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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지미 헨드릭스 - 미친다는 것은 천국에 있는 것과 같다
03/08/201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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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마셜 "지미" 헨드릭스(영어: James Marshall "Jimi" Hendrix, 1942년 11월 27일 ~ 1970년 9월 18일)는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많은 음악 팬들과 평론가들은 헨드릭스를 록과 블루스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사람으로 손꼽는다. 그는 영국에서 첫 번째 성공을 거둔 후, 1967년 미국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그리고 1970년  Isle of Wight Festival에서 역사적인 음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1967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적인 노래 가운데 한곡인 "Foxy Lady" 를 50년전인 1968년 마이아미 팝페스티발에서의 라이브 스테이지 노래로 들어본다.


아래 동영상은 Noel Redding 과 Mitch Mitchell 그리고 Jimi Hendrix로 구성 된 3인조 밴드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 가 1967년에 발표했던 "Hey Joe" 이다


Jimi" Hendrix 는 1942년 11월 27일 시애틀1942년 11월 27일,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17세의 식당 종업원이었고,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지미의 본명은 자니 알렌 헨드릭스로, 휴가를 나온 그의 아버지가 이름을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로 개명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탭댄서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버지의 보호 아래 유년기를 보냈다.
빗자루를 들고 TV 속 기타 연주자를 흉내 내던 그의 첫 번째 악기는 열네 살 때 아버지가 구해온 우쿨렐레다. 알코올 의존자인 어머니의 사망 소식은 16세 소년이 기타리스트로서 꿈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교 재학 중 록 밴드를 결성해 기타에 심취한 그는 교내에서 공공연하게 약물을 복용하면서 퇴학 조치를 받고 쫓겨났다.
학교를 떠나 낙하산병으로 입대해 복무하는 동안에도 ‘The King Casuals’라는 밴드를 조직했지만, 훈련 도중 부상을 입고 스무 살에 의병제대했다. 이후 1965년까지 리틀 리처드·아이크&티나 터너·샘 쿡 등의 록·팝·R&B 보컬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하지만 3년여의 세션 기간 동안 그는 왼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만이 특별할 뿐 그의 음악적 자질에 대해 별다른 평가를 얻지 못했다.
전역 후 만나게 된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에 의해 그와 지미는 같은 밴드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지미는 리틀 리처드와의 활동 외에도 블루스 뮤직의 살아있는 교본 비비 킹(B.B. King), 로니 영블러드(Ronnie Youngblood)와 같은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들과 연주하면서 지미의 실력과 명성은 급부상하기 시작한다.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져서 1965년 리틀 리처드 밴드를 떠난 지미 제임스(Jimi James)와 블루 플레임스(Blue Flames)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Noel Redding)과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을 만나서 전설이 된 3인조 밴드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를 조직하여 영국에서 먼저 레코딩을 발매하였다. 그 곡들이 불후의 명곡들인 〈Foxy Lady〉, 〈Hey Joe〉, 〈The Wind Cries Mary〉, 그리고 〈Purple Haze〉이다.

아래의 "Wild Thing"은 1967년5월11일, Jimi Hendrix 와 The Jimi Hendrix Experience 의 라이브스테이지 동영상이다. 
선정적인 그의 표정과 매력적인 그의 연주가 함께 어우러진 야릇한 노래이다.

 "Wild Thing" 은 1965년에 Chip Taylor 가 만들었던 곡으로 그 해에 미국밴드인 The Wild Ones 에 의해서 발표되었지만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1년뒤인 1966년 영국의 4인조인 The Troggs 가 리바이블 하면서 빌보드100에 1위까지 올랐던 곡이다. 

1967년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열정적인 재능의 연주를 하여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게끔한 지미는 기타의 판도를 완전하게 바꾸어버린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1967)를 발표한다.
 1967년의 세상은 지미의 기타 연주와 그의 밴드멤버들의 뮤지션쉽에 주목하여 열광했는데, 특히 지미는 꺼리김이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기타톤으로 표현하여 자신이 죽기 전까지도 식지않은 열정으로 들려주었고, 그의 순수한 노랫말 표현에 맞추어 기타응용의 정형성을 뛰어넘지만 자유스럽고 느슨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비타협적이고도 창조적인 산물들을 그득하게 뽑아내는 삶을 살았다.
 196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Axis : Bold As Love》에서도 지미는 〈Spanish Castle Magic〉, 〈Wait Until Tomorrow〉, 〈Little Wing〉, 〈If 6 Was 9〉과 같은 불멸의 고전을 이루어주었다.
 
