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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詩, 꽃밥 메밥 외6편
05/08/20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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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詩, 꽃밥 메밥 외6

꽃밥 메밥 / 이상국

 

아카시아꽃을 씻어

밥 잦을 때 안치면

 

이밥보다 하얀

꽃밥이 되었다

 

달착지근하고 허기진 밥

막으면 목이 메었지

 

보라색 메꽃 뿌리를 메라 하고

밥솥에 메를 넣으면 멧밥이 되었다

 

서러운 밥상머리

눈물나던 밥

 

지금은 아무도 이런 밥을 안 먹지만

전쟁 나서 배고플 때

 

우리나라 산천은 나에게

이렇게 향기로운 밥을 거저 주었지

……………………………………………………………..

달은 아직 그 달이다 / 이상국

 

 

   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

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지도록 그립게  걸렸다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어쨌든 나는  이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하여 거의

사십여년이나 애를 썼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은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 몸에 어둠을 바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이 있어

마음의 문이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녘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면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젊은 여자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따라가보지만 
올해도 세월은 그들을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술하게 
떠내려가다 걸린 나무등걸처럼

우두커니 그냥 있었다 
이 촌구석에서 
이 좋은 가을에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여러 번 일러줘도 
나무들은 물 버리느라 바쁘고 
동네 개들도 본 체 만 체다 
저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나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소주 같은 햇빛을 사발때기로 마시며 
코스모스 길을 어슬렁거린다

…………………………………………………………………………………

/ 이상국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

소나무숲에는 / 이상국

 

 

소나무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숲에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 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진다

소나무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나

저렇게 먼 데만 바라보겠는가

……………………………………………………………………………………….

이상국 시인

출생 : 1946 9 27강원 양양군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속초고등학교

데뷔 : 1976년 심상 시 '겨울추상화' 등단

수상 : 19회 현대불교문학상, 24회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강원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경력 : 유심지 주간, 백담사만해마을 운영위원장, 한국작가협회 강원지회장

         설악신문 대표이사, 한국작가협회 부이사장, 한국민속예술인총연합 강원지회장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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