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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불짜리 지폐와 체로키 인디언
05/15/20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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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불짜리 지폐와 체로키 인디언

조사무


   굽잇길을 따라 체로키 인디언 마을을 찾아 나섰다. 두문동으로 드는 길도 이랬을까, 울울창창 심산유곡이었다

굽이굽이 숲길 따라 흠집 같은 선전판과 안내판이 보이고, 원주민 집과 기념품이나 생필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더위에 지쳐보였다며칠 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앙금이 가슴에 남아서인지 인디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머나먼 고난의 행군에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인디언 후예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체로키 마을에 차를 세우고 자그마한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대여섯 백인 손님들 틈에서 골각 소품 하나를 고른 후 20불짜리를 내밀었다전통 체로키 옷차림을 한 여인이 지폐에 그려진 초상화가 누군지, 그로 인해 자기들 선조들이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무심하게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계산해주었다.


   약자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억울하고 서럽다. 정의는 강자 편에 서기를 좋아한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정복을 당한 민족이 정복자에게 핍박받는 것은 천도가 무심해서가 아니라 인도(人道)가 무정한 탓이 아닐까.

고려 말 충신이었던 성리학자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백의의 몸으로 천년고도 송도를 다시 찾아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회고했다. 어쩌면 체로키 부족들도 모진 세월 끝에 옛 고향으로 돌아와 폐허를 딛고 하늘을 향해 천도가 무심하다.’고 탄식하였으리라.


   천도가 무심하다는 말은 세상사, 특히 인간사에 끼어들어 시시콜콜 옳거니 그르거니 간섭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자연의 도리, 즉 섭리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주로 악한 사람이나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응분의 천벌을 내려주지 않는다며 하늘이 야속하다 탓하고 원망할 때 이 말을 쓴다.


   미국의 20불짜리 지폐에는 제 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가 들어있다. 그만큼 미국역사에서 숭앙받는 대통령이라는 뜻일 것이다. 비록 개천에서 용 난 격이라지만 그렇다고 그를 고매한 인격자라고 인정하기에는 마뜩찮다

소위 잭슨 민주주의라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추앙을 받을지라도 정의를 구현한 지도자는 아니다. 흑인노예나 토착민 인디언들에 대한 그의 삐뚤어진 인식은 무정하기 비길 데 없었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아팔라치안 산줄기 끝자락, 체로키 산과 인근 몇몇 주()를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를 중심으로 자연신을 경배하며 평화롭게 살던 토착민 체로키 인디언들을 천이백 마일이나 떨어진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킨 장본인이었다토착민들을 눈물의 길로 내몰아 객사, 동사, 아사, 병사, 횡사, 분사시킨 대통령이 바로 그였다그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노동자나 농민들의 권익을 옹호한 서민의 대변자라고 칭송받지만 막상 인디언이나 노예들의 인권, 생존권, 재산권에 대해서는 모질 정도로 잔인무도했다.


   숱한 위험과 고난과 속박을 벗어나 내 이제 돌아왔느니.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I have already come.)


   상점을 나서니 어디선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노랫소리가 들렸다. 미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체로키 인디언들이 눈물의 길에서 숨을 거둔 부모처자들 시체를 길녘 맨땅에 묻으며 피눈물로 불렀다는 노래이기도 하다재작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톤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해 부른 노래로도 유명하다. 추모연설 중 잠시 말을 끊고 머뭇대더니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창하며 눈물을 보였다앤드류 존슨이 군대를 동원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삶터에서 몰아낸 지 이백 년이 흘러 원주민 권리선언을 최종승인해준 대통령도 바로 버락 오바마였다.


   지갑에서 20불짜리 지폐 한 장 꺼내 손에 들고 새삼스럽게 앤드류 잭슨의 초상화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천도가 무심하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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