그리고 1968년, 세 번째이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마지막 앨범인 《Electric Ladyland》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의 〈Voodoo Child (Slight Return)〉은 스티비 레이 본 (Stevie Ray Vaughan,SRV)을 비롯한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펑키한 사운드가 매력적인 〈Rainy Day, Dream Away〉, 정갈한 연주와 인상적인 멜로디가 있는 〈Crosstown Traffic〉과 밥 딜런(Bob Dylan)의 원곡보다 더 유명해진 〈All Along The Watchtower〉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69년 초, 밴드가 해체된 후 멤버들은 각자의 행로로 흩어졌고 지미는 개인 스튜디오 '일렉트릭 레이디랜드'를 꾸며서는 매우 실험적인 성격의 (실제 일렉트로닉 음악에도 영향을 남긴) 사이키델릭의 사운드를 잔뜩 녹음했는데, 그 결과에 관해 지미는 자신의 영향력이나 유명세가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제어되지 않는 상태임을 감안하여 그 사운드들을 다른 관점의 허용과 동시에 자신 삶의 체험이라고 정의하며 함께한 멤버들은 없었지만 자신으로써는 완벽하게 과거의 Experienced 이름을 다하게되었다라고 말을 줄였다.
 
그리고 69년 여름에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이전 동료였던 미치 미첼과, 친구였던 빌리 콕스(Billy Cox)와 함께 참여하여 〈Red House〉, 〈Voodoo Child(Slight Return)〉, 〈The Star Spangled Banner〉등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70년 그는, 오랜 친구인 버디 마일스(Buddy Miles), 빌리 콕스와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를 결성하며 필모어 이스트에서 가진 공연 실황을 담은 동명 타이틀 라이브 데뷔 앨범 《Band Of Gypsys》(1970)를 발표하였지만 9월달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게 된다. 영국 런던의 스마르칸트 호텔 지하에서 1970년 9월 18일 수면제 과다복용 상태에서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하게 되었다고 알려진 것이 가장 그 사망원인에 관한 의혹이 적다.
 
네 장의 정규 앨범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지금까지도 여러 지구인들에게 음악열정의 모티브가 되고있는 타오르는 숯과 같은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는 타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무수한 라이브 앨범과 편집 앨범, 리마스터드 앨범,미발표곡들이 지금까지도 여러 스튜디오로부터 정리되어 발표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1967. 베이스 노엘 레딩(Noel Redding)과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을 만나서 전설이 된 3인조 밴드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Purple Haze"이다.

"Purple Haze" is a song written by Jimi Hendrix and released as the second record single by the Jimi Hendrix Experience 

on March 17,


아래는 이서영 칼럼니스트 의 "지미 헨드릭스 - 미친다는 것은 천국에 있는 것과 같다." 는 글이다.


날씨가 널뛰기를 한다. 계절은 늘 이즈음이면 널뛰기를 하면서 논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우수도 경칩도 지났는데 밤새 내린 눈에 세상이 하얗다. 소복한 세상은 따뜻해 보일까? 어제는 북카페 건물이 들썩일 만큼 바람이 하루 종일 불어댔다. 풀들도 온몸으로 자지러지고 나무들도 웅웅 울어댔다. 그리고 그 울음의 끝은 눈이 되었다. 소복하던 눈은 아침을 지나면서 밝은 햇살과 눈이 마주쳤다. 눈은 녹으면서 햇살 사이로 조금씩 점 점 내렸다. 이제는 오후 2시쯤. 바닥에 쌓였던 눈은 거의 녹았고 회색 구름 위로는 맑은 빛깔의 흰구름이 떠 있다. 회색 구름은 낮게 내려와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가고 있다. 글을 쓰다가 휴식 시간이 되어 기지개를 길게 켜고 피아노 앞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본다. 짧은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저 작디작은 눈송이와 흰구름과 햇살과 나무와 숲들. 도로 위를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들과 산림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차량들. 우주의 한 순간. 우주의 한 장소. 내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를 달린다.

