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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로 살아 본 마흔 해 구구절절
06/17/2019 17:33
조회  907   |  추천   1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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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대학생일 때 이거나 아니면 일찍 이성에 눈을 뜨지 않는 한 연애나 결혼하는 경우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테지요. 하나, 세상 수많은 이성 교제의 주요 목적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데

있을 거라는 추상을 합니다. 대체적으로는 이 추정이 맞아 떨어지는지, 거개하지만 안 그런, 즉

사련이나 비련으로 끝나는 소식도 주위에서 적잖이 들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질병이나 증후군은, 의사가 진찰한 후 상처 부위를 치료함으로써 낫게 할 수 있지만, 한 때 연인간으로 도돔히 쟁여졌던 이성과 헤여졌거나 실연으로  복사된 사랑 증후군은 난치병이 되는, 서릿발 같은 애증으로 변절되기도 합니다.  이 환란을 겪었거나 겪는 이들은, 오로지 당사자들만이 그 '고통 굴레'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듯 합니다.


첫 만남에서, 앞에 앉은 여인을 향해 자석처럼  달려 간 마음이 내는 소리, ' 오, 여인이여... 내

여인이여... ' 였습니다. 그것은  곧 얼굴에 만개한 사랑의 빛깔로써 눈치 채이고 말았지요. 그 빛 복사한

여인은 베시시 수줍은 미소 옆으로 감추며 ' 저도 좋답니다 ' 고 나직이 응답하는듯한 몸짓을 보이더군요.


11월의 경포대는, 초겨울 해풍에 옷자락이 깃발처럼 나부꼈지만,  그 불타던 여름 향연이 막을 내린 그즈음은 바닷소리 와사한 서시만이 귓가에 산산히 부서지더더군요. 파도가 밀어내는 포말을 밟고 또 밟으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둘이 걸을 때 심술 난 파도가 무릎까지 흠뻑 적시며 시비 걸어도, 웬간해서 반응하지 않자 더욱 심술이 났는지, 파도의 키높이 물 벼락에 둘이 똑같이 쓰러져 헐떡거릴 즈음에 찿아 온 찬스는, 파르르 떠는 여인을 내 온 몸으로 포옹함에 발생한 나의 체온이 체전된 기적은 마흔 해를 사는 지금도 둘의 기억 제 1호입니다.


해직 언론인 명단에 오름에, 현업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면서 자유인 실업자로 신분이 변경됐을 때

아내가 귀에 대고 속삭이던 말 "의연하세요, 현실을 감응하세요"는 일침 충고였습니다. 

3개월 여 몇개 미디어에 투고하는,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면서 받은 빈약한 '벌이'로 가사꾸리할 때에도

아내는 남편에게 우수 묻은 낯 빛 보이잖았습니다. 이 때가 결혼 생활 2년차 조금 전이니까, 11개월 

며칠이 맞는 시기이겠네요. 

남편은, 늘 밝은 낯빛 보이려고 애쓰는 아내를 위하여, 가진 재능을 살려, 잡지사 출판사 경제지를 순회하면서 작업 해 소득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낮은 금액이었지만, 뿌듯한 마음을 지닐 수 있었음은, 아내의 '순풍'이 항상 같은 세기로 남편에게 쐬어 주었기에 그랬을 거예요.


경제지 근무를 끝으로, 태평양 상공을 날아 미국 땅을 밟은 '우리'는 또다시 굴곡진 생활의 볼모가 됐더랬습니다. 그것은, 팔십년대 말의 시세 형평성이나 한치 건너 두치 정도의 현실감각도 동원치 않은 가운데

소규모 프린팅 샵 인수하느라 '거금'을 치렀는데 그 중에 70%는 커머셜 론으로, 30%야말로 땀 반, 피 반을 내면서 모은 우리 돈을 보탠 것이었지요. 졸지에 채무자이자 빈털터리 비즈니스 맨이 됐지만, 한가닥 건 희망의 자부심은, 매스 미디어에서 익힌 이 분야의 메커니즘을 익히 알고 있음에, 수지 타산이 좀 안 맞아도 충분히 흑자 전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섰었기에, '천문학적 거금'을 일시불로 주고 사들인것이었습니다만, 운영한지 2년여 남짓 되는 90년대 초반부터 도래한 전자 미디어의 기존 산업의 컨텐츠 잠식으로, 지탱이 부치더니 버티기마저 한계점에 다다르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빚을 빚내어 변제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결국 우리는 파산하는 쓴 잔을 들어야 했지요.


딱 한 번, 미국 이민행을 당초 만류했던 아내를, 남편의 귀거래사 같은 말에 넘어가, 동행한 아내에게

마흔 해 산 즈음에 한 말은, ' 오, 아내여... 나의 아내여, 고맙소... 나를 미워 않는채 여전히 아침 햇살 머금은 그대의 심성을...'


우리는 함께 더 살아 내야 하는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나 홀로 보다는 둘이가 좋고, 둘이 있을 때 반했던 그 마음으로 아내를 바라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건 오직 스며나는 정감 때문일텝니다.


40년... 미국살이 33년이고 한국에선 고작 7년 뿐의 결혼기지만, 우리가 한국인이므로, 7년 살았던

한국 부부시대가 참 그리운 이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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