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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아내, 63년간 기다린 남편 마침내 돌아오다.
10/30/20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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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아내, 63년간 기다린 남편 마침내 돌아오다.


 67년의 사랑…

부인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남기고 숨진 6·25참전 미군
94세 갠트 할머니의 눈물, "이제야 우리 결혼생활 완결됐네요"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남편이 드디어 집에 돌아왔어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63년 만에 미국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 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린 올해 94,

백발의 부인(婦人)이 직접 남편의 유해를 맞이했다.

미군 병사는 지난1950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아내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동봉한 카드를 보냈다.

그는 그로부터 일주일 가량 지나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3개월 뒤인 1951 3월 포로수용소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성조기에 덮인

남편의 관을 마주한 부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AP통신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역 방송 등에 따르면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한국전 실종 미군 조지프. E 갠트 일등상사의 유해가

지난 20일 새벽(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갠트 전 일등상사의 부인인 클라라 갠트(Gantt·94) 여사는

공항에서 남편의 유해를 직접 맞이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미국 텍사스 시골마을에서 출발해

로스엔젤레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가 있다.

갠트 일등상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 12

북한 군우리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1951 3월 사망한 것을 알려졌다.

갠트 일등상사는 1924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8살이 되는 해인 1942년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

클라라 여사는 텍사스의 한 농장에서 18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지겨웠던 그는 시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들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1946년 그 열차에서 처음 만났다.

열차에서 클라라 여사에게 처음 말을 건넨 건 남편의 동료였다.

클라라 여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갑자기 남편이 쪽지로 ‘여기(워싱턴주)에서 내리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 때 클라라 여사의 종착지는 로스앤젤레스였고,

갠트 상사 일행의 목적지는 워싱턴주였다.

겐트 상사는 열차에서 내린 그녀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


클라라 여사는 처음에 갠트 상사를 유부남으로 오해해

한동안 그의 구애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당시 군인은 대부분 고향에 부인이 있었어요.

게다가 그 때 남편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 불과했지요.

그 낯선 남자가 내 인생을 걸 만한 사람인지 좀 더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갠트 상사는 주정부 증빙서류를 보여주며

자신이 미혼이라는 것을 클라라 여사에게 증명했고,

그제서야 클라라 여사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때 클라라 여사의 나이는 27, 갠트 상사는 23살이었다.

두 사람은 열차에서 처음 만난 지 2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은 1948 6월 워싱턴 포트루이스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2년 후인 1950년 갠트 상사는 다시 6·25 참전 길에 올랐다.

“그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군인이었어요.

그는 군 생활을 사랑했어요.

2차대전에서 복귀한 직후에 바로 다른 전쟁에 지원서를 냈죠.

그게 그의 인생이었어요.

갠트 상사는 미 2보병사단 503포병부대 C포대에 지원했다.

갠트 상사는 그가 참가한 전투에서 수 많은 훈장을 받았다.

6·25 전쟁에서는 브론즈스타 메달을 받았고,

2차대전에서는 승리메달, 필리핀 독립 리본 등을 받았다.

클라라 여사는 남편이 6·25 전쟁에 참전한 그 해 12월을 기억했다.

당시 갠트 상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클래라 여사에게 100달러 지폐를 담은 카드를 보내왔다.

1950 100달러를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980달러(120만원)에 달한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그로부터 며칠 뒤

갠트 상사는 군우리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이듬해인 1951 3월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갠트 상사는 집을 나설 때 클래라 여사에게

혹시라도 자신이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면 재혼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클라라 여사는 “남편은 심지어 자신보다

나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남자를 찾아 소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클라라 여사는 그때 남편한테 약속했다.

“당신을 제외하고 앞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클라라 여사는 실제 지난 63년 동안 남편만을 기다렸다.


그 긴 세월동안 잠깐이라도 다른 사람을 사귄 적이 없었다고 했다.

클래라 여사는 기자들 앞에서

“결국 저는 여기에 그 사람의 아내로 서 있어요.

그리고 저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부인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클라라 여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워싱턴 D.C에서

미국 참전용사의 미망인 및 가족들과 함께

행방불명된 참전용사를 찾는 집회를 열어왔다.

미국에는 지금도 약 8만명의 참전용사가 행방불명된 상태다.

클라라 여사의 가족은 집회에 나가는 그녀에게 “미쳤다”고 했다.

제발 남편을 잊고 재혼하라고 사정도 했다.

하지만 클라라 여사는 가족들에게

“그 사람은 제 남편이잖아요.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휠체어를 탈 때까지

(남편을 찾는 일은) 계속하겠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워싱턴 집회 참여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고,

클라라 여사는 ‘남편의 유해가 돌아왔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홀로 워싱턴으로 갔고,

남편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담담히 들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에 묻힌 갠트 상사의 시신을 최근에야 찾아 하와이로 이송했으며,

하와이의 ‘미군 합동 전쟁포로’ 감식반에서 신원확인 작업을 거친 뒤

클라라 할머니에게 시신을 인도했다고 설명했다.

클라라 여사는 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저는 남편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최고의 남편이자 이해심 깊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언제나 남편만을 사랑했고,

남편과 저는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이제야 우리의 결혼 생활이 완결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갠트 상사의 유해는 이달 말 LA 인근 잉글우드에 안장된다.

클라라 여사도 사망하면 남편 곁에 묻히게 된다.

미 국방부는 북한에 묻힌 전사자 유해를 꾸준히 발굴해

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으나 6·25 당시 행방불명된

전사자와 실종자가 아직도 79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옮 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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