간혹 천천히 간혹 빠르게. 악보를 보면서 외웠던 음률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길을 떠나버렸으니 지금 내 손가락들이 만들어내는 음률은 세상에서 처음 눈마주치는 순간들이다. 음악은 우주에 편재해 있다. 다만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 누군가는 우주에 편재한 음악들을 낚아채기도 하고 그 음악들로 숨쉬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우주의 음악들이 자신을 통과하여 무수한 타자들에게 이르는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우리는 늘 새로운 음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 블루스에서 출발하였으나 록을 거쳐 사이키델릭을 거쳐 온갖 길을 거쳐 자신만의 새로운 소리를 발견해 내어 우리에게 안내했던 한 사람이 있다. 일렉트릭 기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우리가 천재라고 일컫는, 그러나 늘 자신의 음악의 신기원을 찾고자 애썼던 한 어린 남자. 시류에 편승하는, 짧게 눈 맞추고 사라지는, 유행이라는 딱지가 붙은 상품으로 소비되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 했던, 오래도록 기억될 길을 열고 싶어하는 개척자 같았던 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 

그와의 산책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마음을 내려놓고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는 나의 거울. 

지미 헨드릭스.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그의 연주는 현란하다. 그를 보면 그를 느ㆍ끼ㆍ게ㆍ된다. 그를 보면 나이를 잊는다. 그가 지구별에 언제 도착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얼마나 뜨겁게 그리고 밀도 있게 살았는지를 느ㆍ낀ㆍ다. 세상 모든 것은 거울이다. 이 모든 거울들을 바라보는 나는 그것이 거울인 줄을 잊어버린다. 그것이 거울이어서 사실은 나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의 첫번째 앨범의 제목은 "Are You Experienced " 이다. '경험하셨어요?,' 또는 '경험하고 있나요?' 정도일까. 그의 밴드의 이름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이다. 그는 음악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음악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꼭 귀로 듣는 물리적인 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음악은 느낌이나 생각, 상상력, 그리고 감정을 통해 듣는 것이었다. 그는 '느낌'과 '떨림'이라는 단어를 사랑했다. 그는 평생 이 '느낌'에 골몰하고 느낌에 천착했으며 느낌에 솔직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연주를 잘 한다기보다는 음악을 향한 자신의 느낌, 음악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뮤지션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열두 살 무렵 그가 시작한 기타는 어쿠스틱이었다. 그는 기타를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 다만 그는 라디오를 통해 기타 연주들을 '들었고' 주변 어른들이 기타치는 모습을 '보았다.' 오른손잡이를 위한 기타로 왼손잡이가 연주를 한다는 게 얼마나 엉뚱한 일인지 깨닫고 혼자서 왼손잡이용 기타로 바꿔보기도 했다. 그는 늘 눈앞의 대상들을 탐색하곤 하였는데 그것들은 그의 독특한 상상력과 느낌과 합해져서 그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소재로 활용되었다. 1967년은 그의 해라고 말할 수 있다. 베이스의 노엘 레딩(Noel Redding), 드러머의 미치 미첼(Mitch Mitchell)과 3인조 밴드를 결성한 뒤 그는 두 장의 앨범을 같은 해에 발매한다. Are You Experienced 와 Axis: Bold as Love 라는 앨범인데 후자는 '지축: 사랑처럼 대담한'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1968년 [일렉트릭 레이디랜드 Electric Ladyland]를 발매한 뒤 그룹은 해산한다. 지미의 삶의 절정이었으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시기지만 반대로 그의 모든 열정이 소진될 만큼 상품화되어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기계적인 공연을 소화하도록 강요받기도 했다. 휴식이 금지된 급행열차처럼 질주하던 지미라는 기계는 어느 순간 과부하를 받은 기타줄이 툭 끊어지듯 절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삶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집중하고 사느냐에 방점이 찍히는 거라고.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난해해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솔직해지는 것이다.'  삶과 음악은 자신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이 꼭 붙어 있다고 늘 말하던 지미. 그가 쓴 노래의 가사를 한 번 들어보자. 


"거울로 가득한 방 Room Full Of Mirrors" 

나는 거울로 가득한 방에 사는 게 익숙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전부 나 자신뿐. 

나는 내 영혼을 거두고 거울을 박살내. 

