰 조드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평면적으로 나열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이 전개되는 각각의 장과 중간 장들의 연계가 정연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스토리가 너무 감상적으로 흐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이 <분노의 포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두 여인즉 어머니와 그녀의 딸이야말로 실질적인 주인공일지도 모른다아니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물론 작가는 남북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농민들이 생활터전을 빼앗기고 핍박받던 시대상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그렇지만 그보다는 여성의 위대한 힘과 사랑에 방점을 둔 것 같기도 하다스타인벡의 또 다른 명작 <에덴의 동쪽>에는 여인의 힘에 관한 괄목할만한 언급이 있다. ‘강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강하다특히 여인이 사랑을 품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인은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태산처럼 의연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온전한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된 1920년이었다노예의 신분에서 가까스로 해방된 흑인들조차 같은 해에 참정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아 그동안 여인들이 얼마나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왔는지 짐작이 간다당시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극히 제한된 수준에 그쳤다대부분이 전업주부로써 가사를 돌보든가농사일을 거들든가자녀들을 낳아 보살피며 키우는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시대배경이 되는 당대의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따라서 여인들의 힘 또는 영향력도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었다그렇지만 <분노의 포도>에서처럼 가족 구성원이 절명의 위기에 처하여 남자들조차 망연자실하고 속수무책인 격변의 와중에 존 조드의 아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조직의 리더 역할을 유감없이 감당했다.


   그러한 어머니의 힘그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한 나라의 국민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투철한 사명의식에서 우러난 진액(津液)으로 말미암은 것일까아니다그건 사랑이다

사랑 중에서도 모성애야말로 가장 오래고 풍성한 힘의 모천(母川)이 아닐까싶다하긴 그게 어디 사람뿐이랴짐승은 물론 미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모성애 또한 그에 못지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조드 가의 딸 로저샨이 있다제 몸조차도 주체하기 힘든 만삭의 몸으로 가족과 더불어 서부로 향하는 대장정에 올라 희망에 부풀었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이 말도 없이 훌쩍 곁을 떠난 후 절망한다그러면서도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끈끈한 가족애로 하루하루를 극복한다. 고난의 여정에서 기아와 과로에 시달리다가 아이를 사산한 후 절망의 늪에 빠진 그녀가 굶주림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낯선 남자그것도 아버지뻘도 넘는 노인에게 젖을 물린다.


   로저샨이 왼손을 남자의 머리 뒤로 돌려 머리를 받치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그녀가 눈길을 들어 건너편 벽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오므리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로저샨의 미소가 마하가섭의 염화미소나 모나리자의 애매하기 그지없는 미소보다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로저샨의 수유(授乳)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여성의 힘그 원천인 모천이 세월과 더불어 점차 메말라드는 것 같다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기피하고젊은 부부들이 육아를 포기한다반면에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다그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성애로 무장되지 않은 여성의 힘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별로 유리할 것도 없다하지만 모성애라는 모천에서 비롯한 여성의 힘은 어느 누구도 섣불리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기 마련이다.  

여성들이여, 어머니가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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