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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대장의 갑질을 보며:갑질은 선악이 아니라 장단기이익의 균형 문제 ?
08/12/20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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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대장의 갑질을 보며:갑질은 선악이 아니라 장단기이익의 균형 문제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가 공관병을 상대로 기가 막힌 갑질을 했다. 병사들에게 호출 팔찌를 채운 게 그 예다. 공관병들 증언에 따르면 부부가 호출 벨을 누르면 팔찌에 신호가 간다. 그러면 병사는 부부에게 달려가 수발을 들어야 한다. 이건 병사의 기본적 인권과 자유를 본질부터 침해한 거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육군 대장 부부의 위선과 그 인품의 비루함을 개탄한다. 저런 인품으로 어떻게 육군 대장에 오를 수 있었느냐며 통탄한다. 악질 상관의 명령을 받들어 적군으로 돌진하는 부하가 과연 몇이겠느냐고 한숨 쉰다

 

그러나 갑질은 단순히 인격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갑질의 종착지가 '분명한 악'이고 당사자의 비루한 인격을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출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많은 경우, 선과 악의 경계는 흐릿하고 양측 사이에는 넓은 회색 지대가 퍼져 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가 불분명하다. 우리 행동의 출발은 대개 그 회색 지대에서 이뤄진다. 그러다 어느새 우리의 행동은 선 또는 악 쪽으로 깊숙하게 방향을 튼다.

 

이때 결정적 요인은 '장단기 이익의 균형'이다. 인간은 눈앞의 이익과 미래 이익의 균형을 좇는다. 갑질을 하면 당장 이익은 얻지만, 평판이 나빠지고 이로 인해 장기 이익은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적절한 수준에서 갑질 행동을 억제한다. 단기 이익과 장기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갑질 비슷한 행위를 하더라도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친다. 선악이 불분명한 회색 지대에 머무는 것이다. 인품이 고매하다는 평가는 받지 못해도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장기 이익에 대한 본능적인 고려가 '사악한 갑질'을 막는다.

 