이제 세상 전체가 여기 내 눈앞에 보여. 

세상 전체가 여기 내 눈앞에 보인다고. 

이제 난 내 사랑이 될 이를 찾아 나서네. 


박살 난 유리 조각이 몽땅 내 뇌에 박혔어. 

머릿속에서 서걱대고,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어. 

박살 난 유리 조각이 몽땅 내 뇌에 박혔어. 

내 꿈에서 빠져나와 침대에서 날 서걱서걱 베곤 해. 

내 꿈에서 빠져나와 침대에서 날 서걱서걱 베곤 해. 

무슨 말이냐하면, 내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 이상하다는 얘기야.


사랑이 산 위로 환하게 반짝이네. 

사랑이 바다 위로 환하게 반짝이네. 

사랑이 내 사랑 위로 환히 빛나네. 

그럼 나는 누가 날 위한 사람인지 정확히 알게 되겠지. 

누가 날 위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헨드릭스/최민우 옮김/마음산책.에서)"


그는 이미지의 달인이다. 사물과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미지들이 연결되어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는 몸을 입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 너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노래로 세상과 손잡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와 연주가 늘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는 전초기지이기를 바랬다. 그는 대중 속에서 탄생한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이기를 바랬다. 열여덟 살에 학교를 멈추지만 학교에서 그는 시를 많이 썼고 시를 쓸 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시는 대부분 꽃과 자연과 예복을 입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배우나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는 다른 행성을 그리길 좋아했다. 화성의 여름 오후 같은 것.


그는 선생님이 "풍경화를 그리렴"하고 말하면 화성의 일몰을 그렸다. 선생님이 "어떤 기분으로 그린 거니?"하고 물으면 "그건 화성 사람들의 기분이 그때그때 어떠냐에 달린 거죠"라고 대답했다.

 

미술 시간에 여자 친구를 사귄 지미는 수업 시간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백인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해도 되니?" 지미가 말했다. "뭐에요, 질투해요?"

 그리고 지미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1960년,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지미는 늘 삶에 대해 솔직했다. 그의 이런 담백함은 세상의 규칙과 궤를 같이할 수 있었을까. 평생 그는 지미 헨드릭스, 자신이고자 했다. 


학교를 그만 둔 지미는 아버지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보기도 했고 친구들과 싸돌아다니기도 했다. 가끔 경찰을 때리기도 했고 지독하게 싸우기도 했고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다. 많은 소년들이 거칠게 살았고 지미도 그랬다. 십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처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안정하고 질풍처럼 몰아치는 시간이 그들을 한 사람의 올곧은 성인으로 키운다. 이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사실 불행하다. 부모라는 성 안에 갇혀 온실의 화초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처 성숙하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어버린다. 어른아이가 많은 세상은 위험하다. 도덕 속에 갇힌 이들은 불행하다. 일정한 틀 안에 갇혀 있는 한 그는 정확히 그대로의 삶 밖에 살 수 없다. 그것이 행복일까? 안전한 울타리를 쳐주는 것을 최고의 지상 목표로 삼는 부모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눈으로 배운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함으로써만 인간은 비로소 껍질을 벗고 제대로 된 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살지 않는 소년이었던 지미는 가끔 집을 나갔다. 집에 있는 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걱정하고 속이 많이 상해 있으며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지미는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에게 스며들어오는 걸 느꼈다. 

어른들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하울링 울프(Howlin' Wolf), 레이 찰스(Ray Charles)를 들으며 파티를 벌였다. 지미에게 다가온 생애 첫 기타리스트는 머디 워터스였다. 꼬마였을 때 머디 워터스의 음반을 듣고 그는 무서워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와! 이게 다 뭐지?' 그것은 굉장한 느낌이었다. 기껏해야 기타 두 대, 하모니카, 베이스 드럼으로 연주하는 데도 풍성한 음률이 만들어졌다. 지미는 황홀했다. 

