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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문장외 2편
02/18/20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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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문장외 2 / 권상진

 

틀린 문장

 

                        

적막은 나에게 틀린 문장을 주었다

상형도 표의도 아닌 미완의 문자들이

한참을 생각처럼 고이다가

눈에서 턱 밑으로 써내려가는 짧은 문장

 

눈물을 소리 내어 읽어본 사람은 안다 

스타카토의 낯선 문법으로 변주된

단조풍 문장은 처음부터

주어도 술어도 없는 틀린 문장이란 것을

 

몰래 혼자서 쓰던 문장이었지만

들키듯 누군가에게 읽힐 때,

그 때마다 오독되어지는 나는

흐르지 않는 단단한 문체로 다시 습작 되어야 한다

 

흘린 문장에 내가 씻긴다

나는 후련하고, 나는 정갈하고

나는 지금 인간적이다

……………………………………………………………………….

 

바닥이라는 말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닿아있었다

흉물스런 바닥의 상징들로 각인된 팔과 이마는

오늘, 또하나의 슬픈 계급을 얻는다

 

삶의 바닥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있다

하루의 인생을 허탕치고 돌아와

단단하고 냉랭한 바닥에 무릎을 주고 손을 짚으면

이런 슬픔에 어울리는 습기와 냄새 그리고

허공의 무게가 뒷등에서 자라곤 했다

 

심해의 물고기들처럼 납작해질 용기가 없다면

중력을 향해 솟구쳐야 한다

마른 땅을 움켜쥐고도 몇 번을 다시 살아내는 나무처럼

시든 무릎을 세우면서

사람의 가장 슬픈 자세를 풀고 있는

나도, 이제 바닥이라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

 

달력은 벽에서 전등은 천정에서 화분은 베란다에서

저마다의 자세로 각자의 바닥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은

단단한 계단의 다른 이름이 된다

…………………………………………………………………………. 

 

, 골목

 

 

어둠이 슬슬 노숙을 준비하는 오후의 골목

저 속의 하루를 들여다 본 적이 있다

하루를 딛고 온 신발 밑창만큼

날마다 방전 되는 닳은 나이들과

중모리 풍 보폭으로 교문을 나서는 지친 나이들이

짧은 휴식처럼 모이는 저, 골목

어지러운 길 끝을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하루, 어둠의 증언을 따라 나는 미행하듯

시선을 옮기며 사라진 것들의 행방을 쫓는다

가늘고 긴 저, 골목이 수액 줄 같이 꽂혀 있는

여기는 슬픔의 군락지

오후가, 어둠이, 그리고 몇몇 나이들이

끝내 서로를 버리지 못하고 길 끝의 하루에 기대 서있다

한 방울 다시 한 방울

밤이 이슥하도록 밖을 들여 슬픔을 희석하는 저, 골목

날이 새면 묽어진 슬픔들이

다시

골목을 쏟아져 나오는 그런

 

 

< 프로필 > 권 상 진, 1972년 경북 경주 출생, 한국작가회의 회원

21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수상 제10회 복숭아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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