그러나 균형 추가 급격하게 단기 이익 쪽으로 쏠릴 때가 있다. 눈앞의 이익을 취해도 장기 이익을 훼손당하지 않을 거 같을 때다. 예를 들어 상사가 자기 일을 부하에게 떠넘기고, 군 장성이 자기 텃밭을 부하 장병에게 가꾸라고 하고, 대학교수가 대학원생을 시켜 이삿짐을 나르게 하고, 회사 상사가 자신의 대변 봉투를 병원에 갖다 주라고 부하 직원에게 시키는 갑질을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도 미래에 손해를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금세 갑질을 저지르고 만다. 일신의 편안함, 다시 말해 단기 이익을 취하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넘어간다. 결국 악 쪽으로 접어든다.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권력자들은 갑질을 저지를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장기 이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주 대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가 공관병에게 갑질을 한다고 한들, 사병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불만을 표시하면 벌을 받았다고 한다. 전방 GOP 철책 근무라는 징벌이 떨어졌다고 공관병은 증언한다. 이 밖에 박 대장 부부의 갑질 현장을 목격한 장교나 다른 장성들이 문제를 느낀다고 한들 육군 대장에게 감히 "당신의 행동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박 대장 부부에게 공관병은 엄히 다뤄야 한다고 아부했을 것만 같다. 결국 박 대장 부부는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 '갑질'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같은 권력의 속성을 감안할 때 '육관대장-공관병' 관계처럼 한쪽이 일방적인 권력을 가지면 갑질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필연이다. 더욱이 권력은 인간의 두뇌를 변화시킨다. 위선적이 되며 뻔뻔해진다. 그래서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는 "권력자의 자아는 언제든지 '사나운 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력자가 개 줄을 놓는 순간, 언제든 사악한 갑질의 화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권력자 본인은 갑질을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공관병에게 그 정도 하는 건 괜찮아. 남들도 다해", "내가 공관병을 질책한 건 그가 먼저 잘못을 했기 때문이야.", "나는 잘 하라고 충고한 거뿐이야"라고 합리화한다. 어디 박 대장뿐이던가? 우리 사회에서 권력자의 자기 합리화는 이제 신물이 난다. 부하 직원에게 대변 봉토를 건넨 상사는 "난 몸값이 비싼 사람이야. 대변 통투를 병원에 가져다줄 시간에 회사 일을 하면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갑질도 다를 바 없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단기 이익 추구의 유혹을 받는다. 가맹점에 필요 없는 인테리어 공사까지 시켜서 공사비를 챙기고 싶은 유혹, 특정 업체에서만 재료를 구입토록 해 부당한 리베이트를 챙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고도 본사나 경영주의 장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갑질을 저지르고야 만다. 그러고도 "잘못했다"라는 인식은 없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면 불가피한 것", "가맹점이 돈을 버는 건, 본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렇기에 갑질을 막는 방법은 장단기 이익의 균형추를 '장기' 쪽으로 옮겨놓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갑질을 하면 장기 이익이 손해를 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갑질의 유혹이 느껴지는 순간, "그렇게 하면 결국엔 손해 볼 거야"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방법 중 하나는 보다 수평적인 권력구조를 만드는 거다. 갑과 을의 권력 격차가 작으면, 그래서 을이 갑의 갑질에 반격할 수 있다면 갑질은 확연히 줄어든다. 공관병을 민간 인력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한 것도 그래서다. 민간 인력은 갑질에 대응해 퇴사할 수 있다. 수사 기관에 고발도 가능하다. 인터넷이나 SNS에 자신이 당한 갑질을 폭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장성들의 장기 이익에 손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가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장성이 공관 인력을 노예처럼 부리는 갑질은 위험 부담이 커진다. 당연히 갑질을 덜하게 된다. 프랜차이즈 갑질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진정 갑질을 줄이고 싶다면 본사와 가맹점 간의 권력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갑질 예방을 위해 필수다. 투명한 사회에서는 갑질을 숨기기 힘들다. 갑은 자신의 갑질이 들통날 위험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당장 갑질로 눈앞의 이익을 취한다고 해도 갑질이 들통나 얻을 손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박 대장 부부의 갑질을 세상에 공개한 결과, 박 대장 부부는 명예에 먹칠을 했으며 형사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갑질을 막으려면 무엇보다도 '평판'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갑질을 하면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평판이 악화되고,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벌을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구성원들이 그의 악행을 비판하고 그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게 벌이다. 이는 갑질 행위자에게는 엄청난 위협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걸 본능적으로 무서워한다

 

그러나 박 대장이 속한 군 공동체가 박 대장에게 '사회적 벌'을 내릴지 의문이다. 오히려 군 장성들은 상관의 악행을 고발한 공관병들이 하극상을 저질렀으며 군의 철칙인 '복종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박 대장 부부을 두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박 대장 부부의 장기 이익을 지켜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나는 이번 사건처럼 참담한 갑질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공감과 연민의 능력에 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고통받는 부하 장병에 대한 연민이라는 게 대장 부부에게 있었다면 그런 갑질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 대장 부인이 "공관병을 자식처럼 여겼다"는 말은 거짓으로 봐야 한다. 공관병을 자식으로 생각했다면 공관병의 작은 고통에도 공감했으리라.

 

안타깝지만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연민의 스위치를 수시로 껐다 켰다 하는 존재다. 스위치가 꺼지면 상대의 고통을 못 느낀다. 눈앞에 노숙자가 죽어가도, 도로에 누군가가 쓰러져 누워 있어도 119에 신고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인간은 상대를 '우리의 일부'가 아닌 '그들의 일부'로 인식하는 순간, 상대에 대한 연민을 잃는다. 특히 권력자들은 자신들보다 권력이 한참 아래인 사람들을 '우리'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신들과는 매우 다른 '그들'로 여긴다그렇기에 그들 두뇌 속 '공감과 연민의 스위치''오프(off)' 상태가 된다. 해결책은 앞서 밝혔듯이 인간 행동을 장단기 이익의 균형 관점에서 바라보고 권력 격차를 좁히고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이는 권력자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공감과 배려, 연민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미덕을 잃지 않게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김인수 매일경제신문 기자 ecoki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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