 

지미의 첫 악기는 네 살 때쯤의 하모니카. 이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에 푹 빠졌지만 들고 다니기에는 조금 무거웠다. 지미는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어느 집이나 기타는 한 대씩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밤 아버지의 친구가 술에 취해 자신의 기타를 5달러에 팔았다. 덕분에 지미는 자신만의 기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왼손잡이였으므로 오른손잡이용 기타로 연주를 하는 건 뭔가 이상했다. 줄 위치를 바꾸니 음정이 엎치락뒤치락했다. 튜닝이 무엇인지 몰랐던 지미는 악기점으로 뛰어가 기타 줄에 손가락을 몇 번이나 쓸어보았다. 미묘한 느낌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혼자서 기타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지미가 기타를 치면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멋지다는 말을 들었다. 열네다섯 살 쯤이었다. 한동안 지겨워진 지미는 기타를 치워버렸다가 척 베리(Chuck Berry)의 연주를 듣고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는 레슨을 받은 적이 없다. 음반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부지런히 연습했다. 익힐 수 있는 리프(반복 악절)는 전부 손에 익을 때까지 모두 연습했다. 점점 음악은 지미의 일부에서 전부가 되어갔다. 짧았던 지구별 여행 중에 지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단 하나, 음악뿐, 그는 다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낀 적이 없다. 그저 좋은 음악. 십대의 지미는 척 베리와 머디 워터스를 스승 삼아 그들에 관해서는 죄다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인간은 몸집만 커질 뿐 늘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70인 미성숙한 어른아이들이 도처에 흔한 이유다. 

지미는 벨베톤스라는 그룹을 결성했는데 다른 악기들로 인해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로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첫 일렉트릭 기타는 댄일렉트로 제품으로 기타 값을 치르기 위해 아버지는 오랫동안 힘들게 일해야 했다. 지미는 이 사실을 잊지 못했다. 첫 공연은 주방위군 본부에서 했고 멤버 한 명당 35센트와 햄버거 3개를 벌었다고 한다. 

공개적인 무대에서 하는 연주는 쉽지 않았다. 아니 정말 힘들었다. 지미는 세 곡 정도 연주할 줄 알았는데 무대에 서려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고 그때마다 정말 의기소침해졌다고 한다. 1966년 이후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무소불위의 당당함을 지닌 듯 보였던 지미 역시 첫 무대는 두렵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그는 늘 다른 밴드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잘 치는 듯한 환영에 시달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은 이 지점에서 포기한다. 하지만 그건 최선이 아니다. 그냥 계속해야 한다. 가끔 진짜로 좌절하여 기타가 싫어질 때도 있을텐데, 그 모든 것이 배움의 '일부'다.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보답을 받을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해낼 수 있다." 


그는 꿈에서 숫자 1ㆍ9ㆍ6ㆍ6을 보곤 했는데 아주 기묘한 느낌과 함께 자신이 무언가를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예감과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열광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미는 분신 같은 기타와 함께 있었다. 후에 1966년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가 결성되는 역사적인 해로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만이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나를 환히 드러낼 수 있다.


1961년, 5월 지미는 훔친 자동차를 탄 혐의로 체포되었고 국선변호인은 지미가 군에 입대할 거라고 판사에게 말했다. 지미는 호주머니에 한 푼도 없었고 거리를 걷다가 맨 처음 눈에 띈 모병 사무소로 들어가 자원입대를 했다. 훈련은 정말 힘들었고 가끔은 진흙 위에서 자야 했다. 지미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힘든 만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는 15개월 정도 복무하다가 점프 도중 부상을 당했고 그 바람에 등에 떠밀려 제대하게 되었다. 시애틀로 돌아가는 중에 재즈를 연주하는 술집에 들어갔다. 그 동안 모아놓은 400달러쯤 되는 돈은 술집을 나설 때 16달러로 줄어 있었다. 왜? 술집이 맘에 들었던 그는 누구나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으면 술값을 다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16달러로는 2,000마일이나 떨어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 머물면서 부상으로 인한 건강을 회복한 뒤 그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카페, 클럽, 그리고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잘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고 먹을 게 없으면 훔치기도 했다. 빌리 콕스와 그룹을 결성했으나 형편은 늘 여의치 않았다. 그는 내슈빌에서 온갖 종류의 음악을 연주했다. 내슈빌은 지미에게 물질적으로는 힘들지만 기타 연주에 있어서는 황홀한 곳이었다. 내슈빌 사람들은 모두가 기타 치는 법을 알았다.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현관에 앉아 기타를 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미는 그곳에서 진짜로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시애틀에서는 기타를 꽤 잘 치는 연주자였다. 그런데 남쪽에 가서 보니 개나 소나 전부 블루스를 연주할 줄 알았다. 지미는 그때에서야 기타를 치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이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는 법에 귀를 기울였고 미친듯이 파고들었다. 그는 누구나 나름의 블루스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슈빌의 관객들은 그러므로 정말로 까다로운 관객들이었다. 모두 귀명창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숱한 밴드들에서 세션에 참여하였으나 늘 형편없는 수당과 변변찮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해 25달러를 받았지만 이후로 2,3주 동안 쫄쫄 굶었다. 높은 건물 틈바구니에 있는 쓰레기통 사이에서 자는 날이면 쥐가 가슴 위를 뛰어다녔고 바퀴벌레가 그의 캔디 바를 훔쳐갔다. 그는 오렌지 껍질과 곤죽이 된 토마토까지 먹어보려고 했다. 다른 일거리를 구해보기도 했지만 늘 몇 주일 만에 그만뒀다. 음악과 무관한 일자리가 아니면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다른 밴드들의 그림자로 연주해야 했다. 지미는 자신만의 영역이 간절했다.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 일렉트릭 기타로 새로운 세상 하나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이 자주 그에게 왔다. 

 

1966년 초, 지미가 처음 결성한 그룹은 "블루 플레임스Blue Flames" 였다. 에픽과 CBS 레코드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으나 준비가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아 고사했다. '카페 오 고고'에서 연주하고 있을 때 음반사들이 지미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믹 재거(Mick Jagger)도 투어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미에게 가장 큰 행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국인 친구 한 명이 '애니멀스The Animals'의 베이스 연주자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에게 지미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지미의 연주를 들은 채스는 영국으로 건너가 그룹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늘 쫄쫄 굶고 있었던 지미에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국은 미국과 다를 바 없었다. 즉 어디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6년 9월 23일. 이날은 기록되어야 한다. 지미 헨드릭스가 영국에 도착한 날이니까. 영국에 도착한 지미는 연주만 할 수 있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자야할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도래한 것. 숱한 즉흥 연주를 하며 여러 연주자들과 테스트한 끝에 힘이 넘치는 록을 구사하는 베이시스트로 노엘 레딩(Noel Redding)이 선택되었고 약 스무 명의 드러머 중 최고였던 미치 미첼(Mitch Mitchell)이 들어와 3인조 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그의 음악을 들어보라. 이전에 없었던 사운드를 구사하는 그들만의 음악을. Hey Joe, Purple Haze, The Wind Cries Mary, Are you experienced?, May This Be Love?, Third Stone From The Sun, l Don't Live Today, Red House, Foxy Lady, House Burning Down, Ezy Riderㆍㆍㆍ.


지미는 자신의 음악을 장르 속에 범주화하는 행위를 혐오한다. 그는 자신만의 장르를 독자적으로 개척했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인 것만이 아니고 사이키델릭만이 아니고 록만이 아니고 재즈인 것도 아니다. 원래 음악은 다 섞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빨강, 저것은 파랑이라고 구분지을 수 없는 것이다. 지미는 바흐에서 비틀즈까지 다 듣는다. 그는 모든 음악들을 듣지만 그 음악들을 따라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음악들을 흡수하여 성장하면 더 이상 이것과 저것은 없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온갖 재료들을 맛보고 느껴보고 만져보면서 나에게 맞는 재료들이 섞이고 나뉘고 통합된다. 그래서 나라는 용광로에 맞는 작품이 세상에 탄생하는 것이다. 지미에게 사람들이 묻는단다.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려고 그런 식으로 옷을 입고 머리를 하고 다니느냐고.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나라서 그런 거다. 만약 내가 빨간색 반다나와 청록색 슬랙스를 입고 싶고 발목까지 머리를 늘어뜨리고 싶다면 그게 '나'인 거" 라고. 

 

사람들이 그들을 별난 방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지미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속 변화할 것임을 안다. 정신과 상상력은 자유롭게 흐를 것이고 또 흐르게 해야 하니까.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자유! 지미 헨드릭스는 이 자유를 통해 어디에 도달하였을까? 그는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해냈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이서영 칼럼니스트 : 지미 헨드릭스 - 미친다는 것은 천국에 있는 것과 같다
원문보기 : 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496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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