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zyong
큰바위 소(benzyong)
기타 블로거

Blog Open 04.02.2019

전체     4482
오늘방문     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8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봉준호감독의 마더를 보고, 부모 자식을 생각해 봄.
07/27/2019 19:41
조회  301   |  추천   2   |  스크랩   0
IP 108.xx.xx.156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보았다. 실제 영화로 본 것은 처음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뒷부분을 보았는데 여기에 모든 사건과 결말이 속해 있어 줄거리와 전체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동양문화권의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그야말로 자신의 업보이자 모든 것이다. 봉감독의 '엄마'에서 열연한 김혜자는 정말 완벽한 연기를 했다. 엄마에게 있어서 바보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죄책감이 얽혀 살아온 엄마의 맹목의 모성애는 사회의 도덕, 법과 충돌한다.  그녀의 바보아들의 예전 우발적 살인현장을 우연히 목격했던 한 고물상 노인네가 기억을 되살려, 그 사실을 경찰서에 신고하려는 순간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잠깐 실성하여 노인을 살해하고,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외딴 곳의 그 고물상 살해현장을 시체와 함께 불지르고 나온다. 그런데 아들대신 살인범으로 몰려 유치장에 갖힌 다른 아이는 우연찮게도 또 다른 하나의 정신지체아 고아이다.  김혜자는 면회를 간 접견장에서 그 아이 앞에서 죄책감의 눈물을 쏟으며 묻는다. 너 부모는 없어? 엄마는 없니? 네 없어요... 또 하나의 죄없는 아들이 대신 철창너머에서 바라보며 '울지 마세요' 라고 하며 그 순진하지만 불쌍한 눈으로 일어나 간수들에게 팔을 잡혀 돌아간다. 김혜자는 내 자식을 대신해, 나를 대신 해 십자가를 지는 저 불쌍한 또 하나의 아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내 가슴도 무너져 저려온다.  


부모에게 자식은 업보이다.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존재이유의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최선을 다해 출산하고 공들여 키웠다해도, 그들의 능력이나 인생을 부모가 책임질 수는 없다. 철이 드는 순간 아니, 탄생한 이후부터는 나와는 다른 인격체이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살과 피를 전해받은 자식이지만, 어느정도 키웠으면, 손과 마음을 놓을 수 밖에 없다. 우연히 내 자식들이 내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길지 않을 성인이 된 가족들이 함께 사는 행복한 기간일 것 같다. 부모들이야 영원히 같이 살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며칠 전 미국의 90이 넘은 채, 수 년 전 상처하고 혼자 사는 어떤 미국 할아버지가,  딸 네 집의 넓은 뒷 마당 한 구석에 이동식 트레일러에 살기 위해 허가를 해달라는 청원을 타운에 하였고, 그 거주 허가신청이 받아들여 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사위가 타운에 다시 그것이 제대로 된 승인인지 재고해 달라고 어필 중이라고 한다. 


 현대 노인들의 인생의 끝자락이 애매하기만 하다. 늙어서 수발이 필요할 때 요양원에 자기 발로 들어가야 하는게 그 중 상식적일 듯 하다. 그렇다고 저 미국 노인처럼, 한참 가족들과 자기 생활을 해야 할 자식의 뒷 마당에 거주하겠다고 들어가는 것은, 자식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모를까, 먼저하기는 곤란한 요구이다. 현명하게 인생을 살았다 해도, 마지막의 처신을 어떻게 하는게 자신과 가족들에게 가장 좋은 지 골똘히 생각해야 할 하나의 커다란 과제이다. 

엄마, 노년의 삶, 인생의 종착, 가족
이 블로그의 인기글

봉준호감독의 마더를 보고, 부모 자식을 생각해 봄.