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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란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고 슬프고 숙연해 지다
08/04/20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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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찍 퇴근 해 집 앞 도서관 앞을 지나게 될때 마치 아이가 사탕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들를 때가 있다. 입구선반에는 discard 도장 찍힌 도서를 1$에 판다. 두 권을 고르고, 1층서가에서 한국서가에 보았더니 남한산성이라는 김훈의 1권짜리 소설을 뽑았다. 

   

   때는 1627년 정묘년, 인조 5년에 후금(청나라)이 삼만병력으로 명을 섬기는 조선을 침공하여,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가는 정묘호란이 9년 지난 1636년 병자년의 임금과 궁 내부의 모습과 오로지 그들의 결정에 따라 가족과 모든 생사를 거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슬픈 잔상이었다. 세상의 흐름에 어둡고 문명의 이치에도 뒤떨어진 조그만 계곡에 틀어박힌 채, 오직 명분에만 매여 불쌍한 백성을 호도하는 어리석은 나라. 이 책에서 청나라의 칸이 표현한 조선의 모습이었다. 10년 전 오랑캐라 불리던 후금의 칸이 수차례 예고하였으나, 한 번 처절하게 겪은 국난에도 불구,  대비대책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 결과, 병자년에 용골대가 사신으로 조선에 왔으나, 조선의 조정은 오랑캐라하여 그에게서 국서를 접수하지 않고 돌려보낸다.  결국 같은 해 겨울 , 동토의 조선에 용골대가 이끄는 청군이 침입하자, 임금은 빈궁과 왕자들은 강화도로 급히 피신시키고, 서둘러 본인도 대신들과 함께 뒤따라 간다.  9년 전 어쨋든 강화도의 성공적 피신을 믿었던가. 하지만 청군이 강화도 길을 막자 황망히 길을 되돌려 피란하고, 백성들은 동토와 눈비를 맞으며 그들을 따라간 곳이 급한대로 남한 산성이었다.  그 안에서의 임금과 대신들의 생각과 언행, 회의와 성 안 백성들의 고난의 생활과 청군과의 국지적 전투를 실감나게 그렸다.  물론 저자 김훈은 서두에 이 책은 픽션으로 읽어야 한다고 사전 고지하였으나,  큰 사실은 사료에 기초를 둔 까닭에 큰 그림은 크게 어긋남이 없으리라.  


  당시 유럽 등 신문명을 가진 외세국의 동향파악은 커녕 주변 명나라와 후금의 발호, 왜국의 동향 등 인접 다른 나라의 동향파악을 하는 시스템도 없고, 남한산성에 갖혀서도, 그 성밖의 동향을 파악하는데도 애를 먹는다.  심지어 청나라가 공격할 것인지 화친에 응할 것인지도 단지 감에 의해서 임금을 면전에 두고 신하들이 싸움을 한다. 원단 새해 첫 날에, 자신의 예법에 따른다고 임금은 자신들을 포위한 청나라 군대에게 소를 잡아 원단선물을 보낸다. 어이가 없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포위하고 있는 세력에게 굶어 죽어가는 백성이 있는데 자신은 예를 지키겠다고 한다.  칸은 어이없는 이 명분에 사로잡힌 행위에 도리어 불쾌해 하며, 굶주린 백성들에게나 나눠줄 것이지 이게 무슨 행동이냐고 사신과 선물을 돌려보낸다. 이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비루하고 창피한가. 세상의 세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나라의 외교정책을 정하는 원칙이 약한 탓에 나라가 거의 망했지만, 나라의 운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갈팡질팡 한다. 


책임감과 판단력을 상실한 관료와 장수는 군량미를 하루에 몇 홉을 지급할 것인지, 사찰에서 우연히 얻은 무명천 10필을 누구에게 배분하면 좋을지까지 임금에게 묻는다. 지금으로 말하면 지독한 공무원들의 책임회피 행위이다. 결국, 최명길과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주화파와 척사파의 싸움 속에, 칸이 궁궐 옆으로 쏘라고 한 화포의 몇 발 위력에 임금은 명예를 버리고 살 길을 택한다.  물론 백성까지 다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임금은 청군의 군복을 걸치고 삼전도의 높다란 9층 누대 위의 칸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받아주는 청 왕에게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하며 언 땅에 이마를 박았다. 뒤따르는 세자들이 따른다. "일 배요!" 이 배요,  외침 속에 9번 머리를 찧으며 9층 단상까지 올라가 항복하고, 살 길을 보장받는다. 소현세자 일행은 심양으로 인질로 끌려가고, 이 와중에 척사파 신하를 속죄양으로 삼아야 했는데, 교리 윤집과 부교리 오달제가 자원하여 묶여 청나라에 끌려가서 사형당한다. 소설에서는 이들이 자신들의 척사사실을 임금에 상소하여 스스로 묶여 가는 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그래도 위대한 것은 사관이 조정 내의 일거수를 모두 사료로서 기록했다는 것인데 이것 자체로 민주주의와 사실을 대하는 엄한 조상들의 자세이다.  그 사료에 그들이 당당하게 청나라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사실로 남아있다고 하니, 어려운 시대에 항상 의기충절한 백성들이, 인재들이 있어 왔다는 것은 기적이고 숙연하다.  


  4백 여 년 지난 오늘날, 다시 닥친 누란지위.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지킨 조국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끝까지 고수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답답하던 차에, 우연히도 접한 책 '남한산성'의 일독을 권한다.  갑자기 맞이한 남한산성이라는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지는 국가지도자와 참모들, 그리고 그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하는 백성들의 삶과 죽음. 내가, 내 국가가 잘 살고 생존하려 하면 먼저 세상과 다른 국가가, 시대가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하려 노력하고, 준비하고 그에 대비하는 길만이 자신과 국민을 험지로 이끌어 망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시대의 지도자나 국민들 모두 각성할 일이다.  특히 이 시대는 국민의 생각으로 지도자를 뽑지 않는가. 따라서 많은 부분에 있어 국민들은 이제는 스스로의 아둔함과 나태를 탓해야지 어느 한 지도자의 무능을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백성들의 눈 귀를 막는 언론들이 있어, 보고 생각하고 판단할 백성을 호도한다면 많은 부분 책임은 그들에게 있지만 말이다. 근래의 지도자들과 정치행위들이 수백년 지난 후세에는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작금의 대다수 언론의 곡필에 대해 목숨을 내놓고 진실을 지켰던 조선시대의 사관이 본다면 땅을 치지 않겠는가. 

국가, 지도자, 남한산성,언